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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otoly Jul 25. 2020

엔타로 아르타니스(En taro Artanis!)

<The invention of yesterday> 서평

20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교과서 이외의 역사책을 끝까지 읽었다. 500페이지를 넘나드는 지루하디 지루한 역사책을 읽어냈다는 것은 또 한 번 나의 임계점을 돌파한 것이다. 지금은 완독 한 뿌듯함과 함께 페퍼민트 티를 얼음으로 시원하게 하여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쓴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35484445&orderClick=LEA&Kc=


서평 목차

0. 우리의 유산

1. 현재 우리는 칼라로 연결되었다

2. 앞으로의 서사


0. 우리의 유산

체스 이야기

이 책은 체스 이야기와 함께 시작한다. 과거의 인류는 운명에 승패를 맡기는 주사위 놀이에 싫증이 나서, 운명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방식의 놀이를 원했다. 그렇게 인도에서 체스가 발명되었고, 많은 서사를 거쳐 지금 우리가 아는 체스가 만들어졌다.

체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임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체스의 탄생 과정을 언급하는 바람에 나는 도저히 지금 당장 체스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덮고 당장 온라인 체스에 접속하여 다른 사람들과 체스를 두고, 체스퍼즐-체스판에서 기물들의 특정한 상황을 제시하면, 플레이어는 그 상황에서 둘 수 있는 최선의 수, 즉 상대방에게 최대의 피해를 주면서 나에게는 최소한의 피해를 감수하게 하는 수를 찾아내는 퍼즐이다-을 몇 번 풀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수많은 폰-pawn, 체스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 기물이다-을 희생하였으며 승리를 위해 아내-queen, 체스에서 king 다음으로 가장 계급이 높은 기물이다-도 잃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적군을 잔인하게 함락시킬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렇게 신나게 게임을 한 번 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 책을 펴는 순간 깨달았다. 방금 내가 아무렇지 않게 죽이고 희생한 백성들과 성직자, 기사단 들은 과거의 인류가 식량과 자원, 마약 그리고 다른 무언가를 위해 죽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과거의 지도자들처럼 승리를 위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백성들을 전장에 내세웠고, 그들이 내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들을 희생하였다. 아마 과거의 지도자들도 승리를 위해 인권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러운 싸움으로 동족을 내밀었고 그들의 살과 피를 양분 삼아 그들의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가끔은 그러한 지도자들의 살과 피가 거름이 되었겠지만)

누군가는 지금 내가 게임한 것 가지고 너무 몰입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사실 이 질문은 내가 내게 한 질문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와 학교 역사 시간에서 배운 과거의 왕들 중에선 전쟁을 마치 게임처럼 한 지도자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한 지도자들은 방금 내가 온라인 체스에서 많은 생명을 죽였듯이, 당시의 백성들과 동족을 아무렇지 않게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러한 지도자들에게 더 몰입하게 되었고 5만 년의 서사에 몰입하게 되었다.


고결한 싸움, 인권 문제

5만 년의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는 아주 많은 싸움을 역사에 남기고 불태우고 조작했다. 식량을 위하여 대지를 돌아다니며 다른 부족의 식량을 약탈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을 위해 수많은 영혼을 신의 곁으로 돌려보내었다. 그 과정에서 지배 계층은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누워 달콤하고 포근한 향이 나는 포도를 맛있게 먹고 있을 때, 많은 군사들은 무거운 장비와 함께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동족을 베고 찌르고 머리에 구멍을 내었다. 그리고 전쟁의 서사 속에서 많은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또한 피부색이 검은 동족은 더러운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이처럼 우리는 과거에 서로를 깎아내리고 욕하는 고결하고 위대한 차별과 싸움을 해왔다. 갑자기 교결하고 위대하다고 하니 당황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부들부들 떨렸던 불합리한 부분들을 생각해 보았다. 과연 과거에 이러한 불합리한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것을 바로 고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 유산을 통해 그러한 문제들을 우리의 힘으로 고쳐나갔고 우리는 그러한 불합리한 운명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위대하고 고결한 가르침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그러한 차별과 싸움 속에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옳은 것처럼 보이는 밝게 빛나는 별을 향해 항해하고 있다.

수많은 서사 끝에 지금 우리는 현재에 발을 딛고 서있다. 누구든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으며. 누구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누구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세상에 서 있다.(물론 아직 그렇지 못한 국가들이 일부 있지만,) 고결하고 위대한 서사 끝에 우리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칼라(Khala)에 의해 이루어졌다.


1. 우리는 칼라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었다

인터넷

https://youtu.be/A5AmE_b68cg

갑자기 칼라(khala)에 대해서 언급하여 당황했을 것이다. 칼라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고대 종족 프로토스(protoss)는 각각의 개체들이 칼라라는 매체를 통해 감정, 기억,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다. 칼라를 통해 프로토스는 엄청난 기술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우리 인류는 마침내 전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인터넷을 발명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 행성에 있는 그 누구와도 몇 초 내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한 인터넷을 통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을 만들어냈으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 감정과 생각과 기억을 공유한다. 최초의 인터넷은 논문을 쉽게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목적에 걸맞게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덕에 기술의 발전은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칼라를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는 전쟁이 나더라도,

전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칼라 덕분에 우리는 매일 언제 어디서든 그 누구와도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토론을 한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물론 아직은 미숙한 수준의 토론처럼 보인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가면 누군가는 편향된 근거를 통해 정치인을 욕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이유 모를 분노에 차서 타인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의 칼라의 그림자를 인식했다. 인류는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종족이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자기 계발을 통해 더욱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전에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 현실의 문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가장 쉬운 방법인 '남 욕하기'를 남용했다. 하지만 요즘 네티즌들은 가장 쉬운 방법에서 벗어나 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수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색하고 적용하고 있다.

이전에 언급했던 위대하고 고결한 싸움은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과 함께 최선의 수를 논할 수 없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었기 때문에 가장 쉬운 방법인 '전쟁'을 택함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 세계가 함께 토론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영문도 모른 채 칼로 찌르고 총을 쏘는 갈등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나는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5만 년의 역사로 다져진 인권에 대한 생각과 인터넷을 통한 토론을 통해 전장에서 적군과 만나더라도 총구를 내려놓고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하는 종족이 될 수 있고, 이미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2. 앞으로의 서사

칼라의 위협

https://youtu.be/khmnEuo-oOg

위에서 언급한 프로토스 이야기를 이어나가겠다. 프로토스는 칼라를 통해 눈부신 영광을 이워냈지만, 소수의 프로토스는 칼라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 각각의 프로토스의 인격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칼라와의 연결을 끊어냈다. 프로토스는 칼라를 끊어낸 몇몇 동족들을 이단자로 낙인찍고, 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족 간의 긴 전쟁이 진행되던 중, 칼라를 오염시키는 존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칼라를 통해 불안, 공포를 프로토스가 공유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프로토스는 칼라를 오염시키는 존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칼라를 스스로 끊어내야 칼라를 오염시키는 존재로부터 벗어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편파적인 뉴스와 가짜 뉴스에 선동을 당한다. 다행히도 요즘에 유튜브에서는 이러한 가짜 정보에 대한 증거를 모아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도 한다.(그 진실 또한 거짓일 수 있지만 말이다.) 이렇듯, 우리의 칼라 또한 오염당하고 있다. 우리는 오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거의 우리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있어 미숙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더욱 심해질 칼라의 오염으로부터 우리는 정면으로 맞서 싸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는 더 많은 공부와 사색, 적용을 통해서 오염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앞으로의 서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다음 계단에 대하여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메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을 배웠다. 가장 하위 단계인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에는 breathing, food, water, sex, sleep, homeostatis, excertion 등이 있다. 이는 몇 만년 전쯤인 수렵 채집 시절에 충족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요소들이다. 그다음 단계는 안전의 욕구(safety)이다. 이는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며 충족되기 시작했다. 다음은 사회적 욕구(love, belonging)이다. 이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집단에 소속되길 원하는 욕구이다. 정착 생활을 하고 안전이 보장되기 시작하며 충족되기 시작했다. 그다음으로 있는 남으로부터 나를 인정받는 존중의 욕구(esteem)와 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자아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는 지금도 여전히 충족되고 있는 중에 있는 요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 계단은 무엇일까?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통해 자신을 견고하게 한 다음에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주변이라고 생각한다. 즉 세계에 대한 이해가 다음 단계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환경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왕 생명을 얻게 되었는데,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나의 생각이 있다. 한 가지 예시를 들겠다.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행성에 살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좋은 해결방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변을 시원하게 해주는 에어컨을 창문을 연 채로 틀어, 지구를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만드는 대규모 캠페인을 하면 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가? 에어컨을 틀어서 지구온난화를 저지시키는 아이디어는 단편적으로는 괜찮은 솔루션이다. 하지만 이는 에너지 보존 법칙과 비가역적 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즉, 세상에 대한 이해가 낮았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또한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가? 그렇다면 어서 해외로 떠나서 마약을 복용하라. 그리고 기분이 좋아지면 그때 깔끔하게 자살하라. 그것만큼 행복하게 살다 죽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완벽한 전략은 없다. 혹시 당신은 이런 삶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인공지능과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은 단지 생존을 위해 구성된 퍼셉트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단순히 행복함과 같은 감정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간단하다. 단지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도록 퍼셉트론을 자극하면 끝난다.(예를 들어 마약) 우리는 단지 우리가 느끼기에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는 퍼셉트론 고기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후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하게 되었다. 우리는 단지 고기 덩어리이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마치 에어컨의 작동원리를 모른 채로 '에어컨은 공간을 시원하게 해 준다'라는 것을 알아낸 아이와 같다. 우리는 어쨌든 살아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방향은 에어컨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알아내고 지구온난화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이다. 즉, 세상에 대해 실험으로 탐구하고 철학적으로 사색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에 우리가 멸종해버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종족은,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 우리 밖에 없다. 그럼 이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지속가능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하나는 기술적으로, 다른 하나는 영적으로 지속 가능해야 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아래와 같을 것이다.


1. 끊임없이 과학적, 철학적 탐구를 한다.

2. 기술적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다.

3. 사람들의 욕구를 인권이 침해받지 않는 방법으로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글 제목에서 언급한 "엔타로 아르타니스"는 프로토스의 위대한 지도자인 아르타니스를 기리기 위해 프로토스 종족이 사용하는 구호이다. 아르타니스는 같은 종족 내에서 너무나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이 어리석지 않고 단지 다를 뿐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을 다른 프로토스에게도 설득시켰고, 프로토스를 하나로 뭉쳐 세계의 종말로부터 모두를 지켜낸 지도자이다. 그래서 프로토스는 "엔타로 아르타니스"라는 구호와 함께 그를 생각한다. 참고로 아르타니스는 2번째 영상에서 소개된 아래와 같이 생긴 개체이다.


이번 서평은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계속 써져서 쓰게 되었다. 이 서평에서는 보다시피 책의 내용이 거의 없다. 단지 책 내용을 통해 내가 생각의 씨앗을 얻었고, 그 씨앗을 발아시켜 살짝 새싹이 생긴 생각들에 대하여 작성하였다. 그게 역사책을 대하는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역사책은 어려서부터 정말 싫어했던 카테고리다. 과학책이나 자기 계발 서적이 더 재미있다. 그래서 지금껏 독서 편식을 해왔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는 고등학교 때 보는 역사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완독 한 역사책이다. 이번 책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한 책이기 때문에 의무감과, 억지로 재미를 붙여서 읽었다. 덕분에 '역사책 읽기'라는 새로운 임계점을 돌파했다. 이번 기회에 임계점을 부숴서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 다양한 독서를 통해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 

그리고 작가님께는 죄송한데... 이 책 다시는 안 볼 거 같다. 보면서 몇 번을 졸았는지...ㅎ


https://blog.naver.com/nanotoly/222041356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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