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미친 듯이 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5년? 아니, 어쩌면 10여 년으로 볼 수도 있겠다. 야근은 기본, 5년여는 새벽 퇴근도 수시로. 힘겨운 업무로 어깨는 늘 무겁고, 집에 와서 혹여 숨 돌리는 몇 분의 짬도 내게 주기 아까워하던 시간들. 일주일에 기본 3번은 화장도 못 지우고 쓰러지듯 잠드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나날들.(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그 일들을 너무나 사랑했고 기쁘게 했다는 사실)
#02. 집에 들어서면 음악을 틀어놓곤 했다. 음악이 나를 숨 쉬게 하는 유일한 창구 같기도 했다. 어느 가을날, 매일매일 쏟아지는 폭탄과 같은 업무로 지금 당장에라도 길바닥에 드러누울 것만 같은 몸을 이끌고 퇴근을 했다. 그대로 거실의 안마의자에 푹 들어가 잠이 들어버렸다. 20여분쯤 뒤 눈을 떴다. 그날따라 음악이 유난히 너무 좋았다.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03. '내가 이렇게 오롯이 음악에만 귀 기울였던 적이 언제였던가'? 늘 시간에 쫓겨, 내가 사랑하는 음악은 그저 오며 가며 일하는 중 배경음악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 순간은, 온전히 음악만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새삼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몇 분의 짧은 순간도 음악만을 감상할 수 없었던 나의 분주한 삶이 측은하기도 했다. 눈물이 글썽여졌다. 언젠가 일을 하다가 잠시 졸려 눈을 붙인다는 게 1시간여를 자버린 나 자신을 한탄스러워했던 생각도 떠올랐다.
#04. 무엇을 위해 이토록 내 몸이 망가지듯이 달려가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만큼 나 자신도 토닥토닥 보듬어주고 있는가? 아니, 나에겐 오히려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젠 내게도 쉼을 좀 주자. 그러자. 나도 숨 쉬며 살아보자. 쉬면서 가도 괜찮으니, 너무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가끔 파란 하늘도 올려다보고, 나를 더 사랑하자.
오늘 예쁜 가을날,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나를 아끼고 사랑해가고 있다. 나를 사랑해야 그 사랑의 힘으로 다른 이들을 더 사랑할 수 있으니.... 이런 지금의 내가 난 참 좋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직업을 선택했어요." (p31)
"나는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은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 (p47)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