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다이가 두려운 고독한 다이(die)>
회의 시작 3분 전, 복도 저편에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저 멀리 학익진(鶴翼陣)을 펼친 것처럼 호위무사들이 오와 열을 맞추며 등장한다.
안건의 경중은 중요치 않다. 그는 마치 고고한 학처럼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보필하는 이들의 발소리를 배경 삼아 회의실로 입성한다.
그에게 절대로 '나 홀로 참석'이란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적진(회의실)에 홀로 발을 들이지 않는 철저한 학익진 전법. 오늘도 그는 인해전술로 상대의 기를 죽이고 안건을 묵살시킨다.
그래서 그와 미팅을 잡으면 우리는 안건보다 먼저 대회의실부터 예약해야 한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가 끌고 올 거대한 '자존심의 부피'를 감당하기 위해서 말이다.
함께하는 호위무사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명확하다. '내 편'에게는 확실한 당근을, '반대편'에게는 가차 없는 채찍을 휘두르는 것.
상벌이 이토록 선명하니 그의 진영은 그를 추종하는 자와 혐오하는 자로 나뉘었다가 채찍이 두려운 이들은 결국 그의 날개가 된다. 그리고 그 날개는 더욱 단단해진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무자가 이 내용 다 알아요."
"실무자가 일을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 같이 참석했어요, 맞잖아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틀린 데가 없지만, 그 말을 뱉는 눈빛은 묘하게 흔들린다.
논리는 그럴싸하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혼자 결정하기엔 어딘가 불안하고, 혹시 모를 책임의 화살을 분산시키기 위해 늘 '우리'라는 이름 뒤에 숨는 것이다.
대열에서 이탈하는 순간 채찍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 호위무사들은 살기 위해 그 대열을 유지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그는 그토록 우아한 자태로 학익진을 고집하는 것일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에게 회의는 안건을 해결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고고한 날갯짓 뒤에 숨겨진 서글픈 권력욕과 책임 회피. 어쩌면 그가 펼친 거창한 학익진은 '가면 증후군(Impostor Syndrome)'이 만들어낸 슬픈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빈약한 논리가 탄로 날까 봐 두려운 나머지, 날개들의 유능함을 빌려 위상을 유지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인 셈이다.
테이블을 가득 채운 머릿수. 그는 그 숫자로 자신의 결핍을 과시적으로 보상받는다. 혼자 들어와 논리로 '설득'하기보다, 여럿을 거느리고 들어와 '위세'로 찍어 누르는 권력자가 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보통 이런 리더를 만나면 먼저 그의 날개에게 말을 건넨다. 상냥하게.
"아고, 김대리님 진짜 고생 많으시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리더의 날개이자 호위무사들의 노고를 인정해 주자.
호위무사는 ‘리더의 병풍’이 아닌 ‘협업의 파트너’로 병풍 같은 방패를 내려놓으며 긴장의 끈이 풀릴 것이요.
그리고 리더는, 본인이 칭찬받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결국 회의실에서 살아남는 건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쪽이 아니라, 상대의 날개마저 내 편으로 만드는 유연함을 가진 자다.
회의실을 나서며 가끔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의 날개였을까.
날개 뒤에 숨어있던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