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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Sep 16. 2019

짬뽕을 부르는 세계사

본격 한중일 세계사

역사는 책보다는 드라마 또는 영화를 통해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머릿속으로는 상상이 잘 안 되는 그 시대 모습이 화면을 통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면 재미도 있고, 기억에도 잘 남는다.

성장판 독서모임 서평단에서 이번에 추천한 책은 <<본격 한중일 세계사>>이다. 제목만 보고 역사책이려니 했는데, 만화 역사책이었다. 접했던 만화 역사책 중 <<먼 나라 이웃나라>>가 가장 유명하다. 읽은 지 오래되었지만 재미있었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최근에는 <<이현세 만화 한국사>> 전집과 <<조선왕조 실톡>>이란 책을 구매했다. <<조선왕조 실톡>>은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카톡으로 친구 추가했는데, 알고 보니 조선 왕 들이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 마치 SNS로 친구가 얘기해주는 것 같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저자 굽시니스트,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매 2019.04.15) 책의 작가는 굽시시니트스트(김선웅)이다. 81년생의 (내가 보기엔) 젊은 이 작가는 성균관대 역사교육학과에서 석사를 받았다. 굽시니스트라는 필명으로 2009년부터 <<시사인>>에서 <본격 시사인 만화>를 연재 중이다. 작가는 책 서문에 이렇게 먼저 질문을 던진다.


국사도 선택인 시대에 왜 한중일 세계사를 봐야 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한국사'라는 나무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멀리서 '동양사'라는 숲을 봐야 하기 때문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은 중국사와 일본사만 다룬다. 한국사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라고 한다. (과대평가... 받으니 부끄럽다.)

이 책의 장점을 꼽으라면 역사 시험 암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외우기는 필수인데, 작가 굽시니스트는 사람, 지역, 상황 등을 외우기 쉽게 표현했다. 아마 작가도 이렇게 외웠을 것 같다. 한참 영어 단어 암기를 위해 보았던 <<Word Sponge>> 책이 생각났다. 이 책도 발음, 연상을 통해 영어 단어 암기를 쉽게 도와준다.

굽시니스트 작가는 '데포르메'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만화로 표현되는 자신의 역사관에 주관이 들어갈 수도 있음을 언급했다. 사실 역사가들이 말하는 역사는 어차피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는 만화라는 그림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더 강렬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음을 우려해서 언급한 것 같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서는 중국은 판다, 한국은 호랑이, 일본은 고양이로 표현되었다.


데포르메

회화는 사람이 보는 물품을 캔버스로 옮겨 그리는 절차를 말한다. 아무리 주관이 빠지더라도 작품에는 왜곡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표현법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그리스의 인체 조각상에는 조금이라도 이상적인 모양으로 표현하려고 왜곡이 들어갔고, 르네상스 미술에는 대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웅장하게 표현하려는 시도가 나왔다. (출처 : 나무 위키)

작가는 본문 만화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내용은 손글씨로 적었다. 의도는 이해했으나 글씨가 잘 눈에 안 들어와서 좀 힘들었다. 타이핑된 글자에 눈이 익숙해져서 인 것 같다. 타이핑을 해주었으면 좋았겠다. 굳이 손글씨가 아니어도 진정성은 있어 보이니까 말이다.


역사책을 그냥 읽는 것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읽는 것이 훨씬 기억에 잘 남고, 재미도 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서평을 위해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읽었다. (사실 다 읽고 다시 답을 찾기 위해 또 읽었다.)


”19세기 말, 어째서 일본에 중국인 유학생이 잔뜩 있었을까?”


이 궁금증이 생긴 것은 나가사키 짬뽕의 유래 때문이었다. 사실 중국집에 가면 짜장 먹을지, 짬뽕 먹을지 항상 고민된다. 짬뽕은 나가사키 짬뽕이 유명하다. 왜 나가사키인지, 이름이 왜 짬뽕 인지도 궁금하다. 짬을 모아서 만들었는데 뽕처럼 맛나서라는 이야기는 근거는 없다고 한다.

위 만화 컷에서 알 수 있듯이 짬뽕 한 그릇에도 한. 중. 일 근대사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책에서는 19세기 말 일본에 중국인 유학생이 많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중국사 재발견>> (왕중추) 책에 따르면 청일전쟁 패배 이후 중국은 일본을 배워서 일본을 이기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중국 학생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중국 유학생들은 일본에 전파된 서양 문물을 습득하고, 일본어로 번역된 서양 책들을 중국어도 번역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사상 문화 등이 중국인들에게 전파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번역의 힘과 책의 힘을 강력하게 느꼈다.


”왜 대항해시대에 흐름에 일본은 푹 잠겼고 조선은 벗어났을까?”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 따르면 대항해시대에 한국이 제외된 이유는 한국의 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라고 한다. 반면 일본은 전 세계 은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은을 유통했다고 한다. 17세기 조선의 은 생산량을 검색하다 일본이 은을 많이 생산하게 된 것은 조선의 덕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은 분리법은 1503년 조선의 함경도 단천에서 개발되었으며, 세계 광업 사상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이것은 은광석에서 납을 제거하여 순은을 추출하는 제련 기술이었다. 무쇠 화로나 냄비 안에 재를 두르고 은광석을 채운 다음, 깨진 질그릇으로 사방을 덮고 숯불을 피워 녹이는 것이 핵심이었다. 16세기 중반 조선을 드나들던 일본 상인들이 조선 장인을 채용하여 관련 기술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 무렵 시마네 현의 이와미에서 은광이 발견되자 전국 시대를 맞아 재정 확보에 열을 올리던 일본의 다이묘들이 경쟁적으로 이 기술을 활용하였다. (출처 : http://study.zum.com/book/14899)


기술을 전파했는데, 세계사적 흐름에는 제외되었다니 아이러니하다. 제외되기보다는 동참했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과거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자연의 도움이 세계사와 국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강, 비옥한 땅, 차, 은, 석탄 등... 부동산뿐만 아니라 나라도 위치가 중요하다. 그래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열심히 공부하고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역사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


”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었을까?”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서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나게 된 배경으로 면을 꼽았다.

면화를 수입해 영국에서 직접 면직물을 만들기 위해 방직기, 방적기를 만들게 되었고, 생산량이 급증하게 되었고, 생산량 향상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기계가 나오고, 기계를 만들기 위한 제철 공법이 발달하게 되고, 코크스 공정을 쓰기 위해 석탄이 필요하고, 석탄 캘 때 나오는 지하수를 퍼내기 위해 증기기관 펌프가 개발되고, 기어, 크랭크의 발전으로 증기기관은 모든 기계의 동력 장치가 되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혁신과 생산 증대는 부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 재투자를 가져오고, 결국 산업혁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쓰다 보니 문장도 길다.) 물론 이해하기 쉽도록 강조한 것이긴 한데, 쉽게 와 닿긴 했다.


찾아보니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는 것 같다. 과학 기술이 더 발달한 나라도 아니었는데 지리적으로 운이 좋아서라는 (석탄이 많아서..)라는 분석글도 있고, 정치가 안정되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공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어찌 되었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그 여파가 아직도 전 세계를 움직이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우린 생산성을 아주 중요시 여기고 있다. 물론 면 티도 사랑하고..

더 큰 야욕을 보인 영국은 나중엔 인도에선 목화만 수입하고 아예 인도의 면직물 시장을 먹기 위해 영국 동인도 회사를 만들고, 방해하는 프랑스와 60년 동안 전쟁을 해서 결국 인도 전체를 석권하고 인도 면직물 시장을 망하게 했다. 이것이 근대 제국주의다.


씁쓸하게 책장을 넘기던 그때! 반전. 영국이 돈을 많이 번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 돈은 다 중국으로 갔다는 대목에서 통쾌했다. 물론 이건 또 다음 이어지는 아편 전쟁의 서막이긴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영국은 신사의 나라 맞나 모르겠다.(역설 법인가)


“모든 서양을 거부하던 일본이 왜 네덜란드는 받아들였을까?”

교역을 많이 하던 일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쇄국을 단행한다. 그런데 신기하게 네덜란드와는 교역을 지속한다. 이유는 네덜란드는 기독교 포교에 관심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일본은 데지마 섬에 네덜란드 상관 설치해서 교역을 하도록 허용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서양 문물을 접하게 된다.

난학이 일본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지만 서양의 과학, 의학 등 다양한 문물을 일본으로 흡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정세를 1년에 한 번씩 최신으로 업데이트받을 수 있었고 세계 속의 일본의 위치에 대한 위기의식을 꾸준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참 뒤처졌던 일본이 서양과 어깨를 겨루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이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지금 우리를, 나를 돌아본다. 먹고살기 바빠, 역사에는 관심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아이를 위해 좀 더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해야겠다.


(성장판 독서모임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았습니다. 서평의 내용은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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