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얼 이즈 디즈니랜드?

by 나는꽃

모처럼 휴일이라 오후 내내 뒹굴뒹굴 바닥에서 구르던 몸을 간신히 일으켜 산책을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하는 잔소리의 힘이 컸다. "이제 좀 있어봐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면 몸 망가진다. 지금은 건강하고 아무 일 없을 거라 생각하지? 당신 나이 이제 그런 나이 아니다. 잠깐 무심했다간 골로 갈 수가 있어. 어서 후딱 일어나. 나랑 산책이라도 가자. 나가서 신선한 바람 쐬고 옵시다. 어서?"

집 밖을 나가기까지의 결심은 왜 그렇게 하기가 힘든지...... 문 밖에 귀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빚쟁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가끔씩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나의 초상이었다. 잔소리를 귀에 박히듯 듣고서도 미동조차 없는 내가 한심했는지 남편은 마지못해 내 손을 끌다시피 하여 문밖으로 나왔다.


집을 막 나서는 순간 복도를 지나가는 바람과 마주 했다. 시원하게 머리를 쓸어주는 바람 덕에 바깥에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는 물기 축축한 빨래처럼 축 늘어져 있다가 바람과 햇빛을 마주하니 빳빳하게 잘 마른빨래처럼 몸이 가뿐했다.

비가 오지 않는 여름 햇빛은 잘 영글어서 그런지 살갗에 닿기만 해도 간지럽고 따가웠다. 심지어 아리기까지 했다. 마치 튀김을 하다 작은 기름방울에 덴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고속도로 옆 골프장 안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달리 산책로도 없거니와 걷기 좋은 길이 딸린 마을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가다 보면 짧게 오르막길도 있어 숨이 차오를 때도 있는데 덤으로 화까지 차올랐다.(습하고 뜨거운 것에 민감하게 살아와서 반백살이 다 되도록 공중목욕탕도 두어 번 찜질방도 세 손가락 접힐 정도밖에 가보지 않았다.) "오늘 날씨 정말 한중막 같아. 하필이면 이렇게 뜨거운 날 그냥 집에서 편하게 에어컨이나 틀고 있지 나올게 뭐람. 하여간 당신은 너무 부지런해. 맘에 안 들어 진짜."라고 구시렁대도 애꿎은 남편은 그저 말없이 묵묵히 걸어갔다. 거의 오르막길을 다 지나왔을 때 빨간 불에 정차해 있던 한 자동차에서 시끄럽게 우리를 불러댔다. 앞 좌석에 두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여자와 건장한 남자였다. 여자는 운전석에 남자는 조수석에 있었다. 갑자기 남자는 우리에게 "웨얼 이즈 디즈니랜드?"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물었다.

뭐라고? 더운데 날궂이 하는 건가 하며 나는 다시 그에게 되물었다. "왙? 디즈니랜드? 디쥬 세이드 디즈니랜드?" 나의 질문을 듣고 남자는 해맑게 큰소리로 웃으며 "예스, 디즈니랜드. 하하하하"라고 말했다.

허우대만 멀쩡했지 웃는 모습이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남자 덕에. 남편과 나도 그저 따라서 웃었다. "하하하, 아유 조킹 나우?"라고 말하니 그는 "예스, 아임 조킹."이라고 말했다.

다른 할 말이 없어 또 웃으며 그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남자는(웃는 모습이 영화 덤 앤 더머에서 짐캐리가 연기했던 로이더 캐릭터와 비슷했다.) 계속해서 웃으며 우리를 주시하다 신호가 바뀌고는 유유히 사라져 갔다.


차들이 부리나케 오고 가는 시드니 도로 위에서 "웨얼 이즈 디즈니랜드?"라는 질문을 들을 수 있는 일은 아마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이상한 일이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몸은 성장했지만 정신은 아이와 같았던 그 남자의 생각에서만 올 수 있는 특별한 일이리라. 아마도 그는 내가 집에 틀어박혀 게으르게 있지 말고 부지런하게 세상과 만나라고 신이 보내준 천사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신기루처럼 방금 일어났던 일 때문에 아까 있던 불평은 어느덧 사라지고 입가에 환한 웃음만 맴돌았다. 덕분에 나는 큰 깨달음 하나를 가슴에 품고 만보를 걷고 당당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디즈니랜드는 엘에이에 있어. 시드니 말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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