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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Sep 17. 2022

결혼은 무덤일까

결혼한 사람에게도 '목적'은 필요하다

'결혼이 무덤'이라는 말은 왜 생겨났을까. 이유야 많겠지만, 내 생각엔 아마도 결혼을 하고나면 남자는 남편으로, 여자는 아내로(또는 엄마/아빠로) 역할이 고정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혼을 하면 남편/아내라는 왕관이 우리에게 씌워지고, 그 왕관을 넘어설 더 큰 게 또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그동안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싶어했고, 학생에서 직장인이 되고 싶었고, 계약직에서 정직원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등등 변화와 성장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남편/아내 또는 엄마/아빠가 되고나면 그보다 더 큰 변화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생 끝판왕에 다다른 것 같다.


시간은 변화를 추구하면서 배우고 발전하는 데 쓰면 살아있지만, 변화 없이 어떤 일이 생기기만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면 그 시간은 죽은 시간이라고 한다. 


이미 인생 끝판왕에 다다른 것 같은데 더이상의 변화와 발전이 기대될 게 뭐가 있을까. 그러니 어쩌면 유부남/유부녀들은 죽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결혼은 무덤이라는 말이 생겨난 게 아닐까. 


나나 남편도 사실은 결혼이라는 무덤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결혼한 이후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기울였다. 때로는 밤잠을 줄여가며 노력하는데도 이 상태가 우리의 개인적인 발전이라거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의 체력과 돈을 써가며 일을 하고,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현재보다 사정이 차츰 좋아지길 바라며 유지하고 버티는 상태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새롭게 도전하지 않아도 지금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데 남편과 내가 굳이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해야 할까? 이제 변화란 오히려 환영할 일이 못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결혼'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결코 안정적이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종종 일깨워 준다. 우리가 아무리 현상태를 유지하고 싶어도 갑작스러운 실직, 건강의 악화라는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그런 일을 직면하면 기존의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최근에 맞벌이를 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일자리들을 알아봤다. 예전의 경력을 살릴 수도 있었고, 아예 새로운 일을 할 수도 있다. 집 가깝고 편한 곳에서 짧게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어느 회사에 정직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 내가 고려했던 조건은 단 두가지였다.


-근무 조건 : 근로 시간, 통근 거리, 복지, 사내 분위기 등은 괜찮은지

-연봉 : 월급/시급은 얼마나 주는지


누구라도 당연히 따져 볼만한 정말 현실적인 조건 아닌가. 나는 언제나 생활비, 식비, 아이 학원비, 월급, 직장에서 보장하는 처우 등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목을 멨다. 그래서 내가 일할 곳을 찾을 때에도 그저 한 달에 어느 정도의 수입을 낼 수 있고, 일하기 괜찮아 보이는 곳이면 무슨 일이든, 어느 곳이든 일단 오케이였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인 조건들이 사람을 가장 나약하게 만드는 줄 처음 알았다. 조건이 충족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실체를 알고 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구석이 있을 때 나는 너무 쉽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어졌다.


현실적인 조건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목적'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와 같은 '목적'이 없으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쉽게 고꾸라졌다. 결정적인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면 어떤 장애물이라도 거뜬히 견디게 해 줄 '목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목적을 찾으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엄마, 남편이 힘들 때는 힘이 되는 아내.

가정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독립적인 사람.

내 역할에 맡겨진 일에 철저한 사람.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글로 직업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상 분야에서 그 특성을 살려보면 좋을 것 같다.

영상도 어쩌면 한 편의 이야기니까.

그러려면 새로운 분야에 대한 배움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배우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아이들이 끝까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으로 남기를,

골고루 짐을 나눠 드는 나누는 삶이 되기를,

건강하고 지치지 않기를,

때에 따라 즐기는 삶이 되기를.



이런 종류의 생각을 별로 안 해보고 살아서일까. 스스로 이런 답을 내놓고도 이 답이 괜찮은 답일까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또, 이런 생각에 답을 하기 까지 어느 정도의 용기도 필요했다. 


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월급 받으며 적당히 시간 보내는 정도에 기준을 맞춰서만 살아왔던 내가, 갑자기 뭔가를 배우고 싶다니. 그것도 전혀 다른 분야인데 잘 할 수 있을까. 사실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꿈꿔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어떤 일/어떤 삶이라는 기준에서 생각 해 봤을때, 새롭게 배워야 한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다들 안정적이라고 하는 길만 따라서 공무원 시험, 자격증 시험에 목메고 있을 때는 불안하지는 않았는데. 결국 내가 만족할만한 결실은 못봤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길 말고,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볼 예정이다. 조금 불안하지만, 결실이 있기를.


어쩌면 지금 나는 결혼이라는 무덤 속에서 흙을 퍼내고 있는 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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