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패거리를 만난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패거리에 소속된다.
우리와 반대되는 패거리를 만나면 야구방망이를 들고 뒷골목에서 만나거나, 요즘은 키보드를 들고 VPN으로 IP를 우회하여 커뮤니티에서 만난다. 그렇게 한바탕 주먹질과 키보드질이 시작된다.
우리는 왜 이러는 걸까?
지능을 개발하는 인공지능 개발자로서 인류를 관찰하고 해석한 내용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이 글로 우리가 안갯속에서 헤매지 않길 바라며, 부족한 점이 있거늘 댓글이나 연락을 주어 도움을 주면 정말 감사드린다.
.
.
.
.
.
인류를 처음 만나다.
생명체란 무엇일까?
다들 왜 이러는 걸까
.
.
.
.
.
평소와 같이 초등학교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친구들에게 지우개 총(손톱으로 지우개를 조그맣게 뜯어서 그 지우개 조각을 날려 보내는 장치를 직접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을 발포했다. 지우개 조각이 친구 머리에 닿는 순간 나는 자는 척을 했다. 그렇게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던 어느 날, 다른 친구들이 한 친구에게 장난치는 걸 봤다. 장난기 넘치는 나도 그 친구를 친구 한 대 치고 쫓아오면 도망쳤다. 쫓아오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면 장난기 넘치는 얼굴과 대사로 나를 쫓아왔다. 그렇게 몇 번 장난치다가 다른 반 친구여서 만날 일이 별로 없어서 한참 나중에서야 그 친구 소식을 들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왕따였다는 사실을...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던 건 한 친구가 내게 자랑을 했기 때문이다.
"야 나 그 왕따 등에 컴퍼스 꽂아봤어 ㅋㅋㅋㅋ"
이렇게 말하는 친구는 나랑 자주 놀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렇게 친구 등에 컴퍼스를 꽂고 웃는 걸 보니 뭔가 이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와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고 왕따 당하는 그 친구를 학교 복도에서 볼 때면 웃으며 인사하고 말을 걸었다.
시간이 지나고 고학년이 되었다. 왕따인 친구와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도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화가 나서 왕따 친구에게
"야! 적어도 네가 그러면 안되지"
라고 말했다.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왕따를 당한 적이 있는 사람은 남을 괴롭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화가 나서 자리를 떴다.
한동안 공부만 하느라, 일만 하느라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친하게 지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그룹에 속하여 같이 놀러 다니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잘 놀았다. 하지만 그 집단은 소수의 주도자의 회유로 인해 구성원 중 누군가를 배척하고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진솔한 자세로 마주 앉아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다른 구성원들을 회유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쫓아낸다.
왜 이럴까
도대체 왜 서로 물어뜯고 난리인 걸까... 도대체 왜???
어려서부터 이런 현상들을 보며 고민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볼 열쇠를 찾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생명체이다. 뇌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이다. 내가 뇌과학 관련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며 관련 직종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뇌에 대한 관심이 많아 관련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뇌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는 뉴런(neuron)이라고 불리는 세포들이 아주 많이 연결되어 있는 기관이다. 뉴런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인간은 팔을 움직이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상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뇌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여러 동작을 가능하게 하며,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와 관련된 연구는 아직도 우리가 납득할 만큼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뇌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되었다. 즉, 우리가 쾌락을 느끼는 것과 불쾌감을 느끼는 것의 정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이다. 가령 dopamin과 같은 물질이 뇌에 존재하면 우리는 쾌락을 느끼고 substance P와 같은 물질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쾌락을 생성하는 행동이나 물질을 추구하며, 고통을 생성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인공지능은 인간 뇌의 특성을 이용하여 만든다. 인간이 쾌락과 고통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쾌락과 고통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 그러고 나서 그 프로그램에게 어려운 문제를 낸 뒤, 풀지 못하면 고통을 느끼도록 하고 문제를 풀면 쾌락을 느끼도록 해준다. 프로그램이 고통을 느끼게 되면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며, 프로그램이 쾌락을 느끼게 되면 문제를 더 잘 풀도록 프로그램의 구조를 스스로 바꾼다. 프로그램이 스스로 바꾸는 프로그램의 구조도 우리의 뇌와 비슷하다. 수많은 뉴런이 연결되어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모방하여 인공지능의 뇌구조를 만들어낸다.
좀 더 설명을 하자면 인공지능에게는 보상 함수와 손실 함수, 그리고 최적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
쉬운 설명을 위해 우리가 산소가 희박한 산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꼭대기에 있으면 숨이 막혀 고통스럽다. 그래서 산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한 치 앞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산꼭대기에 있다간 곧 죽을 거 같아 일단 무작정 내려간다. 내려갈수록 산소가 서서히 생겨 살만해진다!
어느덧 산 중턱에 왔다. 앞에는 이제 오르막길 밖에 없고 안개 때문에 멀리 보이질 않는다. 앞과 뒤가 전부 오르막길인걸 봐서 여기가 가장 산소가 많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글을 보는 우리는 산의 구조를 모두 보고 있기 때문에
"민트색 친구야!! 조금만 더 가봐!! 훨씬 더 산소가 많은 곳이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민트색 친구는 안개에 가려있기 때문에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나 웬일인지 민트색 친구가 태도를 고쳐먹고 조금만 더 탐험해보기로 결심한다.
덕분에 산소가 희박한 조그마한 언덕을 넘어 산소가 더 많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전문 용어와 연결을 하자면, '손실 함수'는 산에서 공기가 희박한 정도이고 '보상 함수'는 손실 함수와 반대로 공기가 많은 정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중간에 민트색 친구가 바꿔먹은 태도는 '최적화 알고리즘'에 해당한다. 산의 지형은 인공지능이 푸는 '문제'라고 보면 된다.
인공지능은 문제를 풀지 못하면 산에 있는 공기를 없애고 독가스를 주입하는 '손실 함수'를 활성화하여 고통스럽게 하고, 문제를 풀면 초콜릿과 산소를 주입하여 '보상 함수'를 활성화시켜 쾌락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문제를 더 잘 풀기 위해 '최적화 알고리즘'을 바꿔간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우리는 이세돌을 능가하는 알파고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뇌의 핵심적인 원리를 모방한 인공지능은 상당히 좋은 지능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즉, 손실 함수, 보상 함수, 최적화 알고리즘은 지능이 있는 생명체를 설명하기에 핵심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인공지능 개발이 어렵고 더디게 발전하는 이유는 아래 그림 한 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니 재미 삼아 보길 바란다.(어디가 가장 산소가 풍부한 곳인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산은 엄청나게 크다는 게 문제다.)
생명체란 쾌락을 더 많이 느끼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 구조를 변형할 수 있는 물질이다.(좀 더 구체적으로는 '보상 함수와 손실 함수가 존재하며 각각의 함수에 대해 최적화 알고리즘이 있는 함수 덩어리'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개개인의 쾌락과 고통에만 집중하며 살아간다. 이타적인 사람은 없다. 개인의 쾌락만 추구하며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이기적인 사람만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는 프로그래밍되어있다.
남에게 사기 쳐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스포츠카를 구매하고, 젊은 여자들 사이에 파묻혀 사는 30대 아저씨를 상상해보아라. 이런 사람은 부가적인 설명 없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반면 사회적 기업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재단을 만들어 저소득층을 도와주며, 직접 연탄까지 시골에 들어 나르는 사람은 어떠한가? 역시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선과 악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뿌듯함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생명체는 이기적인 행위를 통해 생존 욕구, 성욕, 수면욕을 채운다.
반면 우리 인간은 진사회성 동물로서 사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사회에는 유능함, 도덕성과 같은 여러 지표로 선과 악을 구분한다. 악은 배척하고 선은 옹호한다. 그래서 생명체이자 인간인 우리는 이기적인 행위를 통해 생존 욕구, 성욕, 수면욕, 유능함, 도덕성을 채운다.
여기서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통해 위에서 말한 사회적 기업가 아저씨가 왜 이기적인지 알 수 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란, 공부도 못하고 잘생기지도 않은 아이가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착해지는 현상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면 아래 영상을 참고하기 바란다.
선과 악에 대한 사회의 잣대로 인해 인간은 선을 추구하도록 보상 함수와 손실 함수를 설정하게 된다. 즉 인간은 사회에 의해 선한 행동을 하도록 훈련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초적인 수면욕, 성욕, 생존 욕 외에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길 원하고 사랑받길 원하는 쾌락 시스템이 형성된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사회적 기업가 아저씨와 스포츠카 아저씨는 결국 똑같이 자신의 쾌락을 성취하도록 행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포츠카 아저씨는 사회적 쾌락 시스템에서 얻는 쾌락보다 원초적 쾌락 시스템에서 얻는 쾌락이 더 크도록 설정된 뇌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반면 기업가 아저씨는 원초적 쾌락을 추구해서 사회적으로 받을 비난에 대한 두려움과 뿌듯함에서 얻는 쾌락이 원초적 쾌락에서 얻는 쾌락보다 더 크도록 설정된 뇌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이게 바로 진사회성 생명체이다.
물론 진사회성이 없는 생명체는 선과 악과 같은 잣대가 형성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연탄을 들고 나르는 강아지를 볼 수 없다. 사회성이 없는 생명체는 단지 원초적 쾌락만 존재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개개인은 모두 어쨌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이기적인 존재들이 집단이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물론 나는 예측할 수 없다. 세상은 넓고 미친 사람은 많듯이 그건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밖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경향성은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다양한 예시를 보고 싶다면 <패거리 심리학, Sarah Rose Cavanagh>를 보자. 이 글에서는 이 글의 처음에서 언급한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서로 이간질하고 회유하는 현상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인간은 진사회성 동물로서 아래와 같은 손실 함수와 보상 함수가 설정되어 있다. 물론 산의 생김새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산의 수도 훨씬 많지만 설명을 위해 2개만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2개의 산을 같이 보며 조금 더 다각도로 보자, 아래 그림에서 민트색 아저씨는 동일한 사람이며 한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한다. 민트 씨는 소속과 애정에는 민감한 편이라 산의 모양이 높낮이가 급격하다. 반면 도덕성에는 민감하지 않아 평탄하다. 이러한 민감도는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과 기억에 의해 변형된다. 즉 사람마다, 때에 따라 산의 모양은 다 다르다.
이 민트색 아저씨는 지금 소속과 애정의 욕구가 숨이 막히도록 필요하지만 도덕성에는 민감하지 않아서 무슨 짓을 해도 아무렇지 않다. 그래서 민트색 아저씨는 회유하고 이간질을 해서 사람들이 나를 따르도록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아래와 같은 상태가 된다.
소속과 애정의 욕구는 이제 숨통이 트이고 도덕성은 여전히 살만하다. 그래서 총량적으로는 민트색 아저씨는 숨통이 트이고 이간질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다음에도 똑같이 행동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간질로 형성된 자신의 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독서를 통해 아래와 같이 지형이 변형된다.
그 결과 편안하던 도덕성이 숨이 막히게 되어 전체적으로 다시 숨 막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민트 씨는 이제 전과 같이 이간질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본다.
덕분에 도덕성은 숨통이 트이지만 이간질로 유지했던 관계가 틀어지며 여전히 전체적으로는 숨 막힌다. 그래서 민트 씨는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위해 공부하고 생활에 적용해본다. 그 결과 힘들었지만 겨우 숨이 트이게 된다.
여담으로, 이런 해피엔딩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학습이 필수적으로 필요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학습을 게을리하기 때문에 계속 이간질만 하고 다닌다.
이와 같이 거짓 뉴스에 휘둘리고 어떤 집단을 혐오하는 케이스도 같은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받아들인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나 손실은 적기 때문에 안중에도 없다. 단지 남들을 욕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남들에게 '좀 많이 아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여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것에 관심이 많다.
또한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구성원으로부터 배척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손실 함수에 민감한 사람이면 그냥 남들처럼 행동하며 휩쓸리는 것을 선택한다.
그래서 몇몇 집단은 산 중턱에 있으면서
"여기가 최고야!! 너희들이 뭘 알아? 여기가 가장 산소가 풍부한 곳이라고!!"
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패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패거리의 속을 잘 보면 사이비 종교에서 이상한 신을 믿는 것은 구성원들이 논리성에 민감하지 않아서 논리적이든 아니든 살만한 것이며, 그들끼리 모여서 소속과 애정을 나누며 오히려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논리성에 민감한 사람이 그런 집단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다.
그림으로 정리하자면 이상한 패거리가 형성되는 이유는 아래와 같은 패거리의 리더와 팔로워의 함수 구조 때문이다.
아래는 이상한 패거리의 리더
아래는 이상한 패거리의 팔로워(추종자)
그런데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이 남아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모두 뉴런에 의해 형성된 함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과 악도 그냥 함수에 불과한 것이다. 즉, 우리는 사회 속에서 재미있는 수학 함수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손실 함수와 보상 함수를 가지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아쉽게도 정답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간질을 하면서 돌아다녀도 상관없고 스포츠카를 타고 돌아다녀도 상관없으며, 사회적 기업을 운영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대로 결론 내리기에는 아쉽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학습을 통해 산을 내려가며 산소가 풍부한 곳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산을 타면서 굶어 죽을 수 있다. 즉 우리가 죽거나 인류가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래 3가지를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떤지 제안한다.
1. 끊임없이 과학적, 철학적 탐구를 통해 학습한다.
2. 기술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탐구한다.(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태양열 에너지 연구를 한다던지.. 등등)
3. 심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탐구한다.(우리가 우울증에서 빠져나와 탐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만든다던지 등등)
4. win-win-win 구조를 만든다.(문제가 생기면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모두가 좋은 해결방법이 없을지 많은 고민을 하자는 의미이다.)
여러분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정답이 없는 이 세상에 대한 괜찮은 방향성을 제안하고 싶다면 댓글을 통해 제안해주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듯하다.
이상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