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해 Oct 25. 2020

줘도 좋고 받아도 좋은 것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여주인공인 동백이는 자주 기차역에 갔다. 동백을 짝사랑하는 용식이가 왜 기차역에 자주 가는지 묻자 동백이는 분실물 센터 직원이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분실물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그 직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니까, 하루 종일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라고.


중년의 일상의 삶은 무미건조하다. 일상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의 연속이다. 뭘 먹어도 맛있는지 모르고(그러면서 왜 그렇게 먹는지...), 뭘 봐도 재미가 없고(그러면서 드라마는 꼭 챙겨보지만), 딱히 맘에 드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고(하지만 오늘도 택배는 계속 온다) 그런 나이다. 메인(?) 몸이다 보니 연애도 못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 참 어려운 나이다.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던 나이는 지나고,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이라곤 분노, 화 정도다. 쓰고 나니 스스로가 좀 안쓰럽다.


"정말 고마워요,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느닷없이 감사가 쏟아진다. 일 덕분이다. 개발자들이 사내 인증 심사를 통과하도록 멘토링을 하고 있다. 바쁜 업무 중에도 준비하느라 고생했던 그들에게 합격 소식을 전해주면 격하게 감사를 표한다. 처음엔 감사의 말을 들어도 무덤덤했다. 하지만 몇 번 듣다 보니 딱딱했던 내 마음의 감각이 살아나더니, 어느새인가 감사의 말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보람을 느꼈고,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움이 되어서 좋았고, 그냥 진심으로 전해지는 고마움 그 자체로 온 몸에 행복이 스며들었다.


말의 힘은 크다. 경험으로 안다. 그 경험이 대부분 아프고 상처가 많아서 그렇지. 즐겁고 행복하고 놀라운 경험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이렇게 행복한데, 감사를 하면 어떻게 될까? 실험에 따르면 감사함을 느끼면 사랑과 공감 같은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뇌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감사함을 많이 느낄수록 이타적이 된다는 실험도 있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은 심박수와 혈압을 낮추고 불안감과 우울을 감소시키는 만병통치약이다.


진심 어린 감사를 한 적이 있나? 돌아본다. 습관적인 Thank you 또는 감사합니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작은 감사도 좋지만, 가끔 이렇게 진심을 담아 큰 감사도 해보는 건 어떨까? 진심으로 우러나서 기쁠 때 터져 나오는 감사를 들으면 정말 행복하니까. 가족에게 해보자 결심하고 아이를 바라본다. 태어나줘서 고맙다. 좋다. 남편을 본다. 역시...... 감사는 어려운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읽는 직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