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이다. 이제는 가물할 때도 됐지만 고3 수능일 아침의 기억이 또렷하다. 시험 치기 한참 전부터 엄마는 수능날 점심 메뉴를 고민했다. 아마 나보다 엄마가 더 긴장했던 것 같다. 나는 엄마 고민의 깊이는 알지 못한 채 아주 얕은 마음으로 "분홍소시지"라는 해답을 알렸다. 엄마는 수능날인데 그거 먹어서 힘이 날지, 졸리지는 않을지 여러 걱정들을 했지만 그때만 해도 식곤증 따위는 거리가 멀었기에 나는 엄마의 걱정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면서도 @^:♡!^_/!(_/!/~"로 이어지던 엄마의 잔소리는 늘 공부에서 몰래 도망치게 만들었다(그녀는 잔소리가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반면 나는 내가 자라는 환경이 좋거나 싫다를 판단할 필요가 없었기에 '내가 공부를 시켜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는 반항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세상의 표면만 겉돌며 컸다. 개근하고 수업시간에 졸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책을 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남들이 가는 학원에 다니며 시간을 때웠고 친구들과 시시한 수다를 떨 수 있는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 즐거웠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좋은 성적이 나올 거라 믿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는 시험에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모의고사 성적은 왔다 갔다 했지만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야자시간에 도망가는 스릴을 즐겼고 걸리지 않은 그날들의 운에 단순히 기뻐했다. 어떻게 '공부'의 세계로 들어가는지, '몰입'이란 어떤 상태인지를 모른 채 고등학교시절까지 올라갔다. 그럼에도 우리 엄마는 나를 믿고 늦은 시간에 학교까지 매일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겉보기만 그럴 뿐 진짜는 수험생이 아니었고 우리 엄마는 수험생의 열혈엄마였다.
수능 전 날 밤,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기에는 걱정이 많았을 뿐 긴장은 덜했다. 스스로 실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수능을 치고 결과가 나온 후, 실력이 까발려지면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할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모의고사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두려움은 공부를 향한 동력이 되지 못했다. 되려 운이 좋아 내가 찍는 것들이 모두 정답일 수도 있다는 이상한 희망에 기대어 '제발~~~'을 외쳤다. 나는 정말 철이 없었다. 엄마와 아빠의 노고는 전혀 몰랐다. 그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자랐다.
수능날 아침, 학교 안과 밖을 구분하던 교문은 내 세계와 엄마의 세계가 다름을 구분하는 상징이 되었다. 태어나 처음,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교문에서 힘껏 손을 흔들고 "잘하고 와"하며 응원했지만 나는 희생적인 부모의 품에서도 익혀야 할 것들을 너무 게으르게 해왔음을 느꼈다. 그래서 시험장으로 향하는 걸음들에 가진 게 너무 없이 느껴졌다. 학교를 향해 걸어가며 눈물이 났다. 좋은 딸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그녀의 정성만큼 노력했다면 나는 얼마나 근사하게 자랐을까 수능날 아침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부의 맛을 알게 된 건 대학을 가서다. 재수를 했지만 고3과 같은 태도였기에 당연히 원하는 대학에 낼 성적이 안 나왔다. 노력은 생각지 않고 입시결과로 화가 났던 나는 며칠 동안 방에 처박혀 있었다. 갑자가 엄마가 나를 거실로 나와보라며 계속 불렀다. 억지로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지방 4년제 대학 합격증이 방문에 붙어있었다. 둘은 나를 합격증 앞에 세웠다. 그리고 아빠와 손뼉 치며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나는 울었다. 엄마는 "이 학교에 니가 만날 인연들이 있나 보다. 어디서든 열심히 하면 길이 생긴다. 합격 축하한데이."하며 "니는 아르바이트할 생각하지 말고 장학금을 타라. 장학금만큼 니 아르바이트비로 엄마아빠가 줄 테니까 그게 니 일이라 생각해라."
재수 끝에 지방대. 나도 인정하기 싫은 현실 앞에 엄마랑 아빠는 쓰린 속을 얼마나 덮었을까. 갑자기 그 마음이 느껴지며 나는 각성했다. '이 학교에 가서는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4년 동안 실천했다. 대학에서의 가장 큰 배움은 몰입하는 기쁨, 노력의 가치다. 그걸 알게 되자 나는 뭐든 더 하고 싶어 졌다. 늘 과1등을 해서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노력한 결과 친구들보다 한 학기 일찍 졸업했다. 대학 학비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냈지만 엄마는 장학금만큼 내 통장에 넣어줬다. 학과 공부가 잘 맞아서 임용을 쳤고 그걸로 여전히 일을 하며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그 학교에서 다음생에서도 또 만나고픈 신랑을 만났고 여전히 수다 떨 친구들을 만났다. 엄마가 그날 내게 했던 말은 예언이었고 지금 내 삶을 구성하는 가장 큰 기둥이 되었다.
아직 어린 내 딸은 나와 너무 닮았다. 그래서 아이가 인생의 표면만 미끄러지듯 클까 봐 걱정이 된다. 하루는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시또도 나처럼 사춘기 때 땡땡이치고 학원비 삥땅하고 하면 어쩌지? 나는 그게 걱정이다."
엄마는 말했다.
"시또는 니보다 더 똑똑한데, 니도 내 모르게 했는데 야는 해도 니가 더 모르게 하겠지. 그래도 니도 이래 잘 살잖아. 걱정 마라."
"그래. 엄마 모르게 그런 게 스릴 넘치고 재밌었지, 진짜 철없었다. 지금 같으면 안 그럴 건데...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우리는 웃었다.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너만큼은 품에 있을 때 나처럼 허투루 시간을 쓰지 말고 뭐든 가득히 채워갔으면...]
수능날이 되니 부모욕심이 벌떡 일어난다.
우리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