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대

<망치 찾다 망치고, 못 찾다 일도 못하는 사람>

by 난새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대여. 아니, 정확히는 '망치'에 미친 고독한 예술가여.


​"잠시만요. 흐으으으음 일단, 가만히 있어보자..."


​큰일이다. 긴급 상황이다. 일정은 이미 데드라인을 넘었는데 그는 일단 가만히 있으란다.


한시가 급한 팀원들 속은 타들어 가는데, 그는 모든 사안을 장인 정신으로 검토하는 중이다. '신중함'이라는 근사한 방패를 들고 있지만, 그의 신중함은 종종 기괴한 방향으로 흐른다.


​기획안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 폰트 자간 1pt에 목숨을 걸고, 협력사 미팅 전에는 회의실 생수 브랜드가 격에 맞는지 고민하다가

"역시 물은 에비앙이지"

라며 엉뚱한 데서 자아를 실현한다.


진짜 장인은 다리의 균열을 보고 보수 계획을 짜지만, 이 '가짜 장인'은 다리를 두들길 망치가 장도리인지 고무망치인지 고르다가 결국 뿅망치를 들고 나타나 가위바위보를 하고 앉아 있다.


<콩콩콩콩 금방되니꺼 잠시만 기다리쇼>

​그는 문제가 있는 돌다리 앞에서 정작 '다리'는 보지 않고 망치를 찾으러 떠난다.


"아니, 지난번에 썼던 그 망치 어디 갔나요? 그게 그립감이 좋은데."


망치를 고르다 골든타임을 다 흘려보낼 기세다. 어느새 그의 집착은 망치를 넘어 '못'으로 옮겨간다.


​"이 못은 녹슬지 않았을까?"

결국 그는 며칠간 못집만 전전하다가, 정작 다리는 구경도 못 한 채 돌아온다.


본 건 없는데 '못' 본 것만 늘어가는 꼴이다. 하루 종일 다리 근처에도 못 갔으면서, 본인은 누구보다 디테일에 강한 장인 정신을 발휘했다고 굳게 믿으며 스스로의 고결함에 취한다.


​심리학적으로 이런 상태를 '부적응적 완벽주의'라 부른다.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실패에 대한 공포'가 본질이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다리를 건넜다가 사고가 날까 봐 두려운 나머지, '준비 단계(망치 찾기)'라는 안전한 요새로 도망치는 회피 기제다.


뻔히 보이는 큰 산을 넘을 자신이 없으니, 발밑의 작은 모래알(폰트, 생수 브랜드)을 통제하며 자신이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비극은 이 사람이 프로젝트의 중간 관리자일 때 시작된다.

팀원들은 강 건너편을 보고 있는데, 중간에서 망치 타령만 하는 그 때문에 전체 공정이 멈춰 선다. 그는 다리를 잇는 가교가 아니라, 전 부원을 정체시키는 거대한 벽이 된다.


​"잠깐만, 망치는 찾았는데 못은 어디 갔지? 가만히 있어보자..."

그가 제동을 거는 순간, 프로젝트의 골든타임은 무참히 증발한다.


​이런 사람 밑에서 살아남으려면 같이 망치를 찾으러 다니는 시늉이라도 해서는 안 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불도저 소환술'이다. (9화 참조)그는 본인의 장인 정신이 '예술'이라 믿기에, 웬만한 팀원의 설득은 씨알도 안 먹힌다.


대신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즉 그의 완벽주의를 '비효율'이라고 낙인찍을 수 있는 더 큰 권력(불도저)을 판에 끌어들여야 한다.


​참다못한 불도저가 나타나 "아니, 다리 멀쩡하니까 그냥 건너세요!"라고 강제로 상황을 정리하게 만들어라. 그러면 그는 소외된 예술가의 뒷모습으로 꿍얼거릴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못이 중헌디!"

​그래, 뭣이 중헌지 모르는 게 문제다.

망치 찾다 기한 망치고, 못 찾느라 정작 성과는 하나도 못 내는 사람.


그의 장인정신은 오직 '돌'처럼 굳건한 고집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 동료들은 그 고집 앞에서 정말 '돌' 지경이다.


​혹시 본인이 내 몫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망치 들고 내 못을 찾느라 남의 일까지 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거울 속의 내가 혹시 '가짜 장인'은 아닌지, 돌다리 두들기기 전에 자기 머리부터 한번 두들겨 볼 일이다.


*[출근의 심리학, 퇴사의 생존법]
- 09화 멈추지 못하는 불도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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