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햄버거는 왜 안 먹어봐?”
오늘 저녁은 맥도날드 햄버거 세트를 먹기로 했다. 우리집 큰 아이는 신나게 놀고나서 몸이 지치는 날 꼭 불고기버거를 먹고 싶어한다. 집집마다 다른 집 아이들의 소울 푸드는 무엇일까.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연달아서 잡월드로 어린이 직업 체험을 가서인지 집에 오는 길에 태양이는 차 뒷좌석에 종이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햄버거를 먹으면 살 것 같단다.
녀석의 자양 강장을 위해 에그불고기버거 세트 2개, 상하이 치킨버거 세트 2개를 주문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과 불고기패티, 데리야끼 소스가 듬뿍 들어간 에그불고기 버거는 우리집 형제들의 최애 메뉴다.
반면 우리 부부는 그보다는 좀 더 매콤하면서도 닭고기로 조리되어 몸에는 덜 미안한 메뉴로 초이스.
딩동-
현관 문 앞에 햄버거 세트가 배달됐고 서둘러 버거를 세팅하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엄마 : 그런데 태양아. 오늘은 네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맥도날드에서 시킨거야. 우리 다음에 버거 먹고 싶으면 꼭 수제버거로 먹자!
태양 : 아, 난 싫어~ 수제버거엔 양파가 들어가잖아. 난 양파 들어간 버거가 너무 싫단말이야.
엄마 : 엄마는 맥도날드가 싫어~ 수제버거에 비하면 너무 맛도 없고, 재료도 별로 같아. 오늘도 먹기 싫은거 꾹 참고 먹는거야.
아빠 : 수제 버거가 왜 수제겠어~ 네가 원하는 대로 넣고 뺄 수 있으니까 수제인거지~ 다음에 양파 빼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태양 : 그래 알겠어… 난 그래도 맥도날드가 좋은데.
엄마 : 사실 엄마는 맥도날드 버거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맥도날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 그만 먹고 싶어…
태양 : 에이… 알았어…
아빠 : 혜성아, 넌 수제버거 만들면 어떤거 넣고 만들어달라고 하고싶어?
혜성 : 음… 난 양파 잘 먹는데. 형아는 양파 싫어하네. 난 양파 안 뺄거야. 그런데… 또 뭐 들어가지 엄마?
엄마 : 고기도 들어가고 치즈도 넣어도 되고…
혜성 : 또 뭐 들어가지?
엄마 : 양상추도 들어가고 토마토도 넣고…
혜성 : 난 그럼 그거 100장 넣어 달라고 할래!
아빠 : 엥? 그럼 너 입이 엄청 커야 먹을 수 있겠는데?
아빠와 혜성이가 깔깔 웃는다.
혜성 : 그런데 아빠 햄버거엔 소스가 다른 색깔이네. 흰색이야! 아빠 꺼엔 뭐가 들었어?
엄마 : 마요네즈!
혜성 : 그럼 또 다른거 있어?
엄마 : 응. 고기가 닭고기야~ 그런데 좀 매워서 먹기 힘들 수도 있어.
혜성 : 나 먹어볼래!
아빠 : 에이 못 먹을텐데 매워서…
아빠가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나는 눈짓으로 한 입만 줘 보라고 신호를 보낸다.
혜성 : (아빠 버거를 한 입 오물오물 하더니) 오히려 매워서 맛있는데? 나 또 줘!
이제 두 입 밖에 남지 않은 남편의 버거와 남편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내 버거를 대신 주려고 한다.
엄마 : 혜성아 이번엔 엄마꺼 먹어~
혜성 : 싫어! 엄마 건 안 먹을거야.
엄마 : …왜?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아서 그래~?
혜성 : 아니. 엄마 예뻐서. 엄마 예뻐서 햄버거 혼자 다 먹게 해주고 싶어.
그 말에 나는 잠깐 멍해졌다. 그 말 속에 얼마나 큰 사랑이 담겼을까 싶어서. 내가 그럴 자격이 되나. 미안한 것 투성인 엄만데.
아빠는 옆에서 웃으며 재빨리 자신의 상하이치킨버거를 아이에게 건넨다.
아빠의 햄버거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저녁 식탁은 금방 치웠다.
나는 잡월드에서 사온 퍼즐을 꺼내 태양이를 불렀다.
엄마 : 태양아, 우리 아까 사온 퍼즐 같이 맞출까?
태양 : 오 좋지~
엄마 : 근데 엄마가 아깐 미안했어.
태양 : 왜?
엄마 : 태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맥도날드를 맛없다고 별로라고 해서 미안해. 태양이가 가장 맛있게 먹는 햄버거인데, 그러니까 가족들이랑도 맛있게 먹고 싶었을텐데. 엄마가 맛없다고 말해서 속상했지?
태양 : 응… 나 사실 속상하긴 했어.
엄마 : 엄마가 더 존중하지 못하고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 다음엔 태양이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않을게.
태양 : 응! 엄마 좋아~
태양이는 그러고 나를 꼭 끌어안았다.
문득 내가 좋아서 먹고 있는 음식을 누군가 유독 싫은 티를 냈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무례했던 것 같았다.
어른이라고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어른도 아이에게 무례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햄버거 밥상. 오늘도 유쾌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