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아일체(會我一體) 형

<내가 곧 회사이니라>

by 난새

회사생활백서 002: '회아일체(會我一體)'와 함께


​"혹시 당신의 팀에도 '우리 회사'가 아니라 '내 회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회의 시간마다 '이러다 우리 회사 다 망한다'며 한숨을 쉬지만, 정작 대안은 당신에게 찾는 바로 그 사람말이다."

​회아일체(會我一體) 생존 가이드: "회사가 나"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법

​고요하던 사무실, 누군가의 깊은 한숨 소리가 정적을 깬다. 그리고 굳이 먼저 물어본가.

“아, 김대리. 요즘 매출이 너무 걱정되지 않아? 나 진짜 어젯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 진짜 이거 큰일이야”


회사의 위기가 곧 자기 인생의 위기인 듯 말하는 고 부장. 그는 지금 당신에게 위기 극복을 위한 답을 원하고 있다. 물론, 그 자신도 답은 모른다.

​혹시 당신의 팀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자신을 회사와 동일시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회아일체(會我一體)’형 인간이라 부른다.

​그들은 누구인가: 베테랑과 고인물 사이

​주로 첫 번째 회사 거나, ‘공채 기수’ 문화가 존재하는 회사에 이런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부분 연륜이 묻어나는, 소위 ‘오래된’ 분들이다. 한때는 회사를 이끌던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의 집합체였고, 좋게 표현하면 베테랑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고인물이다.


​본인의 청춘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친 곳이니, 그 애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들에게 회사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회사가 곧 나요, 내가 곧 회사니라.”

그러니 회사의 흥망성쇠가 곧 나요, 내가 곧 회사의 대표니라. 회사가 잘 나가면 그게 나 때문이요, 회사가 망할 것 같으면 그건 너 때문이요.


여기서 '너'는 특정 누군가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외부 요인에서 이유를 찾는다. 본인 인생에서 이 회사를 지우면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는 사람들. 취미도, 특기도, 심지어 가족마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때로는 자기 자신보다 회사가 우선인 안타까운 경우도 더러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을 봤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것 같다.


걱정은 나의 몫, 해결은 너의 몫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이 ‘애사심’이라는 말로 포장하기 좋고, 회사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깊게 파고들면 마냥 그렇지도 않다.


​결국 그 사람도 회사의 진짜 대표가 아니기에, 무엇이 ‘진짜 중한지’ 모른다. 본인 부서 업무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니 아는 게 전부일 수밖에 없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거다. 어깨너머로 들은 몇 가지 정보로 회사의 전체를 꿰뚫고 있는 듯 착각할 뿐, 회사를 위하는 마음만 가득하지 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걱정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근심, 걱정 나에게 오라.

걱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 걱정을 제3자에게 전가시킨다. 나만 이 걱정을 하는 게 억울한지 ‘너도 같이 해!’라는 식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작 본인은 걱정만 할 뿐 답을 찾지 못하면서, 나에게는 답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미칠 노릇이다. 나에겐 그게 걱정거리가 아니었는데, 굳이 ‘걱정’이라는 프레임으로 문제를 재정의해서 숙제로 던져준다.


그러고는 해답을 바로 내놓지 못하면 “그것도 못하냐”라고 한숨을 내쉰다. 내가 혹시 그 걱정의 해결책을 되물을까 두려워 먼저 선빵을 치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사실 이들이 실력이 없어서 해결을 상대에게 미룬다기 보기는 힘들다. 진짜 걱정이 많아서 그렇다. 그러니 어떠한 해결 방안을 들어도 본인이 경험한 알고 있는 모든 항목별 카테고리별 걱정을 붙여서 결국 안될 것 같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어이쿠, 일이 넘어간다>

​우리가 매일 겪는 ‘회아일체’의 순간들은 보통 이런 모습이다.

​1. “내가 해봐서 아는데” 형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미세한 여유를 머금은 미소를 띠며, 어김없이 팔짱을 끼며 말한다. "아, 내가 10년 전에 다 해봤어. 근데 쉽지 않아. 그때 아마 그것 때문에 고생 쫌 했지. 결국 다시 빽도 했잖아." 그들이 말하는 10년 전과 지금의 시장, 기술, 고객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경험이 곧 회사의 역사이자 넘을 수 없는 ‘성경’이 된다.


​2. “걱정 전가” 형

주말에 뭐 했냐는 일상적인 질문에 대답이 이렇게 돌아온다.

“요즘 잠이 안 오네요. 진짜 회사가 큰일 날까 봐 걱정이에요.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 진짜 대책을 세워서 방안을 마련해 봐야겠어요. 어떻게 방법 없겠어요? 진짜 원래 하던 대로 하면 안 됩니다."

회사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본인의 불안감을 전가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아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딱히 묘수가 없다. 그러니 듣는 사람은 어쩌라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모든 게 본인이 걸어온 삶을 중심으로 얘기한다. 회사=나 그러니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했나 보다.


​3. “대표 빙의” 형

타 부서의 업무나 경영진의 결정에 대해 마치 자신이 모든 정보를 아는 것처럼 비판한다. 때로는 비난을 한다. "이번 신사업, 내가 봤을 땐 1년 안에 접어. 내가 이 바닥을 얼마나 봤는데." 하지만 그 정보의 출처는 대부분 ‘어깨너머로 들은 이야기’ 일뿐이다. 그리고 대표님이라면, 내가 대표라면 이렇게 할 거라고 미리 선단을 한다. 나는 아직 대표님 앞에 보고도 못했는데, 그렇게 나의 제안서는 다시 폴더로 들어간다.

(삭제하지 말아라, 기가 막히게 다음에 써먹을 때가 있으니)


​회아일체와 함께하기 위한 생존 가이드

​그렇다면 이들의 걱정 폭탄과 책임 전가에서 나를 지키고 현명하게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1. 메아리 화법: 공감의 방패를 들어라

​이들을 상대할 때 당신이 제안한 ‘메아리 화법’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를 뒤바꿔, “당신의 걱정에 깊이 동의하니,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이다.

• ​(상대) “이야, 진짜 이러다가 회사 큰일 나겠어. 요즘 매출이 안 따라오는 게 문제야.”

• ​(나) “네, 말씀하신 대로 요즘 매출이 안 따라오는 게 정말 문제인 것 같습니다. 회사가 큰일 나기 전에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알맹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의 걱정에 동조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며 감정적인 공격을 막아내는 최고의 방패가 된다. 근데 진짜 이런 사람들만 있으면 진짜 큰일 난다.


​2. 데이터로 말하기: 감정을 팩트로 전환해보자

​‘회아일체’는 주로 감정과 직감에 의존한다. “이러다 큰일 나겠어”라고 하면, “어떤 부분에서 가장 큰 리스크가 발생할 거라고 보십니까?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결 우선순위를 정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감정적인 대화를 ‘사실’과 ‘데이터’ 기반의 토론으로 바꾸면, 밑도 끝도 없는 걱정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그런데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뿌리로 말해야 한다. 안 그러면 가지치기당할 수 있다.


3. 사회적 거리두기 : 코로나만 거리 둘게 아니다.

최대한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거다. 코로나 때도 2m냐 3m냐 얼마큼 떨어지냐에 따라 전염이 줄어든다고 했다. 그리고 대답은 'ㅂ'화법으로 빠르게 종료하자. "아, 넵!" "알겠습니답" 내가 답이라고 말해도 답이라고 안 들으니 대답이라도 '답'하고 끝내자.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 신속보고 신속이탈, 은폐엄폐하자.


‘회아일체’. 그들의 청춘과 헌신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의 찬란한 과거의 영광과 미래의 보이지 않는 불안을 지금의 우리가 짊어질 필요는 없다. 현명한 거리 두기와 영리한 대화법으로, 회사와 나를 건강하게 지켜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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