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부싸움에서 등장하는 말
싸움의 시작: https://brunch.co.kr/@naomi-chun/16
전형적인 싸움이다. 여자는 서운하고 남자는 이해가 안 된다. 여자는 과거의 모든 서운함이 쏟아져 나오고 남자는 또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좀 쉬어. 애 보면서, 쉬고 싶다고 했잖아. 쉬라고. "
"내가 얼마나 힘든지 바라보긴 해? 느끼긴 해?
대화를 하긴 해? 물어는 보긴 해?
당신은 내가 산후 우울증을 겪는지 아닌지
관심을 가졌어?
티브이에서 다른 사람들 힘들어하면 안쓰러워하면서 정작 와이프가 어떤진 관심을 가졌어?
아무리 바라던 애가 생겼어도 호르몬은 내가 어떻게 못하는데, 왜 저러냐 또 저러네만 했잖아.
새벽에 출퇴근하면서 피곤에 절어있을 때 내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해봤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나 궁금해하긴 했어?
당신이 같이 사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물어볼 생각은 했어?
난 이런 사람이라고.
당신은 가만히 앉아서 티브이 보는 게 쉬는 거지만,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즐거운 사람이라고
나는 일을 하면서 인정받으면서 내 자존감이 살아나는 사람이라고
나는 나랑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으쌰 으쌰 하는 게 에너지가 나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느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관대랑은 다른.
관대는 집돌이고 게으르고 하나만 파고, 관심사도 다양하지 않고, 집에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 보거나 핸드폰 보는 게 제일 편하고 행복한... 그런 사람이다. 새로운 것보다 늘 하던 게 좋고, 비슷한 삶의 패턴으로 사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일에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핸들링 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이다.
나도 집순이지만 발산형 인간이고, 운동하는 게 좋고, 새로운 시도와 공부가 좋고.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익숙하고, 대응해야 하는 사람들도 늘 변하는 상황에 있으며,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감정이 솟구치자 작가님의 말이 귀에 맴맴 맴돈다.
(농담으로) "이번 기회에 이혼 가볼까요? 도와드려요?"
"아 아뇨, 제가 결혼을 늦게 해서 애도 어리고... 그건 좀 참을게요.."(그래 내가 참겠다고 했지)
날아다니는 포탄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에 그런 것이 있지 않나... 날아다니는 포탄 속에서 모든 것들이 느리게 느껴지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아래 음악은 배경 음악으로 들리는...
백그라운드 음악: https://youtu.be/t6wjCcWC2aE
포탄이 멈췄다. 소강상태다. 나는 식탁에, 남편은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와서 무엇을 물었으나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 의식은 깊이 침잠해서 이 상황의 원인을 찾고 있었다.
나는 남편보다 메타인지가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예전 같으면 이 상황에 좌절했다. 저런 사람을 만난 것을 후회하고, 내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다 결국 모든 잘못은 내게 있다고 생각하고 나를 비하했다.
이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누구 잘못이 무슨 상관이랴? 내가 원래 그런 게 무슨 말이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세포도 다 다르다.
이 맥락을 끊어내려면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말했는지 이유와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것을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 서운하고,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에 일방적으로 당하긴 싫었다. (지가 먼 데?). 그러려면 내 감정을 이 상황에서 끊어내야 했다. 그래. 냉철해지자. 난 사업가니까 냉철해. (사업가가 될 거니까 냉철함을 연습 중이야...).
날아다닌 말들의 포탄 더미 속을 뒤져서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매우 명료한 목소리로 남편 방을 열면서 말했다.
"내가 멘토로서 나간다고 해도 안된다고 할 거야?"
이 질문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저 질문이 내 입 밖에서 나갔는지 나도 모른다. 그냥 나갔다.
"응, 너의 앞으로의 사회적 이미지를 생각해.
항상 어느 자리를 가든지 멘티에 입장이 되지 말고 멘토가 돼.
지난번 코칭에도 관심 갖는다고 하고,
유튜브도 그런 내용으로 한다면서. 좋아 그런 거 해.
그런 거 해서 나가 얼마든지 나가라고.
당신은 집안일은 꽝이야.
정리는 절대 못하는 사람이라고.
무슨 정리를 한다고 난리야.
잘하는 걸 해. 글 쓰는 거, 후배들 가르치는 거,
일하는 거 잘하잖아.
잘하는 거 해. 제발."
고마웠다. 잘하는 거 하라고 해서. 저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왜 이런 건 긴 싸움 끝에 내가 멋진 질문을 해야만 나오는 것일까. 그냥 평소에 좀 해주지.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미니멀라이프연구소장님은 방송에서 이쁘게 나왔다.
엄마는 아니 공짜로 해준다는데 지가 할것도 아니면서 왜 못하게 하냐고 계속 머라 하셨다.
어쨌든 전쟁은 끝났다.
사건 발생 3주후 남편이 옷장을 정리했다.
난생처음 봤다. 스스로 옷장을 정리하는 것을.
집안일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아주 잘한다.
빨래 개기/널기/정리하기, 청소하기, 가끔 설거지.
보통 잠시 개선되면 2주 정도 지속되니 지켜보는 중이다.
고마워요! 방송 작가님!
덕분에 남편이 바뀌긴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