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하고 리드하라
이런 상사를 만나면 난 늘 고과가 형편없었다.
매일 한 일이 진척이 안 보인다고 하는 사람.
다른 조직에 메일 보낼 때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신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
의사 결정이 필요해서 의견을 물었는데, 내용을 몰라 다 설명해줘야 하고, 막상 준 의견은 전혀 의사 결정이 아닌 사랑.
회사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바라지 말고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상황이 짜증 났다. 현업에서 그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내가 알아서 판단하고 진행하면 왜 안될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 생각하는데, 상사가 생각하는 방식과 순서에 따라,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사 밑에서 나는 그저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내가 문제인가 자책하고 고민하고, 그래도 상사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숨 막혔던 기억이 난다. 회사가 원래 그런 거라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네가 맞춰야 한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일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고, 상사의 일이고 성취감이나 목표도 없이 그저 버티는 곳이 되었다. 당시 내 MBTI성향을 바꿀 정도였으니 스트레스가 심하고 나름 적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기회가 되어 새로운 리더를 만나서는 너무 좋았다. 일의 방향성을 주고, 알아서 그 일을 설계하게 하고, 주기적으로 알아서 보고하면 되고, 의사결정이 필요하거나 리더의 의견이 필요할 때 언제든 편하게 의견을 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의 주인이 되어 일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리더가 명확하게 자신이 할 일을 정해주지 않아서, 각자의 역할과 그에 맞는 일의 범위를 명확하게 구분 해지 않아서 그 애매함이 싫어서 싫다고 했다.
당시에는 리더의 스타일인가?라고만 생각했는데, <<리셋하고 리드하라>>(장은지 지음, 위즈덤하우스)를 읽고 나니 조직의 특성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과거 (지금도 그렇지만) 조직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에 의거해서 근로자들이 기업 내에서 저지르는 게으름에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이를 방지하고, 빠른 시간에 가장 생산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업무와 조직은 작은 단위로 나누어져 있으며 개인이 자신이 맡은 일만 충실히 행하면 조직전체의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근로자들은 작업의 '실행'만 담당하고 어떤 실행을 할지 아이디어, 전략 및 방향성에 대해서는 관리자가 할 일이라 생각했다.
이런 일을 하는 근로자들을 지속적으로 동기 부여시키기 위해서 경제적 이윤을 분배하거나 금전적으로 보상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긴 하다.
이 방식이 과연 효과적일까?
"일에 대한 주인 의식이 마치 정신력이나 마음가짐, 개인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요구다. " (p.72)
그렇지 않다. 이제 더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기업을 운영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회사는 더 이상 정년을,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고, 리더는 모든 것을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과거의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는다.
"위계적 조직이 오늘날의 경영 환경에서 안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의사 결정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수직적 관료주의가 만연하는 기계적 조직에서는 혁신적 아이디어의 실행보다는 '절차와 설득'이 중요한 업무 역량이다." (p.76)
"주인 의식은 강조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지율과 신뢰, 책임을 토대로 한 근무 방식과 성과 보상이 주어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p.91)"
애자일 조직은 그 변화된 조직의 모습 중 하나다. 애자일 조직(Agile Origanization)은 필요에 맞게 소규모 팀을 구성하고, 팀이 고객에 니즈에 대응하게 하는 조직체계다.
10년 전에도 애자일이 유행처럼 회사에 퍼졌다.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 중 하나로 소개되었고, 빠르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Delivery 한다는 개념에 끌려 도입하려 애썼다.
하지만 조직의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문화도 함께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존 프로세스 외에 형식적이 활동들이 추가되었다. 개발자들이 할 일이 늘어났다. 형식은 애자일 조직을 표방하지만 실제 일하는 방식은 애자일이 아니었다.
유행이 끝나자 크게 확산을 재촉하는 일도 없어지자 조용히 사라졌다. 다시 고객사의 요청으로 해야 하자 억지로 할 뿐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진짜 변화가 필요한 때인데 성공 체험이 없으니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한다. 그래서 책 속에서 만나는 성공 사례가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오렌지 라이프 사례는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통로를 통해 여러 번 듣긴 했다. 이 회사는 방향성과 실행을 나누어 방향성은 경영진이 제시하고 그 방향성을 어떻게 실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직원이 결정한다.
"실행에 대한 자율적 권한이 주어지면 내재적 동기가 충분히 발현됩니다. 큰 방향성에 대한 책임은 경영진이 지는 것이고, 실행하는 법에 대한 책임은 직원들이 지는 것이에요. (p.77)"
이 방식이 현재 내가 속한 조직에 적용 가능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제조업이라는 특성과 여러 내외 따라야 하는 프로세스가 많다. 개개 작은 업무에 대해서는 개인이 판단 가능하지만 대부분 이슈는 팀원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일들이 대다수다.
그럼에도 애자일 조직의 문화가 스며들었으면 한다. 그런 내적인 동기 부여 없이 회사 생활은 힘들어지고, 버티지 못하는 인원들은 떠나게 된다. 뛰어난 인재들이 떠날 때마다 안타깝다.
"업무를 해나가는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일이 진척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팀원들이 각각 일이 제대로 일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으면 해당 조직의 문화는 달라진다."(p.124)
하지만 과연 조직만 변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이 책에서는 '나'와 '나의 일'을 리드하는 몇 가지 커리어 생존 전략을 제시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춰라.
공감력은 곧 지능이다.
익숙한 것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라.
스토리텔링으로 설득하라
사람과 자본을 연결하고 확보하라
새로운 것을 빠르게 학습하고 실천하라.
이 책을 읽고 나니 조직뿐 아니라 그 조직에 이미 오랫동안 몸담고 물들어 버린 나도 바뀌어야겠다. 읽다 보니 은근 긴장하게 된다.
"모든 변화는 쌍방향이다."
변하지 않는 조직 탓 말고 내가 먼저 변해보자. 변화는 소수의 동기부여가 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