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8월의 어느 날, 허리춤의 삐삐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거의 십여 년 만에 연락해온 친구 J였다. 전화로는 해후의 기쁨을 다하기가 어려워 사창동(충북 청주)에서 만나 회포를 풀기로 했다.
사창동행 버스가 가벼운 신호음을 내며 다가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폴짝 뛰어올라탔다.
버스 안은 마치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만원 버스에 부대끼며 서 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듯 콧잔등에는 이미 땀이 배어 나왔다. 가끔씩 참기 힘든 잡냄새에 눈살도 찌푸려졌다. 어떻게든 빨리 몸을 안전하게 기대고 서 있을 곳이 필요했다.
버스 안을 이리저리 훑어보았지만 그럴만한 틈새는 전혀 없었다. 그냥 포기하고 버스에 몸을 내맡겼다. 버스는 내 기분을 외면한 채 사창동을 향해 신나게 내달렸다. 몇몇 정거장에서 하차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하차한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 간신히 부실한 내 몸뚱이를 맡길 수 있었다. 일찍 하차할만한 사람을 미리 점찍어 놓고 계속 주시하다 그가 내리면 잽싸게 자리를 차지하는 아주 일차원적이고도 단순한 방법이 먹혔던 것이다. 내가 차지한 자리는 아주 명당이었다. 왜냐하면 몸을 돌리면 바로 버스를 내릴 수 있는 뒷문이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만원인 버스에서는 어떻게 내려야 할지도 아주 큰 고민이 되니까.
교통체증은 중앙여고(청주에 있는)에서 사창동 가는 길목까지가 제일 심했다. 많은 차들이 즐비하게 정차되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폭염을 증폭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자동차의 열기와 작열하는 태양의 광선으로 길에는 때아닌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가,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아저씨 머리도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나도 모르게 그곳에 시선이 고정되며 마음속으로는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찰나 옆에 있는 사람, 뒤에 있는 사람, 앉아있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댔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지 신호로 정차되어 있던 차가 출발 신호를 받고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차체가 얼마나 심하게 흔들렸는지 버스 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뒤로 밀려났고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앞으로 튀어나왔다. 간혹 서 있던 사람들은 민망하게도 앞쪽에 앉아 있는 사람 무릎에 주저앉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일 민망하고도 얄궂은 운명에 부딪힌 건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