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르페브르 <리듬분석 Elements de rythmanalyse>
『공간의 생산』(1974)에서 리듬분석이정신분석학을 대체할 수 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에 이어 르페브르는 ‘리듬분석가’를 ‘정신분석가’와의 차별화를통해 규정한다.
정신분석가처럼 귀를 기울이지만
리듬분석가는 자백과 고백 등 말이나 정보를 듣는 것이아니라, 세계를 듣는다.
흔히 경멸하듯 부르는 소음이나, 웅성거림으로 치부되지만 의미들로 가득한 것,
혹은 침묵을 듣는다.
정신분석가는 자신의 지식을 사용해, 과거를 잊고,
중립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성급한 해석을 자제해야 하지만,
리듬 분석은 방법론적 의무사항들에서 자유롭다.
대신 병리학과 흡사하게 자신의 몸을 먼저 인지해야 하는
예비적 규범을 지켜야한다.
그의 몸과 그를 통한 리듬에대한 인지를 통해 외부를 파악한다.
몸은 메트로놈이 되고, 시간을 분리하거나, 리듬을 깨트리지 않으면서
각각의 리듬을 개별적으로,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몸은 서로 다르지만 조화를 이루는 리듬들의 꾸러미로 이루어진다.
몸은 리듬들을 다발, 다른 말로 리듬들의 묶음을 만들어 낸다.
확실한 것은 때로 혹은 자주 하모니(조화리듬성)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화 리듬 상태의 몸은 그 리듬들을 준안정평형상태로 유지하고, 질병으로 발전하는 동요상태(부정리듬성)가 아니라면 깨어져도 금새 복구된다. 그의 몸 외부의 리듬들의 꾸러미, 묶음, 다발들에 귀 기울여야 하지만, 이 말은 관찰 중인 ‘몸’ 내부에서외부로 ‘도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안팎의 리듬을 함께 듣고 연결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외부는 내부로, 내부는 외부로 통합된다. 외부를 관찰할 때 종종 멈춰 서 있다고인지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나, 시간은 ‘주체’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기에 멈춰서 있지 않다.
그 대상이 느리다고할 때, 리듬들의 측정기준이 되는 우리의 시간, 우리의 몸과비교해서만 그렇다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플라톤 이래도 철학자들의 골칫거리가 되어 온 감각적인 것이실생활과 상식뿐 아니라 사유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되찾는다. 감각적인 것이란, 외형적인 것도 아니며, 현상적인 것도 아니고, 그것은 현재이다.
현재는 완전히 순수하고잔인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재는 열려있고, 명백하며, 여기저기에 있다.
현재는 미소로 장식되거나, 우울함으로 채색되기도 하며,
눈물을 쏟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명백함은 꾸며낸 것으로 기만적이다.
과일, 꽃 등 자연의 모조품을 만들듯이. 현전성을 모방한 불순한 제조물이다.
그것은 모방하는 (그리고 감추는)현재의 한 타입, 이미지다! (p.95)
리듬분석가는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
특정 감각에 우위를 부여하지 않으며, 추상이아니라 자신의 몸과 체험된 시간성 속에서 사유한다. 리듬들의 뒤얽힘과 상호작용의 배후에서 이 리듬 혹은저 리듬을 포착하고 파악하는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하나의 리듬을 붙잡는 동시에 그것을 비분석가, 즉 일반인들이 ‘인식’하듯전체 속에서 인식해야 한다.
경험을 통해 구체적인 것에 도달해야 한다.
리듬분석가는 현재와 현전의 관계, 리듬들의 관계를 규명해야 한다.
현재는 때로 그것과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현전을 모방한다. 그러나현전성은 불쑥 출현하여 리듬을 부여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리듬분석의 제스처는 본래대로 포착되고 인지된현재를 포함한 모든 것을 현전으로 변형시킨다.
르페브르는리듬분석가의 자질 혹은 필요 조건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그가 생각하는(미래의) 리듬분석가는 교육이나 훈련과정을 거쳐서, 많은공부를 통해 세계, 시간, 환경을 지각하는 방식과 관점을 알아야 한다.
그 결과로 그의 감정들은 병적이지 않은 일관된 방식으로 변형될 것이며, 그는 자신의 온몸과 온 감각을 동원하듯이, 심리학, 사회학, 민족학, 생물학, 심지에 물리학과 수학의 모든 정보들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그는 그래프 곡선, 위상, 주기, 반복 등을 통한 표상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도구들을 통해 리듬분석가는‘학제적’ 접근 방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