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발발타" 사무실에서 들리는 기괴한 주문

<진인사(盡人事) 없는 대천명(待天命)은 사기일 뿐이다>

by 난새


​​"아수라발발타"


영화 <타짜>의 평경장이 절박하게 화투를 섞으며 읊조리던 이 주문의 뜻을 아는가? '아수라'는 불교에서 시기심과 질투에 눈먼 채 끊임없이 싸움을 일삼는 혼돈의 신을 뜻하고, '발발타'는 일체의 목적을 이룬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판이 아수라장이 되더라도 좋으니, 내 패가 이기게 해 달라"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요행적인 주술인 셈이다.

<아수라발발타 / 영화 '타짜'>

​그런데 이 기괴한 주문이 오늘날 오피스 빌런들의 입을 통해 변주되고 있다. 본인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盡人事)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방기 하면서, 오로지 요행(待天命)만을 바라며 읊조리는 무능의 주문으로 말이다.


입만 열면 "다 잘될 거야"를 주문처럼 외우는 자들이 있다. 늘 싱글벙글, 실력은 없어도 세상 근심걱정 하나 없는 그 천하태평한 낯짝을 보고 있노라면, 긍정은 고사하고 살의에 가까운 피로감이 몰려온다.


본인은 '초긍정 마인드'라 자부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그저 대책 없는 무책임함으로 타인의 속을 시커멓게 태우는 '민폐의 화신'일뿐이다. 일이 터져 사달이 나도 "허허,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히죽거리는 그 해맑은 무능함은 가히 폭력적이다.


​전설의 '운빨' 예언가: 핑계가 전략이 되는 기적

​회사는 전쟁터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출시 일정이 코앞인데, 이 빌런은 분석도 차별화도 부족한 기획안을 들고 나와 "이거 무조건 대박 난다"며 허공에 삽질을 한다. 제대로 된 데이터 하나 없이 어디서 주워들은 얄팍한 찌라시 정보를 '천재적인 영감'이라 포장하는 기술만큼은 예술급이다.


​당연히 약속된 일정을 맞출 리 만무하다. 압박이 들어오면 반성은커녕 비겁한 핑계부터 설계한다.

​"아이,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 혹시 알아? 갑자기 서버가 터지거나 발주처 사정으로 일정이 늦춰질 수도 있잖아. 그런 게 다 운이지."


기가 막힌 건, 가끔 우주가 무능한 자를 돕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협력사 사정이나 윗선의 변심으로 일정이 미뤄지는 '사고'가 터지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 기고만장해진다.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다 방법이 생긴다니까!" 본인의 태만을 '운'으로 세탁하고, 마치 자기가 천기를 누설한 예언가라도 된 양 '아수라발발타'를 외치며 더욱 당당하게 '도리도리' 고개를 흔든다.


​성실한 자의 지옥: "나만 진심이었지, 또"

이런 빌런과 한 팀이 되면 겪게 되는 가장 끔찍한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자괴감'이다. 나는 마감 기한을 맞추려 주말을 반납하고, 데이터의 소수점 하나까지 검토하며 피를 말린다. 혹시라도 변수가 생길까 봐 플랜 B, 플랜 C까지 세우며 밤을 지새우는데, 옆 자리의 그는 히죽거리며 유튜브 쇼츠나 보고 있다. 정색하고 "이거 이대로면 사고 납니다"라고 경고하면, 그는 특유의 해맑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 친다.


​"에이, 김 대리 너무 예민해. 인생 그렇게 살면 피곤해~ 진인사대천명 몰라? 하늘이 다 알아서 해줄 거야. 아수라발발타!"


​그 순간, 내가 쏟아부은 고민과 정성은 순식간에 '예민한 사람의 유난'으로 격하된다. 진짜 지옥은 그다음이다. 그가 아무 대책 없이 던져놓은 구멍을 메우느라 내가 똥줄 타게 뛰고 있을 때, 기어코 '운'이라는 놈이 그의 편을 들어주는 순간이 온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의자를 뒤로 젖히며 나를 비웃듯 바라본다. "거봐, 내가 뭐랬어. 다 된다니까? 김 대리만 고생했네, 허허."


​그는 모른다. 그가 '운 좋게' 넘긴 그 모든 고비 뒤에, 누군가는 그의 '아수라발발타'가 실현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톱니바퀴를 돌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천하태평은 사실 주변 사람들의 수명을 갉아먹어 만든 신기루일 뿐이다.


​'발발'거리는 빈 수레의 심리

​이런 종자들의 심리는 자기 객관화가 사망한 경우가 많다.

"잘 안되면 어쩌지?"라는 공포를 감당할 지능이나 배짱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 해주겠지" 혹은 "하늘이 돕겠지"라는 비겁한 회피 기제 뒤에 숨는 회피형 낙관주의다.


사실 속으로는 본인도 안다. 밑천이 드러날까 무서우니 여기저기 떠벌리며 "세상 근심은 내가 다 한다"라고 동네방네 '발발'거리는 거다. 겁 많은 개가 더 크게 짖는 법이고, 빈 수레는 구를 때 가장 요란한 소리를 내는 법이다.


​이런 사람에게 논리와 성실함으로 대응하면 나만 피곤하다. 함무라비 법전을 펼쳐보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하면, 함께 "그러게요. 저도 이제는 하늘의 뜻에 맡겨보려고요"라며 손을 놔버려라. (물론, 내 구명조끼는 뒤로 몰래 챙겨둔 상태여야 한다.) 그가 당황하면 "아수라발발타 모르세요? 같이 빌어봐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해보자.


그가 핑계를 대면 더 큰 결과로 예언도 해보자. "일정이 늦춰질 수도 있지만, 이러다가 저희 때문에 아예 프로젝트가 엎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럼 우리 둘 다 퇴사각인데, 혹시 퇴직금 정산은 알아보셨어요?"라고 구체적인 공포를 심어줘라. (그래도 플랜 B, C.. 준비를 하거나, 안되면 근기라도 남겨놓자)

<역지사지 / 홍현태>
​아수라장에서 '발발'거리는 수레들에게

​결국 이들에게 '진인사대천명'이란 최선을 다한 자의 겸손이 아니라, 나태함을 가리는 비겁한 주문일뿐이다. 스스로 할 도리는 '도리도리' 흔들어 재끼면서, 남이 만든 결과물 위에서 '발발'거리며 제 공인 양 떠드는 꼴이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주문만 외우며 히죽거리는 자를 돕지 않는다. 운 좋게 몇 번의 파도를 넘겼다고 자만하지 마라. 당신이 만든 그 '아수라장'에서 당신만 빼고 모두가 탈출하는 순간, 그 요란한 빈 수레가 어디로 처박힐지는 안 봐도 다 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은 아마 오늘 하루도 그의 몫까지 '진인사'를 다하느라 고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세요. 운은 유통기한이 있지만, 당신의 실력은 적립됩니다. 언젠가 그 수레가 엎어질 때, 당신은 이미 멀리 앞서나가 있을 테니까요.

​"실력 없는 긍정은 폭력이다. 스스로 할 도리는 '도리도리' 흔들면서 하늘의 뜻만 기다리는 이들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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