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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지도 연재 일시정지 사유

기다리셨던 독자분께

by 난생


연재 잠시 쉬어갑니다 – 더 깊어진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안녕하세요, 난생입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상처의 지도’를 찾아와 주신 구독자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9화 이후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아 궁금하셨을 분들에게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솔직히 나누고자 합니다.



1. 트라우마와 다시 마주하기 – 생각보다 큰 파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담담할 줄 알았습니다. 연재 초반만 하더라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 몸에서는 점점 신호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밤부터 슬픈 과거를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잠들었고 어떤 토요일은 낮에 쉬는 시간만이라도 옛날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정주행을 미뤘던 드라마를 보기도 했습니다. 다시 힘을 내서 책상 앞에 앉아 과거의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갖고 나면 글 하나가 완성됐고, 일요일은 기절하듯 잠에 빠져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픈 기억을 소환하고 직면하는 작업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제 욕심만큼이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7회차부터 '오늘은 그냥 적당히 넘어갈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어렵게 시작한 연재를 어설프게 마무리하고 싶진 않아서 꾸역꾸역 버텼습니다. 그렇게 세 번의 주말을 버티고 새로운 주말을 맞이한 토요일 아침, 가만히 앉아 티비를 보고 있던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 이번주는 그냥 쉬어야할 것 같아.

생각해보니 벌써 세달째더라. 난 지금 세달째 매주 주말을 힘든 기억을 돌아보며 살고 있는거였어...

더 이상은 그럴 힘도 없고 지금은 뭘 쓸 때가 아닌거같아'



2. 상처를 극복한 아이가 지금 원하는 것 – 블렌더


저는 3년 차 인하우스 디자이너입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배우고 싶은 것이 많고, 그중 하나가 3D 툴 블렌더입니다.


하지만 주말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그걸 쓰고, 다음날 뻗어버리는 루틴을 반복하다 보니 블렌더를 배우는 걸 결국 놓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돈보다 시간이 더 귀하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연재와 블렌더 배우기를 동시에 해낼 체력이 제겐 없더라고요.


그래서 당분간 주말은 블렌더에 집중하기로 했고, 연재를 그만둔 주부터 열심히 블렌더를 배우고 있습니다.


외롭던 어린시절을 지나온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꿈을 이루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 때 제 꿈이 디자이너였거든요.

(연재할 내용에 어린시절 꿈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아직 풀지 못했어요.)


저는 지금 회사 제품을 블렌더로 3D모델링하고 실감나게 렌더링하는 일에 매달려있습니다.


아직은 배우는 단계라 회사에는 비밀입니다. 몰래몰래 점심시간 15분 정도 남았을 때 회사 제품 모델링 해보고 은밀하게 실패하고, 다시 또 도전해보고 실패하고 어? 이정도면 괜찮네도 경험해보고 그렇게 작은 성공을 경험하는 것이 요즘 제 인생 낙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꼭 하고싶은 걸 하고, 배우고 싶은 걸 배우세요. 주변에서 '~~해서 별로다 하지말아라'이딴 소리 절대 듣지마세요. 나중에 저처럼 나이먹고 후회해요. 그리고 결국은 그 주위를 배회하게 됩니다. 그러니 꼭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세요.


어쨌든, 요즘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면서 블렌더도 열심히 배우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상처의 지도 – 더 깊어진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상처의 지도를 포기한 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어진 시선과 회복된 체력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기억하고 기다려주신다면 더 성숙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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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곰 – 가장 예쁜 기억 하나


아름다운 건 그 자체로 위로가 됩니다.


외롭고 슬펐던 날도 많았지만,

예쁜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밝은 모습을 간직한 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유리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저는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귀여운 건 그냥 귀엽기만 한 줄 알았던 어린 저에게,

귀여우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유리곰.


작고 투명한데 반짝이고, 빛에 비추면 더 예뻤던 유리곰.


핑크색 유리구두는 제 것이었고, 유리곰은 남동생 것이었기에

내 것이라 말하진 못했지만, 몰래 예뻐하고 귀여워했던 그 유리곰.


이젠 흔한 장식품이지만, 그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어른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은 참 다르지만,

그 시절 행복을 지금도 기억하게 해주는 유리곰입니다.

블렌더로 그 유리곰을 떠올리며 만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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