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을 읽었다. 안 그래도 도대체 얼마나 글을 잘 쓰길래 자신의 이름을 건 <<일간 이슬아>>를 당당하게 낼까 궁금하던 차였다. 제목이 사랑이길래 사랑 에세이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글에 대한 이야기였다.
초반에는 20대 초반에 풋풋한 경험도 없는 학생이 어쩌다 글 선생이 되어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대 없이 읽어서일까 기대 이상의 감동에 중간에 몇 번씩 읽는 것을 멈춰야 했다. 그녀의 글을 통해 아이들을 보았고, 아이들을 통해 이슬아 작가를 보았다.
아이들의 글의 울림과 그 울림에 공명하는 이 작가의 글이 아름다운 선율 같다. 아이들의 글과 이 작가의 글이 날실과 씨실처럼 연결되어 만든 아름다운 드레스 같다. 따뜻하고 청명한 봄날, 초록초록 막 새잎들이 피어 연한 잎들이 가득한 산속 절에서 봄바람에 울리는 풍경 소리 같다.
#아빠
좋은 글은 고요한 내 기억의 연못에 던지는 돌 같다. 바닥에 가라앉은 잊혔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슬아 작가 글을 읽으니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는 엄마와 나에게 편지를 자주 쓰셨다. 아빠는 얼굴 자주 보기도 어려웠고 애정 표현을 많이 하지도 않으신 편이었다. 하지만 가끔 아빠는 편지를 써서 책상에 놓고 가셨다. 쪽지처럼 접어 놓고 간 그 편지를 읽을 땐 항상 설레었다.
"사랑하는 딸, 너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이야."
내가 아빠에게 답장을 쓰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늘 아빠와 소통할 수 있고,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또한 이 글들이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늘 희생하지만 잔소리만 하는 엄마,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행동으로는 사랑하는 엄마보다, 글로 사랑을 표현하는 아빠를 더 사랑했다.
그런 아빠는 손녀에게도 보내지 않을 편지를 가끔 쓰신다. 아빠는 필사를 좋아하셔서 늘 성경을 쓰시는데, 이면지에 쓰신 여러 글 중에 손녀에게 쓰신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아빠가 전하는 글 속의 사랑은, 말로 하는 사랑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 울린다.
#딸
딸은 아직 네 살이다. 네 살인데도 말은 어른처럼 한다. 이제 글씨도 그림처럼 몇 글자 따라 그려보려고 한다. 책에 있는 글자를 보면서 뭐라고 쓰여있는지 묻는다. 아이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나이가 되면, 아이와 글로 소통하는 시간을 따로 갖고 싶다. 아이의 생각과 내 생각이 공명하여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아이가 나처럼 답장을 쓰지 않아도, 혹은 이슬아 작가의 학생들처럼 억지로 써도 좋다. 아이는 먼 훗날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는지 깨닫고 깨달으면서 힘을 얻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