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소금소금-설탕설탕설탕
아이 눈에 비친 재활용품은 얼마나 신비로운 재료일까. 빈 페트병과 요구르트병, 휴지심만 있다면 아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 반짝이는 은박 껌종이, 금색 빵끈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작품에 특별함을 더해줄 신소재(?)나 마찬가지다. 금방 쓰고 버리는 물건들이 언제 이렇게 위상이 높았던지.
재활용품과 테이프만 있다면 마음 먹은 것은 어떤 것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마법. 그 마법이 다섯짤의 열정에 매일 같이 불을 지핀다. 어느 날은 너무 조용해서 아이 뒤를 따라가봤다. 다섯살짜리 만들기 박사님은 나 몰래 분리수거 통을 뒤져 나온 쓸만한 물건을 세면대에서 씻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해?!" 라고 몇 번 말해 봤는데, 그럴 때마다 박사님은 멋쩍은듯 낼름 혀를 내밀고 웃어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런 박사님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은 '엄마'라기 보다 만들기 박사님의 충실한 '조수'로 지내고 있다. '이건 버리지 마세요!' 한 마디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물건을 사수할 정도다. 어제는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요구르트 2개를 까 먹었다. 깔끔떠는 엄마로 살던 습관이 튀어 나와서 쓰레기통에 요구르트 병을 버리러 가던 찰나에 박사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엄마, 이건 집에 가져가자'
요구르트병을 담아갈 봉지가 없어서 가방 안에 찐득하고 달큰한 요구르트가 새어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난... 조수니까. 눈 질끈 감고 휴지로 대충 입구를 말아서 가방 안에 넣어 왔다. 유능한 만들기 박사님의 조수로 살아남으려면 까다로운 요구 사항도 이렇게 잘 들어 드려야 한다.
소중한 재활용품은 이러한 수집 과정을 거쳐 자동차도 되고 로봇도 되고, 망원경, 우주 정거장도 된다. 행여나 이런 작품들을 장난감처럼 취급하기라도 하면 큰일난다. 그보다는 엄청나게 멋지고 대단한 것이 세상에 창조 되었다는 듯 감탄하며, 안전한 곳에 모셔두는 편이 좋다. 아이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흡족했던 것 만큼이나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최근에 박사님은 휴지심을 이어 붙인 신기한 망원경을 만들었다. 이 장치는 겉보기에는 조준경이 달린 평범한 망원경이지만, 놀라운 비밀 장치가 숨어 있다. 바로, 귓속말 장치인데. 귀에 대고 말하면 소리가 더 잘 들릴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은 기계를 통해 지나가는 소리를 절대 듣지 못한다.
나는 박사님의 훌륭한 조수로서, 이 기계의 기능을 테스트하는 첫 번째 실험자가 되었다.
혜성 : 엄마! 이리 와봐. 귀 가까이 대봐.
"이거 근데 망원경 아니야?"
혜성 : 이거 귓속말도 돼! 내가 뭐라고 하나 맞쳐~봐!
"알겠어. 그럼 대신 조용히 말해줘야 돼. 갑자기 크게 말하면 안 돼~"
혜성 : 알겠어. 소금, 소금, 소금
"소금, 소금, 소금! 맞췄지? 그럼 이번엔 엄마 차례~ 설탕, 설탕, 설탕"
혜성 : 앗, 간지러워~ㅎㅎㅎ 그럼 이번에는... 소금, 소금, 소금
"근데, 소금 말고 소곤소곤 아니야? 어쨌든... 자, 이번엔 엄마 차례~ 후추, 후추, 후추"
혜성 : 에헤헤헿 더 간지러. 자 이제 내 차례.
혜성 : "후~~~~"
망원경 구멍을 통해 아이의 입바람이 귀에 정통으로 꽂혔다.
"꺅!!!!!!!!!!!!!!!! 소름끼쳐!!!"
충실한 조수는 오늘도 짜릿한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