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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Dec 04. 2019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서평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에 대한 사랑을 삶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며, 우리는 길을 잃은 뒤에야,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는 소로의 속삭임이 다시금 가슴을 아프게 두드린다." (p.23)


밤새 잠을 못 잤다. 갑작스럽게 뒷골이 당기기 시작하면서 생긴 통증은 전혀 제어되지 않았다. 최근 스트레스가 많긴 했다. 아니다 괜찮다 하면서 그냥 버텼다. 폭식을 하면서 나름 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뻣뻣해진 목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근육 이완제를 네 알이나 털어 넣어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다 잠자기는 포기하고 결국 책을 읽기로 했다. 고른 책은 정여울 작가의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김영사, 2019)였다. 제목이 끌렸다.



번아웃 신드롬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일에 탕진한 나머지 정작 자기 삶을 위해 쓸 수 있는 기운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며, 번아웃 상태에서 '결국 모든 게 잘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낙관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커다란 목표를 잡고서는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야말로 번아웃을 향한 지름길이다.(중략) 당신을 더 깊은 일의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이나 조직은 결코 당신을 번아웃에서 구해주지 못한다. 그들은 더 많이, 더 오래, 당신이 일의 노예이기를 바랄 뿐이다."(p.184)


직장은 전쟁터라는 클리셰가 있다. 직장이 전쟁터라면 전투복은 내 몸이다. 전쟁을 치르다 보면 몸의 전열은 흐트러진다. 나를 사랑한다면 아껴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다.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라고 커피와 단 것을 퍼붓고, 집에 와선 스트레스 풀겠다고 매운 것들을 퍼붓는다. 말로는 전쟁터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인 몸은 학대하곤 했다.


"그 사람이 평소에 자부하는 바로 그 원만한 성격이 (중략) 그 사람의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기하고 다듬어온 인격이다. 그러니 페르소나란 매우 연기력이 뛰어난 나, 우리의 진짜 감정을 숨기기 위한 정교한 가면이기도 하다. (중략) 페르소나를 화려하게 치장하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돌보지 않는 사람들은 언젠가 트라우마에 직면했을 때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p. 99)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내 실력이 부족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인정받지 못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든 상황이 되어도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쓰고 괜찮은 척 지내고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울거나, 아프다. 감정의 폭발로도 해결이 안 되면, 갑자기 몸이 무기력해진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력이 회복되지 않는 무기력증에 빠지면 모든 것을 그냥 멈춰야 한다. 무기력은 내 삶의 공장 라인을 멈추는 스탑 버튼이었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페르소나와 숨기고 있는 내면의 그림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정신건강은 악화된다.(p.170) 당신의 분노가 거의 포화 상태에 다다른 감정의 물통에 떨어질 마지막 물방울이 되는 순간, 감정의 물통은 쏟아져버린다. (중략) 분노를 억제할 수 없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내면의 신호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그림자를 돌볼 시간이다. (p.101)"


왜 가끔 이런 상태가 되는지 궁금했다. 괜찮다고, 누구나 다 이러고 산다고 생각하면서 위안하지만 이유 없이 화가 날 때가 있다. 내가 들었던 말들이 화가 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기분에 화가 나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의욕만으로 안 되는 것들이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술로, 게임으로, 잠으로, 드라마로 그냥 어딘가로 숨어버린다.


"마음속에 각인된 말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때로는 무시무시한 흉기가 되어 폐부를 찌르기도 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안락의자처럼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p.145)


문득 내가 화를 내는 상대가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 최선을 다하지 못한 모습, 불평불만에 가득 차 투덜거리는 모습, 내가 선택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고,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타인의 애정 어린 조언조차 한사코 밀어내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기에 서툰 것이다." (p.117)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돌보지 않자 몸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나에게 S.O.S를 보냈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책 덕분에 그 구조신호를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나에게 묻는다.


“마음아 잘 있니?”


연말, 한 해 고생했고 지친 나를 위한 선물로 이 책을 추천한다.


* 이 책과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개인적으로 구매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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