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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May 07. 2021

오프닝 건너뛰기 누르는 사람?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오프닝 건너뛰기"라는 버튼을 볼 수 있다. 그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많을까? 누르지 않고 보는 사람이 많을까? 이 궁금증으로 구글로 검색하다 넷플릭스의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은 어떻게 만든 걸까(https://brunch.co.kr/@herbeauty/6)라는 글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프닝을 건너뛰거나 지난 줄거리를 건너뛰고 빠르게 내용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오프닝을 보며 지난 회의 감동을 되살리며 즐기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개인의 취향은 각자 다르니까.


드라마뿐만 아니라 삶 속에도 오프닝은 늘 있다. 개업식, 결혼, 출산, 돌잔치, 집들이 등... 그중 가장 복잡해 보이는 결혼을 생각해보자. 양가 부모님 인사, 신혼집 구하기, 결혼일 잡기, 신혼집 구하기, 결혼 날짜 잡기, 상견례, 식장 예약,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결혼식, 폐백, 신혼집 살림 장만, 이사, 신혼여행, 이후 인사, 혼인 신고 등 꽤 긴 오프닝을 가지고 있다.


형식적인 오프닝도 길지만, 진짜 시작은 결혼 이후다. 다른 두 사람이 맞춰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정말 어렵다. 연애 때와는 사뭇 다른 리얼한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 약간이라도 남아있던 환상과 기대는 1%도 없이 사라진다. 설상가상 결혼 전 장점이라 생각했거나 잘 몰랐던 부분이 동전의 양면처럼 큰 단점으로 다가온다. 어쩌다 싸우게 되면 그 이후도 문제다. 화가 나도 다시 한집에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상대가 싸우고 나가면 나가서 화가 나고, 집에 있으면 얼굴이 보여서 화가 난다. 어른들 걱정하실까 봐 싸울 때마다 본가에 갈 수도 없다. 연애 때처럼 마음대로 헤어질 수도 없다.

결혼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과정으로 보인다. 이런 고난의 과정이 과연 필요한 일일까? 인내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이 있다면 은모든 작가의 <<오프닝 건너뛰기>라는 소설을 추천해주고 싶다.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반겨주는 얼굴을 보는 순간마다 수미는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일의 따스함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이면 그 온기를 전해준 사람이 지나는 곳마다 켜 둔 형광등을 끄느라 분을 삭여야 했다." (p.14)


자신을 배려해서 '보송보송한 이불'을 꺼내 주는 남편은 좋지만 떡볶이 국물이 튄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자는 것도 여기저기 형광등을 켜 둔 채로 자는 것도, 뉴스를 보면서 사태를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도, 쇼핑을 좋아하는 것도 다 거슬려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마도 과일의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도려내듯 필요 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원하는 부분만 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누군가와 한집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일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수미는 그 점을 받아들이기 위해 몇 달째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p.26)"


타인의 마음의 드는 부분만 레고 조각처럼 뽑아 나만의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 순 없다. 나 또한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다. 나와 다른 타인을 내 입맛에 맞게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 다름을 인정해 가는 과정이 결혼 생활이다. 오프닝을 건너뛰든 뛰지 않든 그 과정은 남아있고, 더 중요하다. 아니 결혼의 진짜 오프닝은 바로 이 과정일 것이다.


https://www.insight.co.kr/news/185250

결혼만 그럴까? 이성 간의 결혼만 그럴까? 연애도, 그냥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그저 쉬운 사람은 오프닝을 건너뛸 수도 있을 거고, 어려운 사람은 천천히 오프닝을 보면서 어린 왕자와 여우가 조금씩 가까워지듯이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은모든 작가는 소설 속에서 그 모든 관계의 오프닝, 가까워짐에 대해 경계하진 않지만 조심스러운 자세를 가진 인물들을 통해 관계를 바라본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속도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인지 돌아보게 한다.


순식간에 모든 관심을 사로잡는 SNS, 인터넷, 누르기만 하면 다음날 배송되는 택배 등 빠름의 미학이 만연하는 삶 속에서 오프닝을 건너뛰지 않아야 하는, 혹은 건너뛸 수 없는 사람들도, 그런 관계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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