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밥에 숟가락 얹기? 성과 가로채기의 기술

페이스메이커인 줄 알았는데, 내 뒤통수를 노리는 추격자였다.

by 난새
싸한 정적, 눈치싸움의 시작

회의실 문을 열기 직전, 묘한 정적이 흐른다. 분명 어제까지 커피잔을 나란히 비우며 밤을 새운 동료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의 눈빛이 낯설다. 입가는 비즈니스 미소를 띠고 있지만, 노트북 화면을 슬쩍 가리는 손길이 분주하다.


‘내가 모르는 슬라이드가 추가됐나.’

‘왜 단체 채팅방 알람을 꺼둔 걸까.’

협업이라고 믿었는데, 뒤통수가 간질거린다. 이건 공조가 아니라 눈치싸움이다.


페이스메이커인 줄 알고 옆자리를 내줬더니, 결승선이 보이자마자 어깨로 밀쳐내려는 추격자의 숨소리가 들린다. 직장에서 ‘아름다운 협업’이라는 말만큼 순진하고 위험한 표현도 드물다.


다정함이 가장 위험할 때

회사는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다. R&R이 칼같이 나뉘어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일에는 늘 애매한 구간이 존재한다. 바통을 넘기는 순간처럼, 책임과 공이 겹치는 그레이존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TF라는 이름으로 뭉치고, 동료애라는 말로 경계를 내려놓는다. 나의 파트너는 유독 다정했다.

“고생 많네. 뒷부분 취합은 내가 깔끔하게 정리해 둘게.”

나는 안심했다. 과거 자료를 뒤지고 숫자를 맞추는 일은 대부분 내가 맡았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돌이켜보면 그는 내 속도를 맞춰준 것이 아니라, 마지막 스퍼트를 위해 보폭을 계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막판에 등장하는 ‘메이크업’

그는 자연스럽게 특정 자료를 맡아갔다.

“실적 데이터는 복잡하니까 내가 최종 정리할게.”

협업이라는 말 아래 정보는 한쪽으로 모였다. 우리는 일정에 맞춰 A안으로 가기로 합의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보고 직전,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는 준비해 둔 것처럼 다른 슬라이드를 꺼냈다.

“데이터를 조금 더 보니까 B 안이 맞더라고요. 밤새 좀 무리했습니다.”


순간 나는 현실과 타협한 사람이 되었고, 그는 끝까지 답을 찾아낸 사람이 되었다. 다 된 밥에 숟가락을 얹은 줄 알았는데, 이미 새로운 밥상을 차려온 뒤였다.

정성껏 준비한 메이크업처럼, 결과는 완벽하게 연출되어 있었다.

<응? 이게 아니야?>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공동의 프로젝트에서도 사람은 자신의 노력만 또렷하게 기억한다. 내가 한 고생은 확대되고, 타인의 시간은 배경처럼 흐려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이 잘 끝나는가가 아니다.


누가 이 일을 성공시킨 사람으로 기억되느냐다. 막판에 판을 흔드는 이유도 같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종종 성공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직은 의외로 그 장면만 기억한다.


그 이후, 내가 생긴 버릇

진흙탕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몫까지 사라지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작은 습관이 생겼다.

데이터를 혼자 들고 있지 않는다. 분석 자료는 팀 폴더에 올리고, 메신저에 링크를 남긴다.

“취합하시기 편하게 원본 데이터 공유드립니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가져가려 해도 최소한 기록은 남기자는 마음이다.


또 하나는 중간 확인이다.

“아까 논의한 대로 A안으로 진행하고 다음 단계 넘어가겠습니다.”

짧은 메시지 하나가 이상하게도 많은 상황을 조용히 정리해 준다. 결정은 모두의 것이 되고, 기억도 함께 남기 때문이다. 정보를 숨기는 사람과 싸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더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막판에 판을 뒤집어 성과를 가져가는 사람은 늘 있어 왔다. 아마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들여 올린 메이크업은 언젠가 지워진다.


땀 없이 얻은 성과는 화장실 조명 아래의 분칠처럼 금세 드러난다. 어쩌면 문제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런 방식이 통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조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같은 속도로 달린다.

페이스메이커처럼.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어떤 속도로 달려왔는지는 스스로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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