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형제 '그린'의 이야기
나는 아주 긴 시간을 가족이 내 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좁은 집이 싫었고,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아빠가 창피했고, 장애인인 동생이 부끄러웠다. 나의 뿌리인 내 가족은 고스란히 내 열등감이 되었다. 이런 감정의 시작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다.
고작 해봐야 열 두 살짜리들이 집은 몇 평인지, 아빠 직업은 뭔지 등으로 친구를 평가하며 무시했다. 남보다 못하다는 게 밝혀진 아이는 금세 따돌림을 당했다. 덜컥 겁이 났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될까 봐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흠이 없는 척 살기로 결심했다.
초·중·고 내내 친구들이 날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가시를 세웠고, 가족이나 집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은 많았다. 그들에게 내 콤플렉스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만 빼면 내 대인관계는 흠잡을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삶에 조그만 균열이 시작됐다. 누군가 자꾸 선을 넘으며 내 심기를 건드렸다.
JJ였다.
JJ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같은 반 친구다. 난 그 애를 싫어했다. 짓궂고 냉소적인 데다 나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시선이 불쾌했기 때문이다. 특히 내 사생활을 물어볼 때면 숨이 막혔다. 그 질문들에 다 대답했다간 감춰왔던 것들이 모조리 드러나버릴 것 같았다.
JJ를 멀리하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싫은 내색을 해도 다음 날이면 또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를 파헤치려는 것만 빼면 그리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함께 있으면 즐거울 때가 많았고 배울 점도 있었다. JJ는 공부를 정말 잘했고, 리더십도 강했으며, 정이 많은 친구였다.
하지만 결국 일이 터졌다. 미술도구에 적힌 동생 이름을 본 JJ가 ‘네 동생 이름 상현이야?’라고 물어온 것이다. 하필이면 많은 친구들 앞이었다. 좀처럼 화두에 오르지 않는 내 동생 얘기가 나오자 친구들은 관심을 보였다. 그 자리엔 내 첫사랑도 있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야! 내가 동생 얘기하지 말랬잖아!”
나는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너무 수치스러웠다. JJ가 날 싫어해서 모두 앞에서 나를 망신 주기 위해 일부러 동생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했다. JJ는 당황하며 바로 사과했지만 내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날 이후 JJ는 더 이상 내 동생을 언급하지 않았다.
우린 고3 때 다시 같은 반이 됐다. 나는 여전히 JJ가 싫었고 그 애 역시 마찬가지로 보였다. 어느 날은 JJ가 갈 곳이 있다며 내 팔목을 잡아끌었다. 날 데리고 곳은 다름 아닌 상담실이었다. 우리 관계가 신경 쓰여서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상담은 몇 주 동안 지속됐다. 선생님은 나와 JJ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으며 서로에게 쌓인 오해들을 풀어주셨다. 내 생각과 달리 JJ는 나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던 질문과 장난들도 그저 인간적인 관심일 뿐이었다.
상담이 시작된 무렵부터 JJ는 더 이상 내가 당혹스러워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내 열등감이 JJ를 밀어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에 날 선 마음을 거두려 노력했다. 우린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즐거운 관계가 됐다. 가끔 동네 놀이터에서 새벽까지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동생이 장애인인 걸 말하면 친구들이 널 떠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JJ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늘 어려웠다. 내 감정과 상황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JJ는 망설이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려주었다. 나는 JJ와 보낸 시간들을 통해 내 마음을 말하는 법을 배웠고, 따뜻한 정서적 지지를 경험했다.
JJ는 내게 꾸준한 용기와 믿음을 주었다. 네가 부끄러워하는 일은 사실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솔직한 너를 다 보여줘도 친구들은 너를 떠나지 않는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내내 겨울이던 마음에 봄이 오고 있었다. 열등감이 녹아 없어진 자리엔 깊은 신뢰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과 다른 대인관계가 펼쳐졌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끊임없는 지지를 보내주는 귀한 친구들을 얻었으며, 과거의 나처럼 방어적인 친구에게 다가가 먼저 손 내밀 줄도 알게 되었다.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사실도, 나를 둘러싼 가정환경도 더 이상 열등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가끔은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동생과 함께 나가기도 한다. JJ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각자 사는 게 바빠서 자주 보진 못 하지만 늘 마음 한 편엔 고마운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JJ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현아! 나라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 너는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주제야. 앞으로도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가 되자. 나는 너를 늘 응원해. 파이팅!
Written by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