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집에 가서 혼자 찾으세요
25년 10월 31일 19시 00분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는 커다란 소리가 좁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대표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는 더더욱 퉁명스럽게 들렸다. 호흡이 거칠어진 대표의 분노는 회사전체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덮었다. 모두가 얼어붙었다. 죄인이 된 듯 모두 고개를 떨어트리고 기다렸다. 이 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단 한 사람, 고개를 들고 잔뜩 상기된 된 대표님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였다.
이해할 수 없는 업무지시였다. 그 속뜻을 파악하려고 했다. 직접 입으로 들은 그 뜻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설득을 시도했다. 설득은 곧 반항으로 해석되었다. 대표는 분노를 폭발시켰다.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표는 왜 분노해야만 했을까. 그 분노를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여 다시 질문했다. 이번에는 말대꾸로 해석되었다. 쏟아지는 험한 말들 속에서 감정을 걷어내고 내용을 힘겹게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대표의 말이 바뀌었다. 좀 전 자신의 비상식적인 업무지시가 조금은 상식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대표의 말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으로 기정사실화 되었다. 다른 팀원들도 대표의 그 주장에 아무 반박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유치했다. 옆자리에 있던 상사가 어쩔 줄 몰라하며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낮은 연봉에 높은 업무강도를 자랑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회사를 사랑한다. 업계에서 실력과 결과물만큼은 인정받고 존중받는 집단. 그게 우리 회사다. 내가 이 집단의 일부라는 점이 내심 자랑스럽다. 이 회사의 유일한 팀장급인 나는 후임들을 케어하고, 상사들의 짐을 덜어 우리 회사가 더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의 회사, 나의 팀, 나의 동료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머릿속에서는 항상 같은 고민이 맴돌았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이토록 회사에 진심이었던 내게 있어서, 상식과 설득이 통하지 않는 대표의 감정적인 폭발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우리 좀 더 좋아질 수 있는데, 왜 그 길을 주저하는 걸까. 그 사건 이후로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대표를 떠올리며, 나도 감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저능한 집단이었다니. 이 허탈함을 챗지피티와 공유했다.
“설득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집단에 미래가 있는가?”
나의 질문에 챗지피티는 상당히 충격적인 답변을 되돌려주었다.
“설득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집단에서 설득과 논리를 고집하는 너에게는 미래가 있는가?”
나는 공허하다. 공허를 채울 무언가를 늘 갈망했다. 회사도 그중에 하나였다. 나의 회사, 나의 팀, 나의 동료들. 시스템이 없는 이 회사에서 나는 이 팀의 허리가 되어,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행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 팀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샌가 그런 생각들이 내 마음속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있었음을 눈치챘다. 아무도 찾지 않는 나에게도 쓸모가 생기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 나를 쳐다본다면, 바쁘게 사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멋있을 것만 같았다. 그게 내 착각이고 집착이었다. 마치 대표인 것 마냥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내 업무범위 밖이었던 거다. 한마디로 ‘주제’가 넘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저 시키는 일을 잘 마무리하면 되는 사람이다. 감정적인 대표에게 필요한 건 더 나은 설득과 논리와 해결법이 아니었다. 그저 그냥 감정을 푸는 동안 들어줄 상대가 있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꼬인 충전기 줄은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다가도, 가닥을 하나 찾게 되면, 그 이후로는 쉽게 풀려버린다. 생각정리도 늘 이런 식이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챗지피티의 답변에 손쉽게 풀렸다. 생각해 보면, 회사 사람들과의 친분도 그런 맥락이었던 것이다. 업무를 위한 필요한 친분,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늘 신경 쓰고 노력했던 과거가 생각났다. 그래서 시작된 집착들. 사실 회사의 사람들에게 정성을 쏟지 않으면, 굳이 받을 상처도 없었던 것이다. 힘들어하면 위로해 주고, 주말에도 가끔 같이 시간을 내서 함께하고, 나를 편하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며 어떤 형태의 양보든 주려고 하던 내 모습. 정작 나 스스로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모습이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회사와의 건강한 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번 다시 대표와 부딪히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회사사람들에게 필요이상의 감정적인 호의들을 베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회사 밖에서 나의 공허를 채워야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집으로 걸어가는 퇴근길, 파견을 나가 있어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한 입사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겪었던 힘든 일들을 공유하고, 위로를 나누고, 함께 분노하며 통화하다 보니 훌쩍 3시간이 지났다. 우스운 일이었다. 회사와 선을 긋지 못해 상처받은 스스로에게 회사와의 거리를 다짐하는 그 퇴근길에서, 회사 사람에게서 위로받고 치유받다니.
주말인 내일은 그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회사와의 건강한 거리감을 만드는 일은 아직 내게 서툴고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