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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Jun 20. 2022

엄마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까

취미 가져보라는 말 하지 않기

엄마들이 스트레스 받을 때 어떤 방법으로 풀면 좋을까. 일단 뻔한 대답으로 '취미를 가져보라'는 이야기를 해야할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진 엄마들이 있다. '엄마'라는 이름은 같지만 삶의 모습은 다양한 것이다.


크게 본다면 누구는 맞벌이를 할 것이고, 누구는 전업 주부로 있을 것이다. 누구는 아이가 하나겠고, 누구는 아이가 여럿일 것이다. 남편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그 남편은 성격이 지랄 맞을 수도, 아니면 애처가일 수도 있다. 생활비가 넉넉할 수도, 빠듯할 수도 있다. 양가 부모님이 살아 계실 수도, 돌아 가셨을 수도 있다. 고부갈등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수다 떨 동네 친구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엄마들의 삶은 함부로 넘겨짚기 어렵도록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삶은 단순하지 않다. 곱셈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겹치면 곱절이 된다. 이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곱해보면 세상에는 다양한 삶을 가진 엄마들이 넘쳐날 것이다. 선택하고 싶은 것만 곱하면 좋겠지만. 감당하기 싫은 것만 곱해지는 엄마의 삶도 있을것이다. 그런 삶 속의 엄마라면 '취미'가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이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면, 그녀에게 필요한 건 취미보다는 안정된 삶 또는 충분한 휴식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낮잠 자기. 시간 제한 없이 가고 싶은 곳 마음껏 가보기. 하루만이라도 아무도 날 찾지 않기. 내 입맛 대로 삼시 세끼 먹어 보기(또는 건너 뛰기). 사고 싶은 것 돈 걱정 없이 사보기. 그러면 애써 취미를 갖지 않아도 저절로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이미 힘든 그녀에게 '그럴 땐 사람도 좀 만나고, 취미라도 좀 가져봐'라는 말은 뭘 모르는 소리. 


지금은 괜찮아졌으니 말할 수 있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 싫은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는 때가. 곱절이 되는 때가. 그때 누군가 내게 "그럴 땐 사람도 더 만나고, 운동도 좀 하고, 취미라도 좀 가져봐"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버티는 게 다였다. 버티는 게 사는 법이던 사람에게 취미란 가당치도 않다. 너무 힘들 때, 잠깐 누워 쉴 수 있는 빈 시간이 찾아오면 잠시 누워 눈을 붙이는 것으로 족했다.


시간은 못 견딜 것도 없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있다. 결혼 10년차가 되고 보니 그때 힘들던 모든 일들은 지금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잊혀졌거나, 아니면 지나가버렸다. 아니면 기억이 나더라도, 그냥 하나의 큰 카테고리 정도로만 떠오르고 만다. '아, 그때 나도 고부 갈등이 좀 있었지' 정도.


상황이 점점 나아지면서 내가 맞이한 첫 번째 변화는 내 하루 일과가 예측 가능하도록 일정해졌다는 것.


한창 암담하던 그때는 일이 저만치 달려가면 내가 매달려 숨차게 쫓아갔다. 그런데 변했다. 이제는 내가 먼저 정하고 일이 나를 뒤따라왔다. 


설명하자면 별건 아니다. 오전에 눈 뜨자마자 이불을 단정히 개어 놓고, 집안 전체를 청소하고, 전날 모인 빨래 돌려 놓고, 아이들 아침 챙겨 먹이고, 아침 설거지까지 모두 끝낸 뒤에 두 아이를 모두 등원시켰다. 아이들 보내고 나서 집에 돌아와 보면 아무것도 할 것 없는 홀가분한 빈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거대한 집안일이 너무나 작아졌다. 내가 생각을 정하면 그 많던 집안일은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들었다. 일이 나를 재촉하지도, 다른 누가 재촉하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힘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을 떨었다.


다음으로 찾아온 변화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무신경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이 뭐라고 떠들건. 잘 알지도 못하고 하는 소리에 나도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엄마들 세계에 속하면, 다른 엄마들의 입소문이 무서울 때가 있다. 나도 한 때 그들을 무서워한 적이 있지만 어느새 그들을 마주할 때 무덤덤해진 나를 발견했다.


그 다음은 감각이 풍성해졌다. 먹고 싶고,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뭘 먹어도 그게 그거 같던 입맛이 돌아왔다. 어딜 가도 뻔하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때로는 한 곳을 정해두고 자주 가더라도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더해지는 게 좋았다. 마치 내 인생을 비추는 티비가 있다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내가 너무나 사랑하던 취미가 떠올랐다. 20대때 나는 피아노 연습에 푹 빠져 있었다. 피아니스트 이루마님 덕분이다. 이루마 음악에 빠져서 나는 못 치는 피아노를 연습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이루마 곡 한 두 개 정도는 악보를 보고 제법 따라 치는 정도가 되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의 음악을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자 행복이었다.


내가 그렇게 열정을 불살랐던 취미였는데.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취미는 가장 늦게 기억났다. 결혼한 지 9년만이었다. 믿어지는가. 가장 좋아하는 걸 잊을 수 있다니. 가장 늦게 떠올릴 수 있다니. 


피아노 생각이 다시 간절해지던 당시, 우리집에는 피아노가 없었다. 친정에 있던 피아노는 일찌기 팔아 치웠다. 우리집은 애 둘 키우는데 피아노까지 놓으면 좁아 터져 못산다고 아예 놓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식탁에 앉아서 눈을 감고 토독 토독 식탁을 두드렸다. 이루마의 인디고를 치려면 건반이 이쯤에 있겠지 하면서. 그래서 알았다. 나에게 피아노 하나쯤은 허락해야겠구나. 너무 그립구나. 아무리 우리집이 좁아도. 아무리 애들 짐이 많아도. 미어터져도. 피아노가 없으면 안되겠다.


그렇게 결혼 9년만에 새 피아노를 샀다. 그마저도 엄마된 사람 마음에 치여서 아이에게 바이엘을 가르치겠다는 명목을 갖다 붙였다. 결국은 내 차지가 됐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이자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피아노. 피아노는 내 일상이 제자리를 되찾은 뒤에야 가장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다.


물론 취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훌륭한 수단이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취미란 마구 뒤섞인 불순물이 가라 앉고 난 뒤에야 마실 수 있는 맑은 물 같은 것이었다. 


비는 우리가 원하지 않을 때에도 내린다. 우산이 없다면 그 비를 그냥 맞을 수밖에. 그래서 쫄딱 젖었다면 옷이 마르길 기다려야 하고, 온통 흙탕물 투성이라면 흙이 가라앉기를 기다릴 수밖에. 시간은 또 맑은 날을 가져다 준다. 맑개 갠 날 보이는 무지개는 어쩜 그렇게 예쁘고 반가운지. 우리 모두 잊혀진 무지개를 떠올리길 바라며. 끝.


https://www.youtube.com/watch?v=IUWR_Nvik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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