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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Apr 12. 2021

나다운, 나스러운 그런 거

가끔 나 자신이 엄청 찌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같을 때, 자꾸 실패만 할 때. 남들이 대 놓고 뭐라고 하진 않지만 (가끔 뭐라고 할 때도 있긴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나 자신은 너무나 초라해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최근 취미 발레가 내 일상의 전부를 차지할 만큼 시간만 나면 발레수업을 들으러 간다. 거의 주 6일을 발레 수업을 듣고 하루에도 오전/오후로 나누어서 가거나 연속으로 수업을 들을 때도 있다. 주말에도 특강이 생기면 재빠르게 등록한다. 어제도 100분짜리 작품반 특강이 있어서 신나서 등록했다. 에스메랄다라는 작품을 배웠다. 신나서 배웠는데....... 학원 원장님이 찍어 보내주신 영상 속의 내 모습을 보고 현타가 왔다. 도도하고 매력적인 집시가 아니라, 폴짝폴짝 뛰는 다람쥐가 있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아름다운 몸매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하체 비만에 일자 목을 가진 발레 초보인 내 춤은 하잘것없어 보인다. 우울해서 집에 오는데 주차하다 벽에 차를 긁었다. 전에 긁어서 칠했던 곳인데, 카드값도 많이 나왔는데 또 돈 나갈 일을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오고 온몸은 쑤신다. 회사에 가이 빨리 만들어달라는 자료가 많다. 아침 7시부터 점심도 못 먹고 보고 자료 만들었는데, 리뷰받고 나니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다. 일하느라 운동도 두 타임이나 빠지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며 겨우 간 미지막 수업에서는 순서를 따라가지 못해 버벅거리다 왔다. 하루 종일 일한 몸은 뻣뻣하고 어버버 순서를 따라 하다 수업이 끝나버렸다.


48개월 딸아이도 가끔 그런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 잘 안되면 짜증을 낸다. 틀리거나 실패하는 게 싫어서 시도도 안 할 때도 있다. 놀이 수업에서 모르는 동작이면 대충이라도 따라 하면서 배울 수도 있는데, 다 파악할 때까지 보기만 할 때가 있다. 한참 보다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때서야 시도한다. 어떤 건 틀리거나 실패해도 크게 개의치 않으면서 어떤 건 상당히 스트레스받으면서 잘하려고 한다. 잘하고 싶은 걸수록 더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 듯하다.


큰 실패와 어려움을 겪을 때를 생각해보면 가끔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조금씩 조금씩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스스로를 믿고 지탱해야 할 힘을 잠식해버린다. 이 기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줄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


이럴 때 가끔 꺼내보는 책이 있다.

ish - Peter H. Reynolds


ish는 캠브리지 영어 사전 정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 used to form adjectives and nouns that say what country or area a person, thing, or language comes from:

2. used to form adjectives that say what a person, thing, or action is like:

3. used to form adjectives to give the meaning to some degree; fairly:



English, Spanish, Foolish, Childish, Mannish, Boyish..... 알고 보면 ish가 들어간 단어를 많이 쓴다.


책 내용은 이렇다. Raymon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항상 그린다. 어느 날 Raymon의 형이 자신의 그림을 보더니 "이게 뭐야!!!" 하며 비웃는다. 비웃던 형의 웃음소리가 자꾸 떠올라 그 이후 Raymon은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Raymon의 동생은 Raymon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Raymon이 그림을 안 그리자 동생은 형에게 그림 그려달라고 한다. 형에게 상처 받은 Raymon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Raymon이 그리다 버린 종이를 들고 동생이 가버린다. Raymon은 돌려달라며 동생을 따라 동생 방에 들어간다. 동생 방 벽에 자신의 그림이 벽에 잔뜩 걸려있다.


동생은 Raymon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Well, it looks vase-ISH!"

"They do look... ish."

동생의 칭찬은 Raymon이 자신의 그림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한다. 'ish'하게 라고 생각하다 보니 Raymon은 그림 그리기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렇게 다시 Raymon은 자신만의 ish로 자신의 세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제대로, 남들처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다움, 나만의 'ish'를 만들어 내 인생을 그려보면 된다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오늘이 그날이다. 이 책이 위로가 되는... 아이에게도 'ish'를 가르쳐줘야지 결심한다. 아, 근데 한국 발음은 좀 그렇다. 이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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