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남으려 할까>
회의실에는 늘 빠르게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한다.
“맞아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처음에는 든든하다. 누군가 내 편이 생긴 것 같아서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고 나면 이상한 기분이 남는다.
기분은 좋았는데,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사람을 속으로 ‘사회적 앵무새’라고 부른다.
고개를 흔들지 않는 이유
그들은 좌우의 복잡한 맥락을 살피기보다 오직 1인자의 눈치만 본다. 보통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보다는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거린다. 그래서 좌우의 상황은 제대로 못 보고, 위아래 눈치만 겁나게 잘 본다.
좌우에는 다른 의견이 있다. 때로는 반대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반대는 에너지가 든다. 대신 위아래를 본다. 회의실에서 가장 안전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면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조직에서 살아남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사실,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앵무새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프로젝트 초반, 방향이 애매할 때였다. 대표가 던진 아이디어에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괜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일단 맞다고 하고 나중에 정리하지 뭐.’
그날 회의는 아주 부드럽게 끝났다. 그리고 프로젝트는 세 달을 돌아갔다. 그때 알았다. 동의는 갈등을 줄여주지만, 방향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는 걸.
"어떻게"가 빠진 동의
신규 브랜드 디자인 론칭 회의
경영진 : “이번 브랜드는 MZ세대를 겨냥한 미니멀 하면서 키치한 감성이 핵심입니다.”
앵무새 : “맞습니다. 요즘 트렌드가 딱 그 방향입니다. 대표님 말씀처럼 한 끗 차이가 승부처죠.”
(그래서 이제 누가 뭘 하는 거지?)
마케팅 비용 20% 축소 전략 회의
경영진 : “경기 불황입니다. 효율 낮은 광고는 줄이고 바이럴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앵무새 : “정확하십니다. 지금이 체질 개선의 적기라고 봅니다.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뭘 줄이고 뭘 시작하자는 건데?)
완벽한 동의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어떻게.’ 실행 계획도 없다. 구체적인 방법도 없다. 그저 상대의 말을 조금 더 그럴듯하게 포장해 되돌려줄 뿐이다.
왜 우리는 앵무새가 되는가
틀리는 건 두렵다. 특히 조직에서는 더 그렇다. 내 의견이 틀리면 능력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동의는 거의 틀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반복하는 한 책임도 함께 따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앵무새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반박이 아니다. 질문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질문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대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회의도 비로소 시작된다.
조직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멈춘다
조직이 무너지는 순간은 드라마처럼 오지 않는다. 누군가 크게 실패해서도 아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때, 아주 조용하게 멈춘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방향을 말하는 사람은 줄어든다. 어쩌면 문제는 앵무새가 아니라, 그들이 필요해지는 그것을 방치하는 조직이 진짜 문제일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또 끄덕끄덕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