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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Dec 01. 2020

이탈리아 여행을 다시 가고 싶다

엄마와 딸과 First Class를 타고

First Day, First Class

"First Class로 업그레이드 시켜드리겠습니다."


석사 때 논문 발표하러 지도 교수님과 함께 미국에서 열리는 콘퍼런스를 가게 되었다. 탑승 대기 중 갑자기 안내 직원이 교수님을 불렀다. 잠시 후 교수님은 나를 부르셨고 우리는 First Class라고 찍힌 곳으로 들어갔다. 여행사에서 교수님께 서비스로 좌석 업그레이드 했다는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교수님 뿐만 아니라 나도 업그레이드 시켜주다니 그걸로 감격했다. 


사실, 난 비행기를 이날 처음 타보았다. First Day에 First Class라니 이런 행운이!!!


First Travel

학교 다닐 때 해외여행 한번 못 가본 한을 풀고자 직장인이 되고선 여름휴가와 추석 연휴 때 개인 휴가를 추가해 해외여행을 갔다. 엄마는 그 돈을 아껴서 종잣돈을 만들고, 등등 잔소리를 하셨지만 난 나의 경제적 독립을 만끽하고 싶었다. 대부분 친구들과 갔는데 어느 날 엄마와 가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안하면 거절부터 하시는 엄마가 웬일로 흔쾌히 가자고 하셨다. 자유 배낭여행을 엄마가 잘 견디실까? 걱정됐지만 일단 가기로 했다.


나는 엄마와 친한 딸은 아니다. 엄마에게 살갑고 조곤조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생과는 다르게, 무뚝뚝하다. 엄마랑은 같이 있어봤자 별로 할 이야기도 없고, 얘기하다가 싸움으로 끝나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여행이라니, 내심 긴장됐다. 친한 사이도 여행 가면 싸운다. 게다가 나는 여행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항상 모든 계획은 친구가 다 했고, 난 생각 없이 따라다니는 편이었다. 혼자 내 맘대로 다닐 수도 없다. 피곤하다고 하루 종일 누워있을 수도 없다. 엄마가 돈 아깝다고 하지 않게  '가볼만한 곳'으로 선별해야 했다.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엄마는 여행을 즐기셨다. 기내식 후 졸려서 잠깐 잠들었는데, 자다 웃음소리에 깨서 보니 엄마는 와인을 드시면서 기내 상영 프로그램 중 하나를 보시며 소녀처럼 입을 가리고 깔깔 웃고 계셨다.


“어머, 와인에 취했나 봐. 이게 왜 이렇게 재미있니.”


기내에서 틀어주는 영상이 그렇게 재미난 게 있었나? 의아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항상 피곤에 지쳐 짜증 내시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이렇게 활짝 웃으시다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웃는 엄마는 예쁘고 귀여웠다.


다비드 상을 보시곤 "어머 저렇게 남사스럽게 홀딱 벗은 남자를 조각해두다니!." 하시면서 남사스러워하셨다. 진짜 얼굴까지 빨개지시면서 제대로 동상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거대한 동상이니 시선이 머무는 곳이 뭐 좀 그렇기도 했다. '아니, 부끄러우면 내가 부끄러워야지, 엄마가 더 부끄러워 하나?'라고도 생각했다. 한국이라면 엄마가 말도 통하고 잘 안다고 하실 테지만, 외국에서 엄마는 나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여행하며 엄마의 소녀 같은 모습을 자주 본다. 하긴, 엄마는 소녀다. 전에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호수공원 근처에 올 일이 있으셔서 같이 식사하고 메타세피아 길을 함께 걸으셨다고 한다. 그때 엄마는 그 상황이 낯설다고 하셨다. 


"아빠 빼고 남자랑 단둘이서 밥 먹고 같이 걸어본 게 처음이야."


세상에! 엄마 다음 생에서는 팜므파탈이 되어서 많은 연애를 하길 바라요.  


열차로 도시를 이동했다. 기차에 내려 숙소를 찾는데, 지도를 아무리 봐도 찾기 어려웠다. 지나가는 이탈리아 경찰에게 물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한참 헤매고 있었다. 한 걸음 뒤에서 짐을 보고 계시던 엄마가 갑자기 내 옆에 오시더니 "길은 내가 좀 잘 찾지." 하시면서 손짓 발짓, 지도 가리키며 경찰에게 물으셨다. 한국말로!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손짓 발짓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알려주는 이탈리아 경찰의 말을 들으시더니 엄마는 "알겠다!"라고 하시고는 앞장서셨다. 그렇게 엄마 덕분에 호텔을 찾았다. 역시 엄마는 대단하다.


피사에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남자와 함께인 한국 여자가 말을 걸었다. 한국 사람이라 반갑다고 했다. 그 남자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완전히 내 이상형이었다! 기차에서도 마침 통로 옆 자리라 가면서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선가 유럽에서 공부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안 난다. 그 남자 얼굴 때문에, 그녀의 얼굴과 이야기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시와 반바지를 입은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라는 것 밖에. 내릴 때 이탈리아 남자가 짐칸에서 짐을 내려주고 볼 키스 하면서 "차오"라고 인사해주었다. 꺄! 두근두근 설레는 나를 보시곤 엄마 왈,


"꿈 깨라. 여자 친구 있다."


역시 엄마는 대단하다.


당시 40대 후반이었던 엄마는 갱년기로 인해 힘들어하셨다. 여행 중간에는 갑자기 하혈을 해 급하게 약국에서 생리대를 사야 했다. 하혈하는 양이 많았고, 날씨도 더웠다. 많이 걷느라 힘드셨을 텐데, 엄마는 많이 내색을 안 하셨다. 여행하는 순간마다 엄마에도 이런 면이 있나 하며 놀랬다. 나도 몇 년만 더 있으면 그때 엄마 나이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늙은 나이도 아닌데...... 엄마라는 이유로 그녀의 젊음을 희생시킨 것 같아, 젊은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다.

난 늘 밖으로 도는 딸이었다. 엄마와 대화하면 늘 결론이 안 좋았다. 엄마는 걱정하는 마음에 잔소리하셨지만, 난 엄마가 격려하고 지지해주길 바랬다. 나를 이해하는 친구들과 있는 게 더 좋았다. 딸이 나를 닮아 나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면 미친 듯한 질투에 빠질 것 같다. 엄마는 딸일 둘이라 질투를 덜했을까? 나도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너무 집착하지 않게, 딸을 하나 더 낳아야 하나? 낳겠다고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저런 생각해본다. 역시 엄마가 되어야 엄마의 마음을 아나보다. 직장 상사 혹은 남자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듯이, 엄마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했으면 어땠을까? 아쉽다.


엄마와 함께 로마 트레비 분수 앞에서 동전을 던지며 빌었다.


'이 곳에 다시 오게 해 주세요. 엄마랑 내 아이랑.'


효도 관광은 '관광'이 아니라 '효도'에 방점이 찍히는 거라고 한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효도관광을 '보내드리는' 경우는 많아도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는 '어색해서'가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한 <<여행 준비의 기술>>(박재영 저, 글항아리)의 저자도 효도 관광을 했다고 한다. 몇 년 전 부모님과 남해 여행을 함께 했는데, 그 여행이 아버지와 한 마지막 여행이었다고 한다. 부모님과 함께 않았다면 가질 수 없는 귀중한 추억을 만든 거다. 


딸이 무럭무럭 자랄수록 엄마와의 지난 여행이 떠오른다. 엄마와 탔던 비행기도. 엄마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 다시 엄마와 딸과 이탈리아를 가고 싶다. 셋이 트레비 분수 앞에서 동전을 던지며 새로운 소원을 빌고 싶다. 코로나가 빨리 사라지길...... 오늘도 엄마와 딸과 함께 First class를 타고 이탈리아 여행을 가는 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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