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해 Nov 08. 2020

글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 2편

글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 1편(https://brunch.co.kr/@naomi-chun/157)에 이어서...


#모르는 그녀

고등학교 때 누구나 그렇듯이 참 힘들었다. 사춘기라서,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어서, 다니던 학교 친구들을 보며 빈부격차를 크게 느껴서, 그들과 나를 차별하는 담임이 싫어서, 공부도 못하고 집도 자신들처럼 부자가 아닌 나를 은근히 무시하는 친구들이 싫어서, 힘든 집안 사정에 그냥 마음이 무거워서, 학교와 집이 멀어서... 그냥 모든 게 다 힘들었다.


그래도 힘들다는 현실에서 멈춰있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 앞 학원을 등록했다. 평일에는 저녁 자율 학습 시간에 가고 주말에는 종일반을 들었다. 혼자 공부해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물리적 시간의 한계로 족집게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누군가 가르쳐주면 열심히 따라는 가는 스타일이다. 학원의 도움을 받아 부족한 영어와 수학의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학원 앞에는 큰 교회가 있었다. 가끔 집사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교회 전단지를 주며 교회를 다니라고 했다. 어느 날이었다. 졸리고 피곤해서, 또 우울하기도 해서 정신을 반쯤 놓은 채로 학원을 가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전단지를 주었다. 교회를 이미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힘들어 보인다면서 편지를 써줄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힘들 때 편지라도 보면 힘이 날 거라고. 그분이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무엇에 끌리듯 그냥 주소를 알려줬다.

새벽에 등교하고 늦게까지 공부하고 한 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예상 치 못했는데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아주머니가 보낸 편지가 와 있었다. 힘든 학생에게 격려와 위로를 해주는 글들이었다. 손편지로 한 장 가득하게 쓴 글 속에서 어린 학생을 바라보는 걱정과 사랑이 느껴졌다. 그녀는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이 산 어른으로 진심 어린 격려를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편지, 어떤 때는 엽서가 왔다. 한 달에 한번 올 때도 있었고 두 달에 한번 올 때도 있었다. 가뭄으로 마른땅에 물을 붓는다고 금방 비옥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속되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한다. 답장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한 번 쓴 것 같기는 하다. 대학을 간 후 그 교회를 한 번 찾아갔다. 그 편지를 쓴 분을 찾아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분은 교회 주소로 편지를 보냈었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분을 직접 만나 뵙지는 못했다.


그분이 나에게 준 영향이 크다. 그녀는 독자가 한 명인 글을 써서 내게 주었다. 그녀의 글은 내게 힘과 위로가 되었다. 좋은 글을 쓰려면 한 명을 앞에 두고 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쓰라고 한다. 한 명의 독자에게 진심을 전하면 그 진심은 모두에게 전할 수 있으니까.

세월이 흘러 나도 그분 나이쯤 되었다. 이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는 글쓰기의 속성 중 하나를 알 것 같았다. 글쓰기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두지 않았다.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도록. 내 속에 당신 쉴 곳도 있도록."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저, 문학동네)


내가 쓰는 글들이 언젠간 그런 글이 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