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공감을 찾다
워킹맘으로서의 삶은 드라마, 영화, 볼 시간이 전혀 없는 삶이다. 하고 싶은 것은 매우 많은데, 시간은 너무 없어서 잠도 쪼개야 할 판인데 무슨 드라마. 사치다. 원래 미드 수사물, 워킹 데드 같은 좀비류 좋아해서 늘 보았다. 운전 거리가 길기도 했고,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임신하고 태교에 안 좋다고, 좀비랑 이별했다. 내 사랑 수사물 하고는 애 낳고 나서 불안증이 와서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너무 위험해!라고 호르몬이 너무나 과잉 신호를 했다. 잔인한 범죄 수사물을 보면 걱정이 되어서 잠이 안 왔다. 너무 심해서 공황장애 아닌가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이 엄마에겐 세상의 모든 것이 위험의 Frame으로 보인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데 100% 공감한다.
얼마 전부터는 워킹맘으로서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는 글 쓰고 책 읽느라 바쁘다. 초저녁에는 너무 졸리다. 애 먹이고 씻기면 나도 자야 한다. 주말에는 발산형 성격으로 신청해놓은 수업 들을 들으러 왔다 갔다 하느라 지쳐서 못 본다. 쓰고 나니 슬프다. 나름 신촌의 밤나방을 자처하면서 밤새 술 마시던 때가 있었는데. 20년 전에.
봄이라 그런가 체력이 바닥이다. 비염약, 근육 이완제 등 다양한 약으로 몽롱해진 정신과 흐늘거리는 근육 때문에 책은 별로 눈에 안 들어왔다. 어떤 책도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뇌가 파업한 것 같다. 다행히 연휴다. 뇌를 달래야겠다고 생각했다. 뇌가 외쳤다. "드라마가 보고 싶어!!!" 안 그래도 넷플릭스에서 하는 "워킹맘 다이어리"가 보고 싶었다. 워킹맘 다이어리는 인기 있는 드라마였다. 워킹맘들이 열광한다면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공감받고 싶었다. 내 지저분한 집, 정리 안 되는 일과 가정생활, 그리고 정신 상태에 대해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워킹맘으로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이렇게 말하겠다.
관심, 그리고 공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고, 돌봄을 받고 싶고, 그리고 공감받고 싶다.
플레이!
첫 방이라 그런가 첫 장면부터 노출이다. 늘어진 가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좀 생뚱맞긴 하다. 시즌 1에서 주인공은 4명이다.
직장과 육아, 친정엄마와의 여러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케이트
9살 딸과 이제 막 낳은 둘째로 스트레스가 많은데 셋째까지 생겨서 입덧으로 고생하는 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지만 산후 우울증으로 너무나 힘들어하는 프랭키
내가 누군지 몰라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열정을 찾고 싶어 하는 제니
이번 글에서는 케이트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 나와 너무나 유사했다. (남편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복직 첫날
막 복직한 케이트. 그녀의 심정이 너무 와 닿았다.
가장 유능할 때 애가 생긴 게 얼마나 이상했는지 말도 못 해요
나의 경우도 그랬다. 37살에 결혼해서 별별 시도를 다 해도 애가 안 생겼다. 그러다 처음으로 파트장을 맡은 지 얼마 안 되고, 상도 받고, 등등 잘 나가고 있었는데, 아이가 찾아왔다. 기뻤다. 하지만 일도 좋았다. 출산 전 1달, 출산 후 82일 만에 복귀했다. 그런데. 내가 간 동안 팀장은 파트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애착을 갖고 있던 일도 다른 부서에 줘버렸다. 돌아와서 맡게 된 일도 전에 일과 다르게 규모도 작고 반은 다른 파트장에게 멤버들이 보고해야 하는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화났다.
난임으로 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아이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전력 질주하다가 갑자기 확 멈췄을 때 사람은 구르게 된다. 정신적 떼굴떼굴... 케이트도 복직해서 그런 걸 느끼는 것 같았다. 아마 애 낳기 전이었다면 그녀의 당황하는 여러 모습들이 이해가 안 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의 몸짓 하나에도 공감한다. 공감받고 싶었는데, 공감을 하고 있다.
#유축 장면
오랜만에 듣는 유축기 소리. 새벽에 자다가 일어나서도 하던 유축. 유축실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유축하는 장면도 슬펐다. 우리 회사는 다행히 모성보호실이 잘 되어 있고, 냉장고며, 유축기, 소독기 등이 구비되어 있다. 아이가 잘 먹지 않으면 아무리 유축을 열심히 해도 양이 줄어든다. 모유가 좋다, 모유에도 안 좋은 성분이 있다(엄마가 먹은 음식의 독성) 등 말이 많고. 직접 수유를 해야 좋은 건 애착에 도움이 되는 것을 다 알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선배 언니가 15년도 전에(언제인지 기억도...) 그런 배려가 전혀 없는 회사에서 화장실에서 유축했던 이야기(그녀가 화장실에서 유축한 첫 케이스)를 해줬을 때 놀랐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렇게까지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출산 휴가 이후 복직하고 몇 개월 유축했었다. 생후 100일이 안된 아이를 어쨌든 먹여야 했으니. 모유 수유를 6개월까진 했다. 도저히 안되었고, 양도 너무 줄어서 결국 단유 했다. 아이는 모유 수유 기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마 찌찌... 하지만 먹으라면 도망친다. 했던 그 유축의 시간들은 뭘까... 그냥 나 스스로에 대한 위안일까 (나 노력했어...라는)
#다시 회사에서 내 존재감 드러내기
자신의 부재 동안 먼저 부사장이 된 후배 대신해서 회장 앞에서 멋지게 자신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왠지 뿌듯했다. 여자는 여자의 마음을 아는 걸까. 죽은 남편을 대신해서 대표를 하고 있는 회장에게 당신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 설득하는 장면. 나도 설득당했다. 앞으로 내가 할 일도 이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온 우주에
#아이의 첫 순간
회사에서 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밤늦게까지 회의할 때 남자 동료가 아이가 보모를 엄마라고 부르는 거 아니냐고 놀릴 때 우는 모습에서 마음이 아팠다. 워니가 처음 말을 하고, 걸음마를 할 때 나도 회사에 있었다. 그저 영상으로만 봤다. 한편으로 생각한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그러면서 생각한다. 어차피 삶이란 저런 시간의 연속인데, 그럼 무엇이 중요한가? 지금 하는 일? 결국 남 일 아닌가...
하지만 집에 들어가라는 보스 앞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마음에 공감했다. 그래. 일도 하고 싶다. 내가 무엇인가 해내는 모습에 나 스스로 뿌듯하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닌 대단한 일로 여겨졌으면 좋겠다.
#숲 속에서 곰을 만나는 장면
아침마다 유모차를 끌고 조깅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렇게까지라도 운동을 하는 모습과, 저렇게 까지라도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 모두 다 이해할 수 있어서. 그런데 곰을 만난 것이다. 배고픈 곰이 두 발로 서서 위협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가 유모차를 가로막고 곰보다도 더 크게 포효하는 모습에서 울고 말았다.
워킹맘이 느끼는 힘듦과 무기력함 그러면서도 절박함이 느껴져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아이 앞을 가로막고 서서 소리 지르는 것 밖에 없다. 곰이 그냥 가주면 고맙고, 나를 덮치면 먹혀야 한다. 외로운 그 마음이, 그 힘듦이 절절하다. 나도 가끔은 소리 지르고 싶다. 머리보다 눈물이 앞선다. 기적적으로 곰은 간다. 저 곰은 암컷일 것이다. 아이를 지킨 후 아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아기가 늘 듣는 보모의 외국 자장가 노래를 들려주는 장면도 마음이 아팠다.
#육아용품
유모차를 접으려다가 나사에 다닌 사람이나 접겠다고 화나서 차에 집어던져 버리는 모습에서 그만 빵 터졌다. 나도 세 종류의 유모차를 써보았는데, 몇 번 발로 차셔 때려 부수고 싶었다. 아기 용품은 정말 엄마를 배려하는 것 맞는 걸까? 사야 했던, 아니 사야 한다고 믿었던 수많은 용품들이 떠오른다. 다들 없어도 된다고 했던 말이 맞다. 하지만 그땐 모른다. 첫째라서, 사야할 것 같아서, 그리고 뭔가에 정신을 팔고 싶어서, 대리 만족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사야 한다.
#워킹맘의 생산성
출산 후 살을 빼기 위해 계단을 이용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대신 층계를 오르는 게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냐고 비꼴 때 케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로서 발전시킨 능력들이 업무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바카스 선전도 있었지 않았나? 엄마로의 삶은 왜 경력이 안될까... 육아는 시간 쪼개기의 연속인데 생산성 측면에서 엄마를 따라올 사람이 있을까? 다양성이 큰 엄마라는 직무를 이 정도로 효율적으로 하면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연휴 동안 매일 보니까 벌써 훌쩍 커버린 듯한 워니를 보면서 다 컸네 했더니 남편 왈
시집이나 가
듣자마자 화나서 한마디 했다.
가봤자 남 뒷수발이나 하지
#결국 친정엄마
보모에게 맡겼는데, 모자란 모유 때문에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인다고 해고하고 결국 친정엄마에게 부탁한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데 삶을 보내고 다시 내 자식을 키우는데 시간을 보낸다. 이 사회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국 다른 사람의 삶의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이 된다. 아이를 맡기면서 엄마를 미덥지 않아 할 때 케이트의 친정엄마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보지 마라. 내가 너와 네 언니를 키웠다.
낯선 육아서의 내용을 실제 아이를 키운 사람인 엄마의 말보다 신뢰하는 요즘 세대에 대한 선배 엄마들의 목소리가 아닐까 한다. 대가족이 필요한 것을 요즘 친정 아래층에 살면서 느낀다. 아이는 엄마와 놀다 지겨우면,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다양한 사람들과 놀 수 있다. 한 명의 스케줄이 안되면 서로 조정하면서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온 마을까진 아니어도 온 가족이 함께 키워야 하는 대상이 아이인데... 엄마 한 명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고 있는 것 아닐까? 현대 사회의 생산성의 논리로 말이다.
#강아지에 대해
케이트의 개는 나이가 많은데 사납고 사람을 물어서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안락사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간다.
나도 워니가 태어났을 때 13년 동안 나와 함께 살아온 강아지가 있었다. 임신을 했을 때 강아지에 대해 수천 번의 잔소리를 들었다. 애와 개를 함께 데리고 다니느라 힘들었고, 싸우느라 힘들었다. 나중에 워니가 뇌종양으로 자꾸 대소변 실수를 하는 것을 엄마가 참아내지 못해서 결국 집에 데리고 갔다. 개를 챙기는 것에 대해 엄마 아빠와 싸운 것을 따지면 백만 번쯤 될 거고, 주위 사람들의 사사로운 간섭까지 치면 천만번쯤 될 거다. 다들 아무 상관없는 생명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로니가 뇌종양이 생겼을 때 로니에게 나쁜 말을 하던 모든 사람들이 미웠다. 그들의 말 때문에 병이 생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젤 부러운 건 남편
잘생겼는데 다정하다. 항상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준다. 물론 둘째를 우길 때도 있고, 아내의 몬트리올행을 반대하고, 아내가 자신보다 연봉이 높아지는 것을 약간은 싫어하긴 했지만 다양한 상황에서 너무나 다정하다. 바쁜 아내 대신 양가 부모님께 식사를 대접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아내의 고민에 대해 세상 다정하게 들어주고 대응해준다. 세상에 완벽한 남자는 없다. 이 정도면 최고다. 생김새도 말투도, 내 스타일이다.
나도 저런 남편이, 아니 저런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 아니 그냥 사람.
#직장에서 승진
몬트리올에 가서 일하게 되는 기회가 생겼을 때 케이트는 처음에 남편에게 상의해보다가 남편은 반대해서 포기하려다가 모라는 경쟁자가 나오자 열심히 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퇴근하려다가 사람들이 질문하거나 케어가 필요할 때 결국 가족보다 일을 택한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낙방되었음을 알았을 때 차 안에서 혼자 그 쓸쓸한 마음을 달래는 모습에 이해가 되었다. 정말 열심히 해왔는데...라고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안타까웠다.
경쟁은 그 속에 속하지 않으면 낙오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일하는 여자들은 승부욕이 강하다. 아니 어쩌면 그저 인정받고 싶어 한다. 같은 선상에서. 투 잡을 뛰어야 하는데, 그러기 어렵다. 그래서 하나의 일이 자꾸 뒤로 밀린다. 그러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가끔 생각한다. 남편들은 저런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할까? Never.
결국 남편에게 말 안 하고 고군분투 끝에 몬트리올행을 이룬다. 그때도 후배가 비꼰다.
이번에 안됬으면 유리천장 어쩌고 말했을 거잖아요.
발로 차고 싶었지만 참았다.
반전은 중요한 PT 자리에서 아이가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그 자리를 뛰어나온 것이다. 회장은 PT자리에서 아이가 아프다고 떠나려고 할 때 말한다.
고객 앞에서는 항상 좋은 소식만 전해.
네가 이것(PT)을 포기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될 거야.
어떤 거냐고 묻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냥 남아서 PT를 마쳤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병원으로 뛰어간다. 침대에서 링거 맞으며 누워있는 아들을 보면서 여태까지 나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너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속삭인다. 그녀의 마음에 슬프고, 안타깝고, 또 공감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을까? 내가 느끼는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달랐겠지.
5/2일 출근길에 분수 토 하는 워니를 보고 회사 앞에 다 왔는데 다시 집에 와버렸다. 중요한 회의가 없었고, 권장 휴가 기간이라 나머지 일들은 다 사소해 보였다.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임원 보고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모르겠다. 역시 뭐든 닥쳐봐야 안다. 중요한 순간이 되어야, 닥쳐봐야 내 마음속의 우선순위를 알 수 있다. 쓰다 보니 알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내가 하는 선택이 내 인생이다. 지금 나는 내가 선택한 결과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들이 행복하고, 아이가 안정을 느끼고 엄마 엄마 엄마를 수도 없이 부를 때 기쁘고 행복하다. 워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냥 나를 부른다. 연속으로 엄마, 엄마, 엄마, 엄마... 그 명사를 듣는 것이 행복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같이 출근한다. 매일...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온다. 매일 아침바다 겪는 이런 심리적 갈등이 없는, 없을 다른 우주가 있다면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