나 자신과 마주하기

by 우희경

타임머신이 있다면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용기 있게 수능을 포기하고 외국대학에 입학을 했을 것 같다.

내가 느꼈던 고등학교 생활은 꿈도 열정도 없는 입시 지옥이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내가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 참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무조건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 세계였다. 그 때는 그게 참 의문이었다. 수능을 꼭 봐야 되는지, 적성에 맞지 않은 수학1은 꼭 배워야 되는지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했다. 용감하기 까지 해서 그런 고민들을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 꼭 수능을 봐야 되나요?”

“그럼!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성공하는 건가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생이라면 수능을 봐야 되는 게 순리다”

지금 생각하면 수능공부하기 싫은 고등학생의 떼쓰기 같다. 그래도 그 때는 수능과 인생의 상관관계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혼자 대학민국 입시세계와 맞지 않는다며 외국 대학에 보내달라며 으름장을 내 놓기도 했다. 자식 4명을 키우는 부모님의 입장에선 언감생신이었겠지만, 한참을 울면서 수능을 거부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쉬운 게 있다. 바로 나 자신과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학교-자습-학원-독서실 쳇바퀴 굴러가는 생활을 하느라 내가 왜 공부를 하는지 조차 의미를 몰랐다. 자기 자신에 대해 탐색하고 알아가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고등학생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시간이 없이 휩쓸리듯 공부한 우리 세대는 대학교에 가면 방황을 한다. 전공이 맞지 않아 방황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을 한다. 그렇게 어찌 어찌 대학 4년을 보내고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한 후에도 혼란을 느낀다.

방황과 혼란의 시기가 외국에 비해 늦은 셈이다. 미국인 경우, 중 고등학생때 많이 놀면서 자기 탐색할 시간을 많이 갖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 낮은 편이지만, 대학 진학 후,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이 많다. 자신의 강점 위주의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빌게이츠나 스티븐잡스 같은 괴짜형 천재들이 나오는 이유도 이런 교육 제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20~30대에 수 없이 방황과 혼란의 시기를 가졌다. 모든 것이 불안정했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누가 좋다고 하면 따라 하기에 바빴고, 아니다 싶으면 또 포기도 빨리 했다.

진정 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를 낳고 가졌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부터이다. 내가 온전하게 정립이 되지 않는다면 내 아이도 불안정하게 키울 것 같아서였다. 그런 것을 항상 염두 해 두다 보니 나에 대한 탐색이 시작 되었다. 처음 나 자신과 마주할 때는 무척이나 어색했다.40년 가까이 나를 데리고 살았지만, 나를 아끼며 잘 데리고 산 느낌은 별로 없었다.

나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가 진정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잘 데리고 사는 것이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내가 결핍을 느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결핍을 알게 되니 무엇을 더 채우면 되겠구나를 느꼈다. 그렇게 내가 필요했던 것들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내 스스로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이 시간은 꼭 필요한 시간이다. 나와 마주하며 나를 잘 데리고 살면서 오늘을 버텨준 내 자신에게 토닥토닥해 본다.“오늘 하루도 수고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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