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인터넷 천리안으로 선견지명 하는 그 사람>
“이번 프로젝트, 내가 보니까 조짐이 안 좋아. 그거 결국 뒤집힐걸?”
결정적인 순간마다 작두를 타는 사람이 있다. 엑셀 수치나 시장 조사 보고서 대신, 본인의 ‘촉’과 ‘기운’을 의사결정의 척도로 삼는 노스트라다무스.
나는 당장 1번인지 2번인지 결론을 내려달라고 애원할 때, 그는 먼 산을 보며 천기누설 같은 모호한 예언만 늘어놓는다.
데이터를 믿느니 본인의 낡은 경험을 믿고, 팀의 성공보다는 본인의 예언이 적중했는지에 더 집착하는 사람. 오늘도 “거봐, 내 말대로 됐지?”라는 한 마디로 동료들의 사기를 꺾고 있는 우리 팀의 ‘선무당’에게 이 글을 보낸다.
1. 뇌 속에 화석이 된 경험이라는 권력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자부심은 때로 강력한 눈가리개가 된다. 이들에게 근거와 기록은 귀찮은 서류 뭉치일 뿐. 이미 뇌 속에 화석처럼 굳어진 데이터는 '감각'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된다.
사안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린 결론에 끼워 맞추는 식.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중얼거리는 그들의 확신은, 사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찾은 최후의 방어기제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예언'이라는 공격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2. 눈앞의 발등불보다 천리 밖의 신기루
실무자는 당장 '1번이냐 2번이냐'의 갈림길에서 결정이 필요한데, '천리안'은 십수 앞의 미래만 논한다.
"이거 누가 얘기한 거냐? 출처가 어디냐?"
"라떼는 이거 그냥 했던 건데, 누가 뒤에서 작전 치는 거 아니냐"
"내가 보니까 이거 다음 스텝을 위한 밑장 까는 거네"
본질을 흐린다. 정작 눈앞의 팩트는 보지 못한 채 저 멀리 뜬구름을 잡으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은 동료들의 속을 타게 만든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면한 과제의 해결'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멀리 보는 사람인가'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팀의 패배를 기뻐하는 '비극적 적중'
가장 허망한 순간은 그 예언이 나쁜 쪽으로 실현되었을 때이다. 설령 그 결과가 팀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졌을지라도, 그는 자신의 신격화에 몰두한다. 마치 한일전에서 일본의 승리에 돈을 걸고, 조국이 패배하자 내기에서 이겼다며 어색하게 환호하는 꼴이다.
"거봐, 내 말대로 됐지?"
이 한마디는 팀워크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팀의 실패를 바라는 뒤틀린 우월감, 그것이 천리안의 가장 어두운 단면이다.
4. 천리안과 공존하는 법: '리스크 점술가'로 임명하기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이미 영접한(?) 신령님을 모시고 일하기로 했다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
의사결정은 내가, 리스크 체크는 네가
: 팩트체크를 그에게 기대하지 마라. 대신 새해 운세를 보듯
"혹시 제가 놓치고 있는 불길한 징조가 있나요?"
라고 질문하자. 그의 비관적인 예언을 '리스크 필터'로만 활용하는 것이다.
영접하는 마음가짐
: 그의 예언을 전략적 조언이 아닌, 하나의 '기상 현상'으로 받아들여 보자.
"저분은 또 저 멀리를 보고 계시는구나, 십 수 앞."
라고 흘려보내야 내 멘탈을 지킬 수 있다.
"그가 노스트라다무스든 작두를 타는 선무당이든 상관없다. 나는 내 갈 길을 갈 테니, 당신은 그저 혜안을 가진 천리안으로 리스크나 좀 봐주시라."
혹시 당신의 팀에도 데이터보다 '촉'을 믿는 무당이 있는가.
자, 이제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만약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라.
그 무당이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