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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Jul 11. 2021

주가 지수 같은 부부 관계

바닥을 친 부부관계는 언제쯤이면 고점을 찍을까

부부의 삶을 간략히 보여줄 수 있다면 주가 그래프와 비슷한 모양새가 아닐까.


그동안 주식 때문에 돈 좀 벌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들려와도 나는 무지렁이다운 엉뚱한 생각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가 지수처럼 부부의 삶도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하는 주가 지수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처음에 우린 다 좋았다. 남편의 첫인상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곰돌이 푸우를 닮은 세상 순박한 사람. 지구상에서 가장 무해해 보이는 내 이상형이었다. 남편도 나를 보자마자 바로 결혼을 떠올렸다고 하니, 우리 주가지수는 아마 기대치가 더해져 그때가 최고점이었을 거다. 그치만, 그건 콩깍지에 의한 거품효과 였다.


결혼하고 같이 살아보면 알게 된다. 말투 하나에 눈빛 하나에 거품은 쉽게 꺼진다는 것을. 깨진 환상에 반발하듯 싸우고 또 싸우면서 속으로 그랬다. 내 눈 앞에서 제발 꺼져주길. 그런데 니가 꺼지지 않으니 내가 꺼질 수 밖에. 문을 박차고 나가봤지만 금방 깨달은 건 감당하지 못할 서러움뿐이다.


 인간을 집에 두고  겨울에 집을 나섰다.  근처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고 태연하게 책이나   보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만 빼고  둘씩 앉아서 웃고있네. 싸우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우리도 저러고 있을텐데. 그걸 자각하는 순간 눈에서는 자꾸 물이 줄줄. 카페에  이상 머물 수가 없다.


어딜 가든 들어가 앉으면 울 게 뻔해서 그냥 길을 걸었다. 자정이 가까운 줄도 모르고 걷는 동안 양볼 깊숙이 겨울 바람이 차곡차곡 뱄다. 뛰쳐나가고 싶던 집구석에 너무 추워서 다시 기어들어왔다. 역시 집만한 곳은 없다. 얼굴에 스몄던 냉기가 오랫동안 집 안에 뿜어져 나왔다. 찬 바람이 다 도망가고 몸이 녹을 무렵, 나는 미운놈 옆에서 그냥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렇게 싸우던 시간 동안 우리의 주가는 바닥을 쳤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소소하게 함께 즐길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재우고 내가 몰래 아이방에서 나와 남편의 종아리를 꾹꾹 누르면 시작이다. 소리없는 암호를 통해 둘만의 시간을 알렸다. 그러면 남편은 베개 두 개를 들고 거실로 나와 넷플릭스를 켜고 같이 볼 영화든 미드든 적당한 걸 발굴한다. 시간이 11시를 훌쩍 넘겨도 우리는 여간해선 포기하지 않는다. 그 때가 아니면 둘만의 시간은 없다.


부부사이에 이런 약식 데이트는 꽤 효과가 있다. 그때 우리는 함께 웃었고 즐거워했고 다음엔 뭘 할까 기대했으며 쌓인 것들을 알게모르게 덜어냈다. 여러 *리스크에 의한 크고 작은 굴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나름의 우상향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위험 요인 : 자녀, 돈, 건강, 집안대소사, 기타 스트레스 등


그런데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찾아왔다. 그래프는 다시 우하향으로 곤두박질 쳤다. 밤 데이트도 소용 없어졌다. 같이 볼 영화를 고르는 데만 삼십분이 넘어갔고(심지어 뭘 볼까 고르다가 싸운적도 있다), 종아리를 꾹꾹 누르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망설여졌고, 남편이나 나나 영화를 틀어놓고 잠들기 바빴다.


뻔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이럴거면 안 하고 말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는 병원 문턱을 번갈아가며 밟았다. 늦은 시간까지 잠도 안자고 야식에 맥주를 곁들이는 생활에 젖어들면서 만성피로에 예민해진 것은 물론이고 몸까지 여기저기 고장이 났다.


예전엔 남편에게 툭하면 이런 꼬리표를 달았던 것 같다. '지만 아는', '무신경한'. 그런데 같이 병원을 드나든 이후로 남편을 보면 그런 생각만 드는 것이다. 나랑 같이 나이 먹어 가는.


그래서 요즘은 나 때문에 그가 너무 애쓰지 않길 바라고, 매일이 안녕하길 바란다. 지만 알아도 되고 무신경해도 좋으니 서로 건강하게 오랫동안 함께 하기만 한다면 그 정도쯤이야. 나 이제 좀 대인배 같아진건가. 그치만 내가 달라진 것을 남편이 알아채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인다  .


어느 날 새벽, 그냥 눈이 떠진 날이 있었다. 남편이 잘 자고 있는지 옆을 봤는데 글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자는게 아닌가. 아니, 무슨 나쁜 악몽이라도 꾸나? 나는 집게 손가락 모양으로 미간을 살포시 쓸어 펴주었다. 그리곤 남편의 인상이 편안해진 것을 보고 이내 돌아 누워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이 집에 와서 너무 피곤해하니까 물어봤다.


"여보 오늘 무슨 힘든 일 있었어? 오늘따라 유독 피곤해 보여. 당신 피곤하면 힘들어서 안 되는데..."


남편은 그런 날 보면서 갑자기 어이없다며 웃었다.


"아… 웃겨. 당신 나 오늘 왜 피곤해 하는지 진짜 몰라? 새벽에 당신이 내 이마 꼬집어서 나 영문도 모르고 5시에 깼어. 시계보니 5시더라."


"어? 나 당신 쓰다듬어준건데?"


뭐가 그렇게 웃긴지 아직도 배를 잡고 웃는 남편.


"뭐가 그렇게 미웠어? 혹시 나 나오는 악몽이라도 꿨어? 당신한테 꼬집힌 후로 잠이 안 와서 꼴딱 그냥 샜어. 잠을 못 자니까 너무 피곤하더라…회사에서도 너무 졸립고"


"아, 진짜 아닌데~! 내가 새벽에 깨서 봤는데 당신이 잔뜩 찌푸리고 자고 있더라고. 그래서 안쓰러워서 당신 악몽 꾸는 줄 알고 인상 펴라고 집게손으로…진짜 내 딴엔 쓰다듬은거야. 근데 그게 그렇게 세게 느껴졌다고?"


"어. 완전. 꼬집던데? 난 그래서 당신이 나 미워서 화나서 그런건 줄 알았어"


"자다말고 내가 뭐하러 그래. 아무튼 미안해. 내가 괜히..."


그동안 내가 남편에게 악행을 많이 저질렀나보다. 오늘은 의도치 않게 악행을 저질렀지만. 우량부부가 되기엔 아직도 멀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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