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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Jun 25. 2019

정체성을 넘어 무한한 우주로 성장하는 스토리

토이스토리4

(본 리뷰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음)


오래간만에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를 보았다. 이런 느낌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 같다.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행복하다. 늘 삶이 불행한 것만도 아니고 행복한 것만도 아니지만, 일상의 작은 엔딩이라도 행복한 시점에 스냅숏으로 끝을 내면 왠지 기분이 좋다.


Where are you from - 정체성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이름과 어디 출신인지 묻는다. 어디 출신인가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는 한 사람의 생각과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도 출신은 '지역'이라는 민감한 주제로 자주 언급된다. 긍정적이라기보다는 편 가르기에 치중되어 있지만.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따른 역할을 성실하게 실행하려는 우디, 버즈, 게비게비 등 다수의 장난감의 부류, 자신의 출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는 포키 같은 부류, 그리고 잃어버린 장난감에서 독립적인 정체성을 찾는 보핏 같은 부류. 토이스토리는 우리에게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등장하는 캐릭터를 통해 그 방법을 보여준다.


우디 - 오리진에 충실하며 성장

아이와 함께 자라고, 아이에게 안정과 행복을 주며,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삶. 아이가 자라면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장난감의 역할이다. 아이의 선택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쓸쓸하다. 우디는 수동적으로 아이가 자신을 선택하기만 바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디는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보니를 원망하기보다는 걱정하고, 유치원 예비소집에 따라가서 보니가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보니가 스스로 만든 포키에 집착하자 이 또한 보니에게 맞춘다. 자꾸 탈출하려는 포키를 관리하면서 보니가 포키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포키에게도 탈출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려준다. 초반 우디의 모습은 감동적이면서 동시에 답답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못해 과도한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 밀려나도 자신의 역할의 충실하려는 삶. 멋있다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내가 중년이라 그런 것 같다.


다행히 우디는 여기서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처음엔 자신의 소리상자를 빼앗으려는 게비게비에게서 도망치지만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해 슬퍼하는 게비게비를 위해 자신의 상자를 내어준다. 그녀의 가슴 절절한 질문 "행복했냐"라는 질문에 자신의 상자를 내어준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결함을 가져서 한 번도 사랑받아보지 못한 게비게비에게 자신의 행복한 기억을 그녀도 가질 수 있게 나누어주는 모습에서 그의 도약을 예측할 수 있다. 마지막에 주인 없는 삶을 택할 때 자신의 배지조차 나눠주는 모습에서 '행복한 왕자'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 두 주인공들보다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해서 다행이다.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우디는 씨앗이다. 장난감으로서의 역할은 죽었지만, 그의 일부는 다른 장난감들에게 새로운 시작이 된다.


버즈 - 내면의 소리를 통해 성장

버즈는 이전 시즌에서는 우디와 경쟁 관계였다고 하나 이번 시즌에서는 우디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위험한 상황으로 뛰어들어 오랜 친구로서의 의리를 보여준다. 버즈는 우디를 구하러 갔다 마주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만난다. 버즈는 처음에 내면의 소리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가 우디를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된다. 앎에서 그치지 않고 삶에서 실천을 통해 버즈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을 ‘실천’하고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다. 스스로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법을 배운 버즈는 결정적인 순간에 우디에게 거꾸로 조언을 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봐


그가 말하는 내면의 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To infinity and beyond


포키 - 정체성에 집착하다 성장

포키의 정체성은 명확하다.


쓰레기


포키가 자신을 "쓰레기"라고 외치면서 계속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은 상반된 모습을 가진다. 자신의 오리진에 충실하려는 긍정적인 모습과, 쓰레기에서 새로운 삶이 부여됐음에도 이를 부정하고 원래의 삶을 살려는 모습. 토이스토리는 이 두 가지가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는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는 포키는 지속적으로 우디에게 자신이 장난감임을 주입받는다. 그럼에도 포키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그러다 우디와 고속도로에서 밤길을 걸으면서 많은 대화 끝에 그는 깨닫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도 보니와 함께 하는 것이 의미 있음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포키는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성장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롭게 부여되는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는 모습이야말로 멋지다. 요즘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쉽게도 포키가 마지막에 정체성을 잃는 것으로 보인다. 보니가 초등학교 입학해서 만든 ‘또 다른 포크로 만든 작품’이 집에 왔을 때 자신을 장난감으로 소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디가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방식으로 새로운 포크에게도 깨달음을 줄 것임을.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포크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깨닫게 될 것임을.


보핏 - 새로운 정체성을 통해 성장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그리고 맨인블랙에서 만난 답답한 여성 캐릭터 (실제는 아니지만 답답하게 그려진)를 보다가 보핏을 보니 사이다처럼 속이 뻥 뚫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보핏은 섬세하면서 강하고 사랑할 줄 알지만 독립적이다. 보핏이 추구하는 주인 없는 장난감의 삶을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스스로 존재하는 삶'. 스스로 존재하는 자는 신 아닌가? 그녀는 장난감을 넘어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높은 곳에 올라 카니발 장소를 내려다보는 장면에서는 더더욱 신과 같은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모든 것에 초연해 내려다보는, 어느 누구에게 소속되지 않은 스스로 존재하는 삶. 유토피아적 삶이다. (카니발 자체가 유토피아적 느낌이 강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그녀가 타고 다니는 차는 스컹크다. 모두가 피하는. 그래서 그녀는 자유롭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다 진실이 아님을 역설하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오리진 정체성을 넘어 새롭게 거듭난다. 여신이다! 스컹크 타고 다니는 여신!


토이스토리가 아닌 우리스토리


토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an object for a child to play with, typically a model or minuature replica of something


아이를 뺀 부분, ‘model or miniature replica of something’ 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 없는, 아이가 없는 토이 스토리는 이런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고로 토이스토리는 우리 삶의 축소판이라고 확대해서 해석할 수 있겠다.

일요일에 교회 유아부에서 아나바다 장터가 열렸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즉, 중고 장터이다. 아이들 옷, 장난감, 책 등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가져온 물품들로 예배당은 가득했다. 워니에게 가서 골라보라고 했다. 워니는 처음에는 책도 보고, 트럭도 가지고 놀더니 냉큼 파란 리본이 달린 흰 곰돌이 인형을 잡았다. 너무 좋은지 안고 놓지를 않는다. 집에 와서도 ‘곰돌이야, 곰돌이야’ 하면서 이야기도 해주고, 소꿉놀이도 한다. 토이스토리에 너무 몰입해서였을까? 워니가 그 인형을 집었을 때 곰돌이 인형이 행복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건? 자세히 보니 이 인형은 등이 터졌었는지 꿰매져 있고, 눈 아래도, 목에 달린 리본도 바느질이 되어 있다. 그래도 이 인형은 워니의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워니와 함께 하면서 어린이집에서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줄 거다.


이 모습을 보니 더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토이스토리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우리스토리다. 지금 현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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