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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Jul 28. 2023

미술의 순간

여름방학 이야기 1.

방학이 시작되었다. 이번 방학에는 큰아이의 눈수술이 계획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방학에 뭘 하면 좋을까?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을 모았다. 첫째는 게임, 둘째는 요리, 나는 미술을 해보고 싶었다!


요즘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유명한 화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들이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고 발견한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세상의 단단함에 균열이 가고 새로운 시도들이 빛이 되어 떠오른다. 그리고 그들은 이름을 남겼다. 미술 밖의 다른 세상의 일들도 그런 것 같다. 나이 먹어갈수록 시간과 공간, 역사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선명하게 느낀다.

언제나 해보고 싶었으나 시작할 부지런이 없었다. 방학의 여유를 힘으로 처박아 두었던 미술재료들을 꺼냈다. 꽤 오랜 시간 책장에 세워졌던 캔버스도 나왔다. 나는 마침내 이 순간이 되어서야 캔버스에 입혀질 이 정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캔버스가 잠들어 있는 오랜 시간 동안 우연히 인스타나 유튜브를 통해 그리기 기법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방학을 앞둔 얼마 전, 잊고 있던 예술 서적에 흥미를 느꼈다. 모든 것이 합을 이뤄 미술의 순간이 생겼다.

"엄마, 뭐 그리는 거야?"

"글쎄? 아무거나, 일단 난 초록색을 바를 거야."

공구같은 붓을 샀다. 치덕치덕 물감을 칠한다. 손을 따라오는 물감의 움직임이 경쾌하다.


"오? 재밌겠는데?"

첫째는 구경만 하다가 슬그머니 합류한다.


마구 칠하며 무엇같은지 같이 이야기한다. 잠시 우리는 화가가 된다. 내 손에 있는 물감과 붓이 캔버스를 지나가면 이전의 세계는 덮인다. 또 한 번의 붓질에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이 공간을 남길까 말까 하는 갈등, 소용돌이, 그리고 고요한 몰입이 찾아왔다. 무엇을 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걸 잊는 노력이 필요했다. 잠시였지만 제법 오래 나는 정화되었다.

폭발하는 바다

둘째가 왔다. 자기도 하고 싶다며 다시 판을 벌인다. 둘째는 처음부터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지 않는다. 자기 앞에 놓인 도구들을 어떻게 실험해 볼지만 생각한다. 한참을 몰입한다. 그리고 [폭발하는 바다]라고 제목 붙였다. 그림이 재미있다.


세 그림을 현관에 전시했다. 그릴 때 없던 내용이 우연히 생긴 색이나 터치를 발견하며 이야기가 생긴다. 현관을 지날 때마다 감상자는 새로운 의미를 덧붙인다.


누구나 손쉽게 물감과 붓, 캔버스를 구할 수 있다. 지나간 화가들이 요즘 시대를 본다면 얼마나 부러울까? 다만 요즘 시대에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아이들의 방학동안 여유를 함께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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