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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Nov 25. 2020

그녀의 아이, 나의 아이

그녀의 아이

그녀는 아이를 스무 살에 낳았다. 스무 살의 그녀는 참으로 앳되고 예뻤다. 한창 자신의 꿈을 향해, 혹은 젊음을 만끽할 나이에,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가난한 집 딸은 가난한 남자를 만나 고된 인생을 시작했다.


엄마 될 준비도 없이,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안된 채로 엄마가 되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힘들었다. 단칸방에 세 들어 살 때 아이가 울면 주인아줌마 눈치를 많이 봤다. 그녀의 아이는 많이 우는 아이였다. 밤새 우는 아이를 달래며 주인집 눈치 보며 힘들게 키웠다.


세탁기는커녕 더운물도 안 나오는데 겨울에 아이가 설사병이라도 나면 물을 데워 손빨래하느라 하루가 갔다. 아랫목에 두어도 잘 마르지 않는 기저귀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는 생활비를 잘 가져다주지 않던 사업하는 남편 때문에 부업을 해서 생계를 꾸렸다. 손이 야무져서 일을 잘했다.

둘째가 생겨서 손이 많이 가자 그녀는 첫 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곤 했다. 외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낸 아이는 엄마보다 할머니를 좋아했다. 외할머니에게 첫 외손주라 한없이 이뻐했기 때문이다. 방학 때마다 할머니 집에 가서 보내고 오곤 했다.


인정 욕구가 강한 아이는 늘 무엇이든 잘하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시험을 보면 한 두 번 빼고는 늘 만점을 받았다. 만점 성적표를 가져와도 그녀는 칭찬 한마디 안 했다. 대신 한두 번 실수나, 잘못하는 경우에는 늘 무섭게 혼냈다. 그녀의 매는 아팠다.


아이는 자신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런 엄마를 그리워했다. 원숭이 애착 실험에 나오는 철사로 되어 있고 우유가 나오는 엄마가 마치 자신의 엄마 같았다. 그녀는 아이에게 세세한 신경, 특히 감성적인 신경을 쓸 여력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감성 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일상이었으니까.


은희경 장편 소설의 <<빛의 과거>>에는 여대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좀 더 부유했다면, 아이가 없었다면 그녀가 누렸을지도 모를 타인의 이야기다. 책 속의 여대생과 그녀의 삶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 그저 늘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 돈을 벌고, 그것만으로도 벅찬 삶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이에게 많은 걸 경험해주려고 노력했다. 피아노 학원도 보내주었고, 교회 수련회도 데리고 갔다. 전집도 사다 읽게 했다. 매일 숙제와 학습지 검사도 했다.


그녀에게 아이는 축복이라기보다는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었고, 고생문을 여는 헬게이트였으며, 책임져야 할 무거운 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도망치지 않고 그 책임의 무게를 온전히 견뎠다.



나의 아이

나는 아이를 마흔둘에 낳았다. 결혼이 늦었다. 스트레스가 많아서였는지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았다. 당시 회사생활은 위기였다. 매일매일 회사 가는 것이 고통이었고,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버티거나 그만두는 거였다. 하지만 그만 두기 싫었다. 나를 저평가하는 사람들 앞에서 도망치면 앞으로 나 자신도 나를 저평가할 것 같았다. 척박한 정신 상태는 몸 상태에도 반영된다. 시험관을 해도 배아는 내 몸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시간이 가고, 회사 생활이 다시 안정되어도 아이는 오지 않았다. 노력하면 되는 삶을 살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나오고,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회사에 갔다. 뭐든 노력하면 될 것이라는 착각과 환상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생명은 내 의지와 노력이 전혀 상관없는 영역이다. 생명과 죽음은 인간의 의지로 안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시험관을 하고 갖은 좋다는 한약 등등 먹었지만 다 소용없었다. 출근길에 달리는 차에서 그냥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킨 적도 많았다. 그렇게 그냥 포기한 채 살고 있을 때,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듯 아이는 피카부 하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노산이었다. 만 35세가 넘으면 노산이라는데, 그 나이에서도 한참 먼 나이다. 엄마가 42살에 나는 22살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는 손자 같았다. 간절히 바라던 선물 같았다. 그럼에도 회사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출산 휴가 후 육아 휴직도 쓰지 않고 바로 복귀했다.

얼마 안돼 깨달았다. 그렇게 바라던 아이였는데,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일과 아이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정상화되지 않은 호르몬, 20킬로그램 이상 찐 살로 인한 자존감 하락, 맡고 있던 일들이 출산 휴가 동안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서 오는 스트레스. 온전히 아이에게 몰입하지 못하는 스트레스 등. 혼돈과 괴로움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나이가 많아도 초보 엄마는 초보다. 부족한 엄마의 역할을 친정 엄마가 대신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그 과정을 엄마가 했다. 처음 기는 것도, 걸음마를 떼는 것도 엄마가 지켜보았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양육을 엄마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녀와 나의 연결고리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봐라."


내가 엄마 속 썩 일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이 말이 저주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은 저주가 아니라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말로 들린다.


엄마가 되면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정확히 엄마가 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알게 되었다. 다 표현하지 못해도 너무 사랑한다. 엄마는. 아이가 나를 향해 웃어주면 너무 행복하다. 엄마도 나 때문에 그렇게 행복했을 거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했을 거다. (지금도 물론)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모든 아이들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뭐가 제일 좋아?"

"엄마."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에게 저런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기 쉽지 않다. 아이들은 그저 엄마라는 이유로 사랑해준다. 내 발가락이 이상하게 생긴 것도 관심 가져주고, 눈, 코, 입 하나씩 만져보면서 좋아해 준다. 나도 내 아이처럼 엄마를 그렇게 사랑했을 거다. (지금도 물론)


엄마는 자신의 아이에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주고 있다. 다정하게 이야기도 해주고, 조곤조곤 이야기도 하고, 손잡고 마트도 간다.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대리 만족을 느낀다. 내가 받지 못한 것을 내 아이가 받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엄마는 자신을 돌아본다. 못 해줬던 것들을 떠올린다.


엄마가 내 아이를 키워줄수록 내 내면의 아직 자라지 못하고 상처 받았던 아이는 위로받고, 함께 자라고 있다. 엄마는 내 아이를 키우며 자식에게 못해줬던 사랑의 말을 전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바라보면서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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