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이 버튼을 누르지 마"
땅거미 지던 어제 저녁, 친구와 놀고 집에 들어온 아이 손에는 고장난 우산이 들려 있었다. 우산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들고 다니다가 그 우산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우산이 고장 난 것이다.
다음 날 비 예보가 있다는 소식에 나는 쿠팡에서 급하게 우산을 샀다. 그러나 로켓배송이 아니라서 우산은 당연히 등굣길 아침 현관 앞에는 배송되지 않았고, 결국 초등 아이가 다루기엔 좀 힘을 써야 하는 나의 2단 자동 우산을 빌려 줬다.
아이 딴엔 제법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공을 들였지만, 오늘 쓸 우산이 없어진 건 마찬가지였다. 앞으로는 우산이 망가지는 것도 조심하겠지.
그리고 오늘 아침 현관 앞에서
아빠 : 태양아, 이 우산은 자동이라서 이렇게 버튼만 누르면 팍! 하고 펴져. 한 번 해봐.
태양(10세,남) : (힘주어 꾹 누른다) 잘 안눌려지네...
아빠 : 다시 해봐. 더 힘줘서 꾹!!! 그리고 접을 때는 다시 버튼을 꾹!!! 누르면 바로 접혀. 한 번 해봐.
태양 : (더 힘주어 꾹 누른다) 오 됐어!
아빠 : 우산을 다시 펴고 싶을 때는, 길어진 우산을 완전히 접은 다음에 버튼을 눌러야 돼. 한 번 해볼래?
태양 : 응. 아...이거 잘 안되네.
아이는 우산 손잡이와 우산 꼭대기 양 쪽을 잡고 힘주어 늘어난 우산을 줄여 보지만, 팔 힘이 부족해서 잘 되지 않았다.
아빠 : 그럴 땐 우산 손잡이를 배에다 대고 우산 끝을 양 손으로 잡고 힘껏 배 쪽으로 잡아 당겨!
아빠 말대로 따라 해본다.
태양 : 아. 이제 된다!!
아빠 : 자. 이제 쓸 수 있겠지? 엄마 우산이라 좀 뻑뻑해. 아, 그리고 절대로 우산 펴고 나서 중간에 이 우산의 버튼을 누르면 안돼! 그러면 우산이 바로 접혀 버리니까. 절대 이 버튼을 누르지 마.
태양 : 알았어 ^^
아이는 집 현관문을 나서고, 아빠는 곧 베란다를 내다보며 아이가 우산을 잘 쓰고 가는지 찾아봤다. 아이가 1층 아파트 현관을 나서서 주차장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바로 그 때.
태양 : (지상주차장과 분리수거장 사이를 지나가며) ...'톡!' 아이의 머리는 접힌 우산 속으로 쏙! 들어갔다.
아빠는 그 모습을 껄껄껄 웃으며 지켜봤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아이의 가방과 옷을 적시고 있었다. 아이는 처음에 당황해서 허둥지둥 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우산 손잡이를 배에 대고 힘껏 잡아당겨 우산을 원위치 시킨 후 다시 우산을 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유유히 갈 길을 갔다.
아빠 : 여보! 오늘 태양이랑 나 우산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 아니 글쎄, 내가 절대 나가서 우산 버튼 누르지 말라고 했거든? 근데 설마 하는 마음에 베란다 나가서 태양이 가는거 지켜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 쯤 걸어가더니 누르더라. 우산이 갑자기 접혀가지고...내가 설마 설마 했는데 그럴 줄 알았어. 아유 참, 많이도 참았다. 그래도 주차장 까지는 안 눌렀네.
남편을 배를 잡고 계속 껄껄댔다.
나 : 어유...걔는 참. 절대 하지 말라면 꼭 해보고 싶은가봐. 우산 다시 펴는데는 성공했어?
남편 : 응. 아, 왠지 학교 가다가 호기심에 버튼 누를거 같아서 내가 절대 누르지 말라고 한건데. 아 진짜 눌렀어...내가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약간 의심이 든다. 남편은 정말 태양이가 학교 가다가 우산 버튼을 누르지 않기를 바랐던 걸까. 절대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한 번은 해보고야 마는 아이 습성을 너무 잘 알면서. 내 눈엔 다들 장난꾸러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