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눈앞에 던져진 과제나 문제들을 꼭, 잘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나는 누구보다 컸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과제를 해결할 때까지(예를 들면 보고서라든지) 화장실도 안 가고 7~8시간 앉아 해치우고 마는 식의 나 스스로의 고집 같은 것이 있었다.
#02 삶을 살아가며 만났던 숱한 어려움들은 어쨌거나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마치 그것들을 해결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양 살아갔던 시간들이 꽤 길었다. 문제가 해결되거나 과제가 완수되지 않으면 그 생각에만 온전히 빠져 마치 내 삶을 내 정신으로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
#03 인생의 사이클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한동안은 그 무언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니, 그것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시간들을 오히려 즐겼다. 보통은 2~3년 주기였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
영어 선생님에게 빠져 영단어를 너무 열심히 외우던 시절. 급기야는 신기하게도 단어를 한번 보기만 해도 외워지던 시절이 있었다.(결국 영문학도가 되기로..)
일이 너무 재미있어 밤새는 줄 모르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기록으로 남겼던 시절
대학원 공부에 빠져 밤 10시 반에 수업이 끝나면 12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나서며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할 만큼 배움의 즐거움에 빠졌던 시절
남자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시절(결국 워킹홀리데이 가려고 모은 돈으로 결혼을 함, 그것도 가을에 가라는 걸 못 참고 뜨거운 여름날...)
둘째 아이 육아에 온통 빠져 하루도 빠짐없이 육아일기를 쓰고, 질문의 매력에 빠져 매일매일 질문 던지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던 시절(결국 육아와 질문으로 책까지 씀)
생각해 보니 그 모든 중독 같은 일상들이 결국은 그 순간 내게 던져진 문제와 과제들을 온전히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리라.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기준까지 속 시원하게 해결하고 나면 다른 것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그런 방식.
#04 하지만, 어찌 우리네 삶이 그렇게 과제가 하나씩 주어지고, 해결하고 마무리되는 단순한 양상이랴... 더군다나 나만의 삶이 아닌 내가 구성원으로 속해있던 곳, 내가 지금 속해 있는 곳, 앞으로 내가 속해서 살아갈 곳에서의 삶이란 결코 나만의 생각과 몸짓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걸.
늘 양극에 서서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듯한 나의 모습이 그 간극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은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견인하여 버텨낼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한 이후였다.
#05 아 어찌하란 말인가. 이 문제들을. 이 문제의 해결법이 도무지 있기나 하단 말인가... 아니, 해결할 재간이 없는 나는 이 문제들에서 조금 벗어날 수 만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게 마음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로, 나의 일상만은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문제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문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마지못해 배우고 있었다. 마치 아픈 몸이 더 무너지지 않게 입 속에 꾸역꾸역 밥숟가락을 집어넣듯이...
#06 그렇구나. 삶이란 동전의 양면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동전을 던지는 순간 허공에서 보여지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찰나의 여러 각도들 또한 존재하는 것이구나. 우리 삶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해결되는(어쩌면 영영 미해결인) 순간까지의 끊임없는 흔들림에 내가 함께 흔들리며 가는 거구나... 그렇구나...
#07 동전이 바닥에 떨어져 그 방향을 보여줄 때까지 나도 한없이 흔들릴 테다. 그 흔들림이 내게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리라. 오늘도 나를 한없는 심연으로 끌어내리려는 내 삶의 문제는 여전히 나를 옥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문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Live the questions now.
Perhaps you will then gradually,
without noticing it,
live your way into the answer."
-Rainer Maria Ril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