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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Nov 12. 2024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을 가꾼다

친정엄마의 손길

나는 로즈마리를 좋아한다. 길가에 심어둔 로즈마리 사이로 바람이 지나며 훑어 나온 향기는 짧은 시간, 머리를 개운하게 만든다. 뭔가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랄까? 매번 같은 길을 지나면 특정한 지점에서 향기가 나는데 그때마다 튼튼하게 자란 로즈마리를 키우는 장면을 상상해보곤 한다.


[우리 집에도 로즈마리를!]

길을 가다 로즈마리가 보이면 한 번씩 사 와 큰 화분이 될 때까지 잘 키우리라 다짐하곤 했지만 언제나 몇 주 지나지 않아 이파리색은 누렇게 변하고 말라버리기 일쑤였다. 지난번 로즈마리는 친정엄마가 길가에 세워진 트럭에서 사 오셨는데 포트에 있던 파란 아이는 이 전의 풀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나는 걔를 몹시 살리고 싶어 지인에게 전화해 컨설팅도 받았지만 친정마당에서 땅의 힘을 전해주기 전에 이미 말라있어 결국 살리지 못했다. 엄마는 내 행동에서 로즈마리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읽었는지 다음번 트럭을 만났을 때 포트를 사 와 제법 큰 화분에 옮겨 심은 다음, 우리집에 선물해 주셨다.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요녀석이 보여서 머리를 쓰다듬듯 한껏 만지고 손가락 사이로 나는 향을 킁킁 맡는다. 복직하고 바빠 물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는데 우리 엄마는 내 새끼들은 물론이고 우리 집의 작은 것까지 보살피고 있다. 엄마 덕분에 강렬한 향의 호사를 누리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몇 번이고 로즈마리 사이에 손을 넣어 바람을 일으킨다. 하~~~~... 기분이 좋다. 참 좋다. 새로운 힘이 생기는 듯 마음이 간지럽다.

미소 지으며 방에 들어오려는데 노란 꽃이 방긋, 분홍꽃도 방긋이다. 언제 얘들까지 데려다 놓으신 걸까?

엄마는 어떻게 얘기도 않고 좋은 기분들을 선물해 놓은 건지, 때로 나도 그녀처럼 과묵하게 좋은 일을 하고 호들갑 떨며 발견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나는 내가 한 어떤 좋은 일도 숨기지 못하고 포르르 재빨리 말해야 하는 편인데 엄마의 이런 면들을 발견할 때면 쫌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복직을 하며 매일 얼굴을 보지만 정작 아이들 학원 스케줄, 생활지도, 저녁메뉴 등 하루의 표면을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의 마음이야기와 안부는 놓친다. 둘째가 학원에 가있는 동안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요즘 너는 복직하고 괜찮냐고, 혹시 힘든 일이 있으면 담아두지 말고 엄마한테라도 말하라고... 나는 복직하고 더 잘 자는데 엄마가 힘들까 봐 걱정이라는 말을 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까 봐 걱정이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건강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고 끝에는 또 두 아이 얘기로 마무리한다.


그녀와 헤어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여전히 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평온을 누린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보살피는 엄마 덕분에 나는 지친 하루를 위로받고 따뜻하다. 자꾸만 기분이 좋아 베란다를 들락거리며 자꾸 로즈마리를 뒤흔들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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