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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Apr 14. 2021

설득의 어려움

https://pin.it/1kuFVK5

넷플릭스가 추천해준 드라마 중에 <<뉴암스테르담>>이 있다. 워낙 이런 류를 좋아해서 기꺼이 정주행 중이었다. 이런 착한 드라마가 좋은 점은 항상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있어도 승승장구하지 못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힘도 있고, 잘생기고 다정한 완벽에 가까운 의사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맥스 굿원. 거참 이름이 '짱조은' 이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의사의 마약 처방 관련 내용이다. 맥스 굿원은 항상 틀을 깨는 방식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쳐가고,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사장은 항상 맥스 굿원을 좋을 땐 이용하고, 아닐 땐 심하게 혼낸다. 어느 날 이사장은 그녀 답지 않게 틀을 깨는 맥스의 방식을 최대한 활용해서 의사의 마약 처방 남용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으라고 지시한다.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맥스는 한다. (직장인의 비애다...)


당황한 맥스는 일단 일을 해야 하니 강압적으로 의사들에게 처방을 줄이도록 지시한다. 몇 % 이하로 줄이고 못 줄이면 사표 쓸 각오 하라고 외치는 맥스에게 이사장은 실망이라고 한다. 이 정도는 너무 쉽고, 이걸로는 안된다고 꾸짖는다.


다음으로 맥스는 마약을 처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출 준비를 한다. 응급실 의사들이 해당 자격을 얻을 때까 응급실을 닫는다. 뉴욕의 대형 병원이 응급실을 닫는 것은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끈다. 하지만 이사장은 관심만 끌었을 뿐 근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또 꾸짖는다. (직장인은 너무 힘들다...)


결국 맥스는 뉴욕시에 있는 병원장들을 불러 모아 마약을 생산하는 제약업체에 맞서자고 이들과 맺은 계약을 깨자고 종용한다. 하지만 여러 이권이 달려있기 때문에 모두가 등을 돌린다. 이 소문을 들은 제약업체는 보복으로 해당 약 외에 다른 주요 약들의 공급을 중단한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환자들이 죽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맥스. 결국 그는 제약업체에 항복하고 다시 계약하기로 한다. (직장 상사가 시키는 대로 다 해낼 수는 없다.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다.) 그의 새로운 비서가 그를 위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동생도 약물 과다로 죽었다고. 그녀가 보고 싶다고 하며 자신과 동생이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맥스는 아픈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제약회사 후원으로 지은 커다란 홀 앞에 붙여둔다.


시간이 지나자 과처방된 마약 중독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사진을 붙인다. 제약 회사의 보복은 다른 병원에도 경각심을 일으켜서 맥스와 연합하겠다는 병원이 생기고... 맥스를 몰아붙이던 이사장은 약물 과다로 잃은 자신의 동생의 사진을 홀 앞 벽에 붙인다.


강력한 정책, 규제, 연합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건 마음을 움직이는 개인의 스토리다. 그 뭉클함은 또 다른 개인의 스토리를 불러오고, 그 스토리들이 모여 더 큰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 협업이 많은 업무 특성상 타인을 설득해야 할 때가 많다. 논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고, 오히려 내가 하는 제안이 더 합리적인데도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어조가 강해지고, 더 열심히 설득하려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상대는 점점 뒤로 물러선다.


최근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옆에서 보던 한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설득은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해야죠."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지구 자전축을 바꾸는 것만큼 어렵다. 그런데, 나 자신은 빅뱅만큼 어렵다. 며칠 전 나는 다이어트해야 한다는 '다이어트하는 나'를 설득하지 못하고, 아니 '기분파 나'에게 설득당했다.


'기분파 나'는 '다이어트 나'를 이렇게 설득했다.


'비도 오고 힘든 하루였어.

하루 12시간 동안 자료 만들고, 두 번 리뷰받고, 점심도 못 먹고 얼마나 힘들었어?

좋아하는 점심 운동도 못 가고,

저녁 운동은 하루 종일 앉아서 퉁퉁 부은 다리와 내일 있을 보고로 집중이 안돼서 제대로 못했잖아?

저녁도 못 먹어서 배도 고프고...

너는 릴랙스가 필요해...

자자, 남은 와인을 먹자...

기분이 좋아질 거야.

와인만 먹으면 좀 심심하니까 썬칩도 같이 먹자.

저녁 안 먹었으니 썬칩 정도 칼로리는 괜찮아...'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내 멜랑꼴리 한 감성을 자극했다.

결국 홀딱 넘어간 나는 와인을 다 비우고, 썬칩을 두 봉지 먹었다.


역시 '기분파 나'는 설득력이 대단해....

'다이어트하는 나'는 그런 갬성이 없어서 못 이기나 봐....


설득은 어렵다.

다이어트는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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