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이라 오랜만의 출근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보살피기위해 아침 일찍 엄마가 오셨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나는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바쁜 일정을 따라 출근한다.
분(minute)단위로 바쁜 유치원에서 겨우 생긴 틈새시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그제야 엄마는 어지러움증에 대해 말한다. 평소 어지러움증이 잘 없는 엄마였기에 내 마음은 불안의 외줄을 탄다. 어지러움증과 관련된 다른 병들이 떠오른다. 관련된 병원을 떠올리며 다시 전화를 걸어 안내를 위장한 잔소리를 뱉어낸다. 어지러움이라는 증상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엄마를 당황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었나 보다.
시계의 숫자가 퇴근 시간에 맞추어졌을 때, 나는 빨리 가방을 챙겨 문을 나선다. 출근하면서 생긴 나의 빈자리 때문에 쉬지 못하는 엄마께 미안함이 짙어지고 엄마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봐야 안심될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은 급해진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다며 아이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집을 나선다.
여러 가지가 뒤섞인 채로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엄마를 꼭 안는다. 두개의 몸을 타고 감정들이 엉켜 흐른다.
"이제는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 엄마한테 너무 기대지 말고 네가 중심에 서야 한다."
'엄마'라는 단어에 담긴 책임과 강인함, 자상함... 모든 것을 부모님과 나눠지기도 했던 내게 "중심에 선다"는 표현은 마치 대학생 시절 어른이 되기 싫다고 부모님 앞에서 실컷 울고나서 어른을 받아들였던 것 처럼 새로운 계단 위로 올라가야하는 재촉인듯 무거운 사건으로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께 기대고 싶고, 온전한 책임에서 회피하고 싶은 어른답지 못한 내 모습을 본다. 내가 삶의 중심에 서야한다는 걸 인정하고싶지않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엄마는 기꺼이 딸이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응원하고 지원해주었다. 그런데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인 엄마가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라는 순리가 가슴으로 인식되며 마음이 괴롭다.
내 아이들에 대한 책임, 딸로서의 감사함, 같은 '여자'이자 '엄마'의 존재로서의 미안함들이 뒤섞인 채로...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말한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세 가지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태어난 것, 아빠를 만나서 결혼한 것, 그리고 너네들을 낳고 만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