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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26. 2018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

나탈리펜턴 편저 <뉴미디어, 올드뉴스: 디지털 시대의 언론과 민주주의> 


펜턴(2011)은 <뉴미디어, 올드 뉴스>에서 타 연구진들과 함께 영국에서 수행된 대규모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뉴미디어와 언론의 관계, 즉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가 보도의 지형을 변화시킨 부분 및 그 변화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한다. 


논의는 주로 인터넷 뉴스로의 확장 및 뉴스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적 발전 등을 중심으로 펼쳐지나, 흥미로운 점은, 이 중 일부 논의는 기존 올드 뉴스의 상징인 올드 미디어, 텔레비전의 뉴스 보도 지형의 변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 사진, 즉 초창기 영상 미디어와 차별되는 '텔레비전의 우월성'은 방송이 ‘라이브(live)’라는 지점에 있었다. 


영화는 항상 시간적으로 우리와 거리를 두고 있는 반면,[…] 텔레비전은 우리가 시청하는 같은 시간에 이미지를 기록하고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현재성(presentness), 즉 영화의 ‘그때 그곳(there and then)’과는 구별되는 ‘지금 여기(here and now)’라는 속성”을 가진 독특한 미디어로 이해되었던 것이다(Flitterman-Lewis, 1992: Bolter&Grusin, 1999에서 재인용). 


이는 텔레비전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 것을 보여준다는 신념의 공유’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방송 형태의 다양화, 기술 장비의 발전, 타 디지털 미디어의 매개를 통해 텔레비전의 양식은 초창기와는 다른 이미지의 생산과 전달을 취하고 있으나, 텔레비전은 여전히 고유의 “‘투명성’의 양식”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Bolter&Grusin, 1999) 


이는 뉴미디어가 뉴스 보도의 지형을 인터넷을 기반으로 역동적으로 변화시켜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텔레비전의 저녁 뉴스가 여전히 보도 언론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과도 연결된다.  

 



종편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제도 언론이 다루지 않는 뉴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적 가능성”(p.11)이 생겼고, 뉴스의 포맷 역시 다양해져 왔다. 


하지만 이 텔레비전 뉴스의 다중성은 ‘양의 증대’ 임은 분명했지만, “공익보다는 독자층을 최대화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증대”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거나, 특정 기업의 정치적 이익 및 입장을 위해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위험을 지닌다.


 선스테인(Sunstein)이 “무수한 개인용 맞춤 뉴스에 의해 지배된 시장은 자율 규제를 저해하고 사회 분절화를 심화시킬 것”(p.12)이라고 주장하고, ‘뉴스가 점차 개인화, 드라마화, 단순화, 양극화의 담론으로 변해 갈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p.13) 한 것처럼 말이다.  


나아가 데이비스가 인터넷의 기술적 측면에 대해 논의한 “언론의 철장(journalistic iron cage)’ 및 생산 확장에 대해 논의한 ‘가상성’ 역시 텔레비전에 적용될 수 있다. (p.20)  


또한 보도 언론 입장의 다양화는 언론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한몫을 한다. 지난 대선에서 ‘fact check’에 집중하는 미국 언론 대비, 각 방송국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명확한 사실 확인 없는 지지 후보 옹호의 태도라던지, 미국 대선에서의 주요 언론의 여론 조사 실패의 예시 등은 개인으로 하여금 더 이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적 판단을 언론에 근거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속성은 더 얇아지고 더욱 상징적이며 가상화’된 뉴스는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필요한 ‘강력한 논리를 스스로 [편의에 따라] 개발해”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대중을 파편화시키게 되는데, 감정적으로 자극적인 뉴스 전달의 형태와 인간 고유의 집단화 및 동조의 양상으로 인해, 스스로 논리를 공고히 해 나가고 합리성을 부여함으로써 파편화는 양극화의 형태로 치닫게 되는 듯하다. 의식적으로 인간이 조절할 능력이 없는 정도의 극한 감정을 유도하는 현재의 미디어스케이프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비합리성으로 인해 흔들릴 수 있게 하는 위험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Bolter, J. D., Grusin, R., & Grusin, R. A. (1999).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MIT Press.




Written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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