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팀에겐 젠틀, 내 팀에겐 폭군>
회사생활백서 001: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생존법
당신의 리더는 좋은 사람인가? 다른 팀에서는 '젠틀하다', '스마트하다'라고 칭찬이 자자한데, 왜 유독 당신과 팀원들에게만 사소한 일로 가혹하게 구는 걸까? 회의실 문이 닫히는 순간, 젠틀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 적 있다면, 당신의 상사도 '변질된 외유내강'일지 모른다.
외유내강(外柔內剛) :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하게 보이나 속은 곧고 굳셈.
본래는 좋은 뜻이다. 나 역시 '외유'하고, '내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저 이상형일 뿐. 그런 사람을 보면 존경하고, 관찰하고 따라 하며 나만의 색을 갖추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만난 몇몇 사람은, 이 멋진 말을 마음이 아닌 '태세 전환'의 무기로 사용했다.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다.
외부 사람에겐 한없이 유하고,
내부 사람에겐 한없이 강하다.
외부 사람들, 즉 같은 부서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른다. 오직 내부 사람들만 그 진짜 얼굴을 안다. 타 부서의 협조 요청에는 '언제든 편하게 말씀 주세요 : )'라며 세상 친절한 답장을 보내지만, 팀 막내가 낸 보고서의 사소한 오타에는 '이건 일에 대한 기본 태도가 안 된 것'이라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는 식이다.
보통 이런 유형이 후배나 동기라면 조금 거슬리는 정도에서 그치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상사, 특히 리더의 위치에 있다. 팀장 이상급은 실무보다는 관리를 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려 최고의 성과를 내는 역할을 한다.
결국 이들에게 [성과 = 관리]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문제는 그 관리의 초점이 '업무'가 아닌 '사람'에게 맞춰질 때 발생한다. 본인이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깊이 알기 어려운 실무 영역일수록, 리더의 포커스는 일의 논리보다 사람의 태도로 향하기 쉽다. 나의 성과는 관리요, 관리가 곧 나의 능력이니라. 그래서 보인이 능력이 있어서 성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관리는 곧 내부 구성원을 통제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업무의 진척 상황이나 논리적 허점보다는 "김 대리는 요즘 표정이 왜 그래?" 혹은 "이 과장은 보고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와 같이 지극히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평가로 팀원들을 옭아맨다.
'직급이 깡패'라는, 군대에서 떠도는 그 말이 생각난다. "병신도 병장 되면 신이 되지만, 신도 이병으로 들어오면 병신이 될 수 있다"라고. 당시에는 너무 비하발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대할 때쯤 알았다.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그만큼 관계의 위치가 주는 무게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그 무기를 철두철미한 '사람 관리'와 '외부 의전'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외부의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는 이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잡음 없이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슈가 발생해도 빠르게 잠재운다. 당연히 눈에 들 확률이 높다. 어쩌면 회사도 이들의 효용을 알고 적절히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건가.
이런 '외유내강'형 리더를 만났을 때,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소용없는데, 뭐 극단적으로 내 몸을 희생해서 철옹성 같은 바위에 나의 노른자라도 남기 깄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결국 내가 깨지는 것이다.
감정적인 호소나 논리적인 반박은 '내부인'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그들은 이미 그들만의 생존 법칙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들의 방식을 역이용하는 영리함이 필요하다.
전략 1: 스스로가 그에게 '외부 사람'이 되어라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처럼 보이는 것이 전략이다. 그들이 외부 사람에게 젠틀한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의 통제 밖에 있고, 자신의 평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내부 사람'이 아니라 '능력으로 증명하는 외부 전문가'처럼 보여야 한다. 업무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고, 그가 감히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전문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나의 성과가 곧 그의 성과가 되지만, 그 과정의 주도권은 오롯이 나의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나를 함부로 대하기보다, 자신의 성과를 위해 잘 관리해야 할 '외부 자원'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자칫 '개인플레이'로 비치거나 상사와의 건강한 소통마저 단절시킬 수 있다. 팀의 목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영리하게 줄타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략 2: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라
그들의 사람 관리는 '내가 보기에', '내 생각에는' 같은 주관적 판단에 기반을 둔다. 여기에 맞설 유일한 무기는 객관적인 사실, 즉 데이터와 기록이다.
모든 업무 지시는 메일로 받고, 회의 내용은 반드시 요약해서 공유하며, 나의 성과는 수치화된 보고서로 증명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방어적인 태도를 넘어, 그들의 '철두철미한 인물 관리' 프레임에 나의 '철두철미한 실무 관리'로 응수하는 것이다. 그들의 주관이 개입할 틈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방법은 당신의 시간과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략 3: 나만의 '외부 평판'을 구축하라
그들이 외부에 좋은 이미지를 쌓아 무기로 활용하듯, 나 또한 나만의 우군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부서와의 협업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고, 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줄 사람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내 상사가 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려 할 때, 외부에서 "아닌데? 그 사람 일 잘하는데?"라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것. 이것이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략 역시 상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춰져 더 큰 견제를 받을 수 있으니, 드러내놓고 '내 편'을 만들기보다 자연스러운 협업 과정에서 실력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뭐든 실력이 빠진 상태에서 관계로 해결하려고 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결국 이런 외유내강형 리더 아래에서 생존하는 법은, 감정적으로 맞서기보다 시스템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들의 놀이터에서 그들의 규칙을 따르는 척하며, 나만의 규칙으로 나의 영역을 지켜내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진짜 '내강(內强)'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