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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Dec 08. 2020

1년 동안 어린이집을 4번 옮기면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디든 사람들과 사근사근하게 이야기도 잘하고, 잘 웃고, 언제나 친구가 많다. 반면 적응을 못하는 사람은 어색해하면서 혼자 뻘쭘하게 있고 말도 잘 안 한다. 낯선 곳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쉽게 마음을 열지도 않고, 다가가지도 않는다. 회사에서 팀이라도 옮기면 나 스스로 편해지는데 최소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적극적이고 활발해 보여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금 내 모습은 사회적으로 다듬어지고, 필요로 의해 만들어진 페르소나다.


직장인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도 내가 어떤 성격이었었는지 잊을 때가 있다. 아이가 자라며 보여주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보다 보니 '맞아, 내 성격이 원래 저렇지'라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이는 이제 만 3살(41개월)이다. 짧은 기간 동안 옮긴 어린이집이 벌써 네 군데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 결과 아이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첫 번째 어린이집


아이 출산 후 약 82일 경쯤 회사에 복직했다. 아이는 어린이집 보내긴 너무 어렸고, 직장은 멀었다. 다행히 엄마가 아이를 봐주겠다고 하셨다. 주중엔 나와 아이, 그리고 케어가 필요한 개까지 셋은 친정에서 지냈다. 주말엔 엄마가 쉬시도록 일부러 집에 갔다. 왔다 갔다 힘들어도 그게 낫겠다 싶었다.

로니(개 이름)는 나와 14년을 함께한 아들이자, 친구였다. 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활동이 느려지고, 반응이 적어서 걱정했었다. 나중에 MRI를 찍어보니 뇌종양이라고 수술이 어려운 부위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부신피질 기능 저하증으로 다뇨 증상이 있는 로니는 잘 가리던 소변을 뇌종양 때문인지 잘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어린아이를 돌보랴, 개를 돌보랴 엄마는 힘들어하셨다. 어차피 아프니 치우라고 하셨다. 엄마 입장에서는 개보다는 애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로니는 내가 힘들 때 늘 함께 해온 내 가족이었다. 하지만 개는 개라고 생각하시는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로니를 어떻게 해서든 살리려고 애쓰는 나는 개에게는 관심도 갖지 않는 부모님이 야속했다. 로니에게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의 힘들어하는 모습과 잔소리도 힘들었다. 이때 나는 호르몬도 체력도 정상이 아니라서 더 힘들었다.


일단 정신적 부담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해서 아이가 11개월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주양육자가 바뀌고, 집도 바뀌어 낯선 환경인데도 아이는 잘 적응해주었다. 아이의 등원은 남편이 많이 챙겼다. 아이 하원부터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는 사설 보육 선생님이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었다. 밤에는 아파하는 로니를 돌봤다. 잠은 늘 부족해서 운전하다가 졸고, 사고가 날 뻔한 적도 많았다.


그 해, 늦은 가을 로니는 내 품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무너졌다. 혼자서는 버티기 힘들었다. 결국 육아휴직을 3개월 냈다. 1년 냈으면 아마 아이는 좀 더 안정된 상태로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에도 나는 일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호르몬 상태나 체력은 나를 받쳐주지 못했고, 결국 일도, 육아도 모두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만 들었다.


두 번째 어린이집


아이를 돌보시던 보육 선생님이 그만둔다고 했다. 늦게 까지 어린이집에 두려니 가정 어린이집이라 대부분 아이들을 5시면 픽업했다. 법적으로 정해진 보육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어린이집 초인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모두 문 앞으로 왔다. 자기 엄마가 아니면 속상해하며 돌아서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 아이도 저렇겠구나 싶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한두 번 6시 넘어서 픽업했는데, 아이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새로운 보육 선생님을 구하는 게 급했다. 선생님들 프로필을 보았는데,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다들 좋은 분들이었는데, 낯선 사람을 처음 접해야 하는 아이의 부담을 고려하니 이건 답이 아닌 것 같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침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부모님 댁 근처 집과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급하게 전원 신청을 했다. 신청하자마자 바로 입학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어린이집을 옮기려면 빨리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두기 선생님과 아이에게 미안했다. 막히는 퇴근길에 발을 동동 거리며 운전하기도 힘들었다.


금요일에 아이를 픽업하며 월요일부터는 다른 어린이집으로 갈 거라고 통보했다. 아이는 선생님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아이에게 설명도 없이 모든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 집도, 친구도, 선생님도. 아이는 한 달 내내 등원할 때 울기만 했다. 그래도 조금씩 적응해가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어린이집


한 달이 지나 이제 막 적응하려던 찰나 회사 어린이집에서 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왔다. 3월이 되면 만 1세 반에 입학할 수 있어 그전에 신청해두었는데 신청자가 많아 대기자였다. 갑자기 너무 신났다.


회사 어린이집은 보육 시간도 길고, 시스템이나 식사, 유치원까지 통합에, 회사에서 가까워서 언제든 가볼 수 있고, 출퇴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엄마에게 부담 주지 않고도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옮긴 지 한 달 밖에 안 되어서 또 옮겨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두 번째 어린이집 원장님은 만류했다. 힘들다고, 엄마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다고, 가능한 그냥 이곳에 두라고 하셨다.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회사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만류하시던 원장님은 한 곳에서 유치원까지 다닐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거니 가능한 옮기지 말고 계속 다니라고 했다.


어린이집 등원하고 나도 출근하려면 아이는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3월이어도 바람은 찼다. 오래된 아파트라 지하 주차장과 연결도 안 되어 있다. 차가운 차에 컴컴한 새벽에 아이를 태우고 출근을 했다. 처음 생각에는 태우고 가면서 아이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놀아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도 팀을 옮긴 상태였고, 적응이 필요했다. 출근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정작 아이와 대화는 많이 하지 못했다. 실제 거리는 가까워도 출근길은 막혀서 한 시간이나 걸렸다. 그래도 등 하원 시간이라도 함께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등원 시간이 되어 들어갈 때마다 아이는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매달려서 울었다. 너무 절박하게 울어서 우는 아이를 두고 돌아설 때마다 가슴이 칼로 베이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나?', '내 선택과 결정이 옳은 걸까?' 자괴감이 들었다. 사무실에 와서도 집중이 안됐다. 불안하고 힘들었다. 아이의 울음은 6개월을 넘어 길어졌다. 엄마가 가고 나면 울음을 곧 그친다는 말을 듣고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이게 우리를 위한 최선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아이가 말을 잘하는지 물었다. 놀랬다. 아이는 언어감각이 뛰어나서 개월 수에 비해 말을 많이 하고 잘했다. 엄청 활발하고, 명랑한 아이였다. 선생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 휴식 영역에서 누워있거나, 선생님이 말을 시키면 개미 소리로 겨우 대답하거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아이보다 개월 수가 높은 아이들을 벌써 친해져서 함께 놀았고, 아직 개월 수가 어린아이들은 함께 놀기 어려운 상태였다.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한 채 아이는 혼자 있다고 했다. 그렇게 있다가 하원 시간에 엄마를 보면 큰 소리로 말문이 터져 '엄마!'를 부르고 너무 신나게 뛰면서 하루 종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놀랍다고 했다. 거의 8개월 동안 아이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이제야 그런 말을 하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사실 선생님 탓을 했지만 나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인을 보고도 왜 빨리 캐치하지 못했나? 검색해보니 선택적 함구증인 것 같았다. 유아 발달 검사 센터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환경의 변화를 많이 주지 말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주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제야 내 생각에 따라 억지로 합리화해서 설정해놓은 상황들이 눈에 보였다. 회사 어린이집은 시스템은 좋았다. 식사와 프로그램, 공간 등 모두 다 최고였다.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가 성장했기 때문에 단체생활의 규칙과 규율에 따르는 것을 배우는 때였다. 하지만 아이는 안정감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애착 형성이 더 중요했다. 선생님과 애착이 잘 형성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2명 주 교사와 1명의 보조 교사가 10명을 케어하는 입장에서는 한 아이에게 애착을 많이 주긴 어려웠다. 편하지 않은 공간에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9-10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아이는 힘들었을 거다. 어린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네 번째 어린이집


방법을 찾아야 했다. 5분 거리에, 유치원까지 연계되어 있으며, 단독 동으로 크기도 커서 보내고 싶었던 어린이집에서 원아모집을 했다.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아이 위주로, 아이 입장에서 어떨까? 생각하고 생각했다. 일단 원장부터 만나보았다. 아이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선택으로 아이가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랬다.


아이는 네 번째 어린이집 등원해서도 한참을 울었다. 아침마다 할머니가 업고 갔다. 그래도 그동안 아이가 성장해서인지, 또 엄마 아빠 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는 안정감도 있어서인지 회사 어린이집보다는 빨리 적응했다. 아이의 표정은 밝아졌다.


지난주 어린이집 학부모 면담을 했다. 선생님은 아이는 아주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던 아이는 이제 선생님께 '사랑한다'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처음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도 생겼다. 아이는 새로 온 친구가 왔는데 그 친구는 혼자 논다고 했다. 아이에게 말했다.


"너도 처음 갔을 때 힘들었잖아~ 수혜도 힘들 거야. 잘해주고, 같이 놀아줘~."


그 얘기를 들은 아이는 밥도 새 친구와 함께 먹고, 화장실도 먼저 가라고 양보한다고 한다. 이젠 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친구들과 놀이도 주도해서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역할도 지시한다고 한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오늘도 아이는 씩씩하게 어린이집으로 간다. 친구들에게 자랑한다며 공주옷도 입고, 친구들을 놀라게 해 준다며 공룡옷도 입는다. 동생들과, 친구들과, 언니들과 함께 잘 지내는 모습이 대견하다.

3월이면 전세가 만기다. 집주인은 전세 가격을 올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부동산 정책으로 전세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무리할 정도로 올려달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한다. 그때 지금 겨우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무너뜨릴까 걱정된다. 아이가 적응하고 행복해하는 이 곳에서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제발 전세 연장되길...)


나름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아이 위주로 생각하지 못했었다. 부족한 엄마의 욕심으로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잘 적응해준 아이에게 감사하다. 이제는 욕심내지 않고, 아이 입장에서 아이에게 편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할 일임을 잊지 않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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