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생 Aug 30. 2022

유쾌한 가족의 대화 5

"절대 이 버튼을 누르지 마"

땅거미 지던 어제 저녁, 친구와 놀고 집에 들어온 아이 손에는 고장난 우산이 들려 있었다. 우산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들고 다니다가 그 우산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우산이 고장 난 것이다.


다음 날 비 예보가 있다는 소식에 나는 쿠팡에서 급하게 우산을 샀다. 그러나 로켓배송이 아니라서 우산은 당연히 등굣길 아침 현관 앞에는 배송되지 않았고, 결국 초등 아이가 다루기엔 좀 힘을 써야 하는 나의 2단 자동 우산을 빌려 줬다.


아이 딴엔 제법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공을 들였지만, 오늘 쓸 우산이 없어진 건 마찬가지였다. 앞으로는 우산이 망가지는 것도 조심하겠지.


그리고 오늘 아침 현관 앞에서


아빠 : 태양아, 이 우산은 자동이라서 이렇게 버튼만 누르면 팍! 하고 펴져. 한 번 해봐.


태양(10세,남) : (힘주어 꾹 누른다) 잘 안눌려지네...


아빠 : 다시 해봐. 더 힘줘서 꾹!!! 그리고 접을 때는 다시 버튼을 꾹!!! 누르면 바로 접혀. 한 번 해봐.


태양 : (더 힘주어 꾹 누른다) 오 됐어!


아빠 : 우산을 다시 펴고 싶을 때는, 길어진 우산을 완전히 접은 다음에 버튼을 눌러야 돼. 한 번 해볼래?


태양 : 응. 아...이거 잘 안되네.


아이는 우산 손잡이와 우산 꼭대기 양 쪽을 잡고 힘주어 늘어난 우산을 줄여 보지만, 팔 힘이 부족해서 잘 되지 않았다.


아빠 : 그럴 땐 우산 손잡이를 배에다 대고 우산 끝을 양 손으로 잡고 힘껏 배 쪽으로 잡아 당겨!


아빠 말대로 따라 해본다.


태양 : 아. 이제 된다!!


아빠 : 자. 이제 쓸 수 있겠지? 엄마 우산이라 좀 뻑뻑해. 아, 그리고 절대로 우산 펴고 나서 중간에 이 우산의 버튼을 누르면 안돼! 그러면 우산이 바로 접혀 버리니까. 절대 이 버튼을 누르지 마.


태양 : 알았어 ^^


아이는 집 현관문을 나서고, 아빠는 곧 베란다를 내다보며 아이가 우산을 잘 쓰고 가는지 찾아봤다. 아이가 1층 아파트 현관을 나서서 주차장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바로 그 때.


태양 : (지상주차장과 분리수거장 사이를 지나가며) ...'!'  아이의 머리는 접힌 우산 속으로 쏙! 들어갔다.


아빠는  모습을 껄껄껄 웃으며 지켜봤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아이의 가방과 옷을 적시고 있었다. 아이는 처음에 당황해서 허둥지둥 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우산 손잡이를 배에 대고 힘껏 잡아당겨 우산을 원위치 시킨  다시 우산을 펴는  성공했다. 그리고 유유히  길을 갔다.


아빠 : 여보! 오늘 태양이랑 나 우산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 아니 글쎄, 내가 절대 나가서 우산 버튼 누르지 말라고 했거든? 근데 설마 하는 마음에 베란다 나가서 태양이 가는거 지켜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 쯤 걸어가더니 누르더라. 우산이 갑자기 접혀가지고...내가 설마 설마 했는데 그럴 줄 알았어. 아유 참, 많이도 참았다. 그래도 주차장 까지는 안 눌렀네.


남편을 배를 잡고 계속 껄껄댔다.


나 : 어유...걔는 참. 절대 하지 말라면 꼭 해보고 싶은가봐. 우산 다시 펴는데는 성공했어?


남편 : 응. 아, 왠지 학교 가다가 호기심에 버튼 누를거 같아서 내가 절대 누르지 말라고 한건데. 아 진짜 눌렀어...내가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약간 의심이 든다. 남편은 정말 태양이가 학교 가다가 우산 버튼을 누르지 않기를 바랐던 걸까. 절대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한 번은 해보고야 마는 아이 습성을 너무 잘 알면서. 내 눈엔 다들 장난꾸러기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쾌한 가족의 대화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