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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Nov 26. 2020

너에게는 어떤 '멋지다'가 들어있니?

 이야기


집 근처 새로 생긴 발레 학원에서 무료 강의를 열었다. 강의를 들으려니 학원 밴드에 가입하고 실물 사진을 올리란다. 나름 필터가 가미된 사진을 올렸다.


강의 날 학원을 찾은 나를 본 원장님의 첫마디가 "아유! 사진하고 똑같네."였다. 의도적인 칭찬이라는 느낌이 들게 아주 큰 소리로! 발레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내 튼실한 몸을 위아래로 한번 보시더니 더 할 말이 없으신지 어깨를 툭툭 치고는 가셨다.

나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 어렸을 때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동생은 여리하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진 반면, 나는 장군 같은 몸매에 얼굴도 각지고 홑꺼풀에 찢어진 눈을 가졌다. 동생하고 같이 다니면 다들 동생을 보곤 "이쁘네."라고 했지만, 나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존재가 없다는 듯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아이였고, 인정 욕구가 많았고, 외적 동기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돈을 들이지 않고는 개선이 불가한 내 외모는 늘 콤플렉스였다. 


취직을 하자마자 쌍꺼풀 수술부터 했다. 시간만 나면 불만이었던 외모를 보며 어떤 것을 고칠까 고민했다. 치아도 가지런하고 의학상 입이 튀어나오지 않았지만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교정을 했다. 교정 후 주위 사람들은 돈 아깝게 왜 했냐고 했다. 더 좌절인 건, 개선 후에도 미인은 아니란 거다. 

얼굴뿐이랴, 굵은 뼈와 근육이 충만한 튼실한 하체는 표준 여성 사이즈와는 멀었다. 왜 외모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발레를 취미로 삼았는지, 매일 가서 거울 볼 때마다 늘 좌절이다. 취미 발레인 임에도 전공생처럼 가느다랗고 긴 팔다리, 긴 머리에, 여성 여성 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동작도 수준급이다. 발레 학원에서도, 발레 인스타에서도 나와는 다른 인형 같은 그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감탄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남편의 이야기

내 남자 아님 출처 - depositphoto

이런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늘 자신감이 충만하다. 참고로 남편은 나보다 키가 작고, 하체가 뚱뚱하고 배도 나왔고, 나이에 비해 머리는 백발에 입도 튀어나왔다(여보, 미안). 스스로 멋있다고 느낀다. 최근 남편에게 라식 수술을 권했다. 시력이 많이 나쁘고, 노안도 와서 라식에 노안 교정까지 받으면 세상 편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남편은 특별히 불편함이 없다고, 몸에 칼을 대기 싫다고 했다. 그렇게 까지 하면서 자신을 바꿀 필요를 못 느낀다는 거다. 


"자긴 자존감이 높은 것 같아."

"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잖아."


내 말에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인정한다. 


옷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이 확실하다. 자신만의 패션과 코디 스타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한다. 신혼 초 멋모르고 옷을 사다 주었을 때 남편이 정중하게 말했다.


"정말 고마운데, 괜찮아. 내가 살게."


아내가 사다 주는 대로만 입는다는 남자들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남편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보고 멋쟁이라고 한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친정 엄마는 남편의 패션을 이렇게 평한다.


"맨날 이상하게 옷 입고. 추운데 왜 반바지여~”

"본인은 멋지다고 생각해."

"개뿔."


멋지다.

멋은 "사물의 생김새가 사람의 눈길을 끌만큼 세련되거나 잘 어울려 조화로운 상태(출처: Oxford Languages)", 또는 "차림새. 행동. 됨됨이의 고상한 품격과 운치를 나타내는 여유 있는 아름다움으로 정신적. 정서적 요인 등 내면 깊숙한 곳의 숙성이 필요(출처: 우리말 바루기)"하다. 


'멋'이란 단어의 유래는 '맛'에서 온다고 한다. 멋은 한글의 '단어 파생'이라는 규칙에 따라 맛이라는 단어의 모음을 비튼 것이다. 머리와 마리, 남다와 넘다, 낡다와 늙다, 설과 살도 이에 해당한다(출처: '멋'의 어원). 맛에서 파생된 만큼 멋도 보편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이기도 한 것 같다. 


멋은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나이로 치면 숙성될 만큼 됐다.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멋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이미 편견 가득한 시각을 가진 내 눈으로는 스스로의 멋짐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멋지다>>(글 쓰쓰이 도모미, 그림 요시타케 신스케, 옮김 김숙, 북뱅크)라는 책을 읽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자신의 콧구멍, 굵은 똥, 넘어지는 것, 냄새, 빠진 이빨까지 멋지다고 얘기하는 책이다.

그중 '[콧구멍], 멋지다'는 아이가 휴지를 돌돌 말아서 콧구멍에 넣어서 생기는 이야기다. 혼자서는 못 빼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침 신문 대금 받으러 온 형이 젓가락으로 휴지를 빼준다. 형도 어렸을 때 코에 은박지를 넣다가 겨우 뺐는데, 은박지 뒤에 도토리가 딸려 나왔단다. 함께 깔깔 웃으며 아이는 말한다. 


"어쩐지 우주의 블랙홀 같았어. 뭐든지 빨아들여 성장해 가는 블랙홀 말이야.

그건 그렇고 고양이는 너무 커서 내 블랙홀이 빨아드릴 수는 없겠지.

그래도 콧구멍, 멋지다."


세상이 이렇게 '멋진' 일로 가득하며, 심지어 콧구멍도 이렇게 멋지다는 걸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알려준다.


내 눈은 외모 지상주의와 사회가 심어준 다양한 편견의 안경이 있지만, 아이 눈은 다르다. 아직 그 안경이 없다. 우리가 못 보거나 놓친 세상을 본다. 


발레 수업에서 했던 동작을 복습하려고 발레수업 영상을 찍곤 한다. 집에서 보고 있으면 아이가 옆에 와서 보고 이렇게 말한다. 


"오! 엄마 멋진데, 발레 잘하는데! 나보다 잘하는데~"


나도 멋지다니! 얏호!


"나에게도,

너에게도,

우리 모두에겐

'멋지다'가 들어있어.

마음속에도 몸속에도

가득, 한가득 들어있어.


너에게는 어떤 '멋지다가 들어있니?"


(출처: <<멋지다>>)


편견의 안경을 벗고, 내 안의 '멋'을 꺼내보련다. 일단 샤워부터 해야겠다. 샤워하고 나면 멋져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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