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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otoly Aug 19. 2020

해피 바이러스가 아닌 무기력 바이러스가 되어라

코로나 바이러스는 저리 가라

시대가 바뀌었다. 해피 바이러스는 시대를 이끌 수 없다. 사람들에게 무기력을 심어주는 바이러스 숙주가 되어야 시대를 이끌고 견고한 자신을 만들 수 있다.


다소 흥미로운 주제이지 않은가? 사실 대학교 초창기 시절부터의 고민이 안겨져 있는 주제이다. 무기력 바이러스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


목차

1. 해피 바이러스와 자본주의

2. 무기력 바이러스를 제조하고 배포하다

3. 무기력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1. 해피 바이러스와 자본주의

아마 내가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해피 바이러스'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올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피 바이러스란, 힘든 일이 있더라도 주변에 긍정적인 사고를 퍼뜨림으로써 주변인들의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내고 긍정적인 태도로 바꾸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의 무기력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며, 항상 밝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해피 바이러스를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그렇게 생산된 해피 바이러스 추종자들은 그들의 주변인들에게도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변화시킨다.

이렇게 보면 해피 바이러스들은 세상에 정말 좋은 존재들로 보인다. 하지만 해피 바이러스와 관련된 위의 설명은 보충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바로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할 때, '합리화'와 '문제 회피'를 사용하는 사례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피 바이러스의 오류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노예가 되기 최적화된 사고방식이다.

극단적인 예시를 통해 해피 바이러스의 영향을 살펴보겠다. 어느 나라의 '불가촉천민'에 해당하는 A 씨가 있다. A 씨는 매일같이 평민들에게 더러운 존재라며 비난을 받았지만 A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며 오늘 내가 푸르른 하늘을 보는 것만큼 감사한 일은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젠가 모두가 평등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라며 매일 목적 없이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죽게 된다. 여러분은 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시라도 '매달 월급 받으면서 모은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스포츠카를 사는 것만 한 행복은 없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거야'라고 말하는 여러분 스스로가 떠오르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정도의 차이만 존재하지, 결국 A 씨와 같이 '합리화'와 '문제 회피'를 남용한다는 점은 똑같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노예를 양산하기 쉬운 '해피 바이러스'라는 존재는 자본주의에 의해 더욱더 홍보가 가속화되고, 긍정적인 생각이 좋은 것이라는 그럴싸한 말에 우리는 현혹되어왔다.


2. 무기력 바이러스를 제조하고 배포하다

몇 년 전, 나는 가까운 사람이 정말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내 주변에서 죽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상당히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부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는 죽는다. 지금 당장 우리가 죽어도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할까?

https://youtu.be/Z_YdyQ9pEd4

영상길이가 14분이 넘어가는 조금 긴 영상이지만, 꼭 시청해보길 추천한다.

영상을 봤다면 여러분은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이미 답변한 채로 살아왔는가? 여러분은 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행복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을 꼭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의 나는 고통스러운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리고 그에 맞게 실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실행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나 또한 영상 속의 학생처럼 내가 너무 비정상인지에 대해 걱정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친구가 없다. 어른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 복 나간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그렇게 현실 문제를 회피한다. 하지만 조금씩 용기를 냈다. 내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냉소주의자이며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는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무릎서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왜 살아야 하며,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인 질문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대부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당황하며 그저 그 질문에 대한 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죽음에 대해 같이 이야기한 사람들은 나에게 솔직하게 그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들은 '그 이야기한 뒤 아주 무기력했다고... 왜 살아야 하는지 아직도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주었다.


3. 무기력 팬데믹 이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들은 더 고민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끔씩 전화가 온다.


"야! 네가 저번에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네 생각을 말해줬었잖아?"

"응 그랬었지"

"네가 스스로 만든 그 이론도 기억하지? 그런데 내가 너의 이론에서 결점을 찾은 거 같아"

"어떤 결점인데??"

"너의 이론에 의하면 저출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라는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나는 이런 대화들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더 견고한 이론과 가치관으로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내가 용기 내서 처음 말을 꺼내니 하나둘씩 나와 같은 고민이 있거나,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드러나기 시작했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 주제를 막아서고 있었지만,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사람들의 서사가 결합되기 시작된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주변에는 어떠한 것의 근본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재미없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지 않다.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허나? 북 치고 장구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이전까지 사회에서 판을 치던 해피 바이러스들을 물리칠 기회가 왔다! 정확히는 '합리화'와 '문제 회피'를 통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고 하는 변종 해피 바이러스들을 박멸할 기회가 온 것이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사상을 접하고 고민하게 된다. 여러분도 용기를 내서 무기력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바이러스가 되어주길 바란다. 주변에 잠복하고 있던 동료 바이러스들이 잠복기에서 깨어나고 그들과 함께 좀 더 견고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국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해피 바이러스의 일부 RNA만 우리의 무기력 바이러스 RNA에 박아 넣어두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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