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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Mar 17. 2020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

이태원 클라쓰 feat. 나쁜 조언


http://photo.jtbc.joins.com/prog/drama/itaewonclass/Img/20200117_113255_4977.jpg


넷플릭스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보는 중이다. 주인공 박새로이는 재벌 2세인 장근원이 반 친구인 이호진을 괴롭힐 때 선생님 조차 모른 척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 친구와 싸우게 된다. 장근원은 아버지가 다니는 요식업계 1위 업체 장가의 회장 아들이다. 장 회장은 자신의 아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박새로이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한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아버지가 소신대로 살라고 했다면서 버티다 결국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새로이 아버지는 회장에게 이런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회사를 그만둔다. 하지만 아버지는 장근원의 뺑소니 사고로 죽게 되고, 그 사고는 회장의 운전기사 잘못으로 위장된다. 분노한 새로이는 장근원을 때려 폭행죄로 감방에 가게 된다.


박새로이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꿈을 키워나간다. 장 회장은 박새로이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박새로이의 대사 중 세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장사는 사람이죠."


"내 소신에 대가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대사는 박새로이의 가게의 대표로 나가 방송에서 경연을 벌이는 마현이가 트랜스젠더임이 알려졌을 때 새로이가 한 말이다.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

https://tv.naver.com/v/12743893 

(출처: 이태원 클라쓰 공식 Naver TV)


배경음악은 하현우의 돌덩이였다. 가사는 이렇다.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그게 현명하게 사는 거라고
쥐 죽은 듯이 살라는 말
같잖은 말 누굴 위한 삶인가
뜨겁게 지져봐
절대 꼼짝 않고 나는 버텨낼 테니까
거세게 때려봐
네 손만 다칠 테니까

나를 봐
끄떡없어
쓰러지고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 오를 뿐야
난 말야
똑똑히 봐
깎일수록 깨질수록
더욱 세지고 강해지는 돌덩이
(소스: Musixmatch)


순간 울컥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서라는 말이 감동적이었다. 소외 계층(폭행범, 트랜스젠더, 고졸, 흑인)에 속한 이들이 주인공인 드라마 자체가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This is me!라고 크게 외치고, 어떤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성공하는 (물론 만화적 설정과 반전이 현실감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그들에게 박수를 치고 싶었다. 쉽지 않은 것을 알지만 응원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에게 그러고 싶었다.

"네가 너 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


이 말은 <<나쁜 조언>> (비너스 니콜리노 저, 솝희 옮김, 샘터)이란 책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의 표지에는 '그럴듯한 헛소리를 차단하고 인생 꿀팁을 건지는 법'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로 꼽은 나쁜 조언이 바로 "그냥 당신 자신을 보여라.'였다. 새로이가 한 말은 얼핏 잘못 들으면 "그냥 있는 그대로 니 자신을 보여"라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래 내용은 책의 발췌 및 요약이다.


'그냥' 나 자신을 보이라면 여태 보여준 모습은 누구인가? 다른 사람 생각 따윈 신경 안 쓴다면, 다른 사람들이 알던 말든 무슨 상관인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신경 안 쓴다고 생각하길 바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사회는 사람들을 한 가지로만 정의한다. 이 시각은 대개 심한 편견, 성차별, 인종차별, 파괴적이고 편협한 말에 오염된 것이다. 성별, 인종, 나이, 성적 지향성, 체중, 직업, 사회경제적 지위를 포함해 어떤 것이든 당신에 대한 '정보'가 될 수 있지만, 단 하나로 당신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당신'만이 당신을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나이 든/뚱뚱한/동성애자인/헤픈/무일푼인) 그냥 당신 자신을 보여라'라는 그 나쁜 조언부터 던져 버려야 한다.


당신의 정체성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포함해 수많은 조합으로 결정된다. 당신의 말과 행동이 미치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력은 가까운 지인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당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준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당신에게 '분명' 중요하다. 그것은 힘이다.


자신에게 FUCK(Go Find Understanding, Confidence, and Knowledge in Yourself)을 날려라.


Find -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발견하라.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라.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발견' 한다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객관성은 타인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Understanding - 수집한 정보의 가치는 내가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합치'와 '맥락'을 이용해 '거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일관되게 말하는 부분은 나의 가장 변치 않는 부분일 수 있다. 타인들이 보는 나의 모습을 깨닫는 다면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이해를 통해 '그냥 나 그대로'가 아닌 '변화'의 기회를 잡고 선택할 수 있다.

Confidence - 스스로에게 전념하게 되면 신뢰하게 된다.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킬수록 자신감, 신뢰, 정직한 모습이 쌓여 간다. 전념을 하는 방법은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그것에 대해 적으라고 한다. Confidence는 그냥 거울을 보며 "나는 믿음직한 사람이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다.."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는 자기 최면과 차원이 다르다. 자신에 대해 짜증 나는 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 다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변화시킴으로써 형성된다.


Knowledge - 많이 적을수록 지식이 쌓여간다. 자신에 대해 잘 알면 정확하게 자신을 인지하게 된다. 자신감이 흔들리게 될 때 단단하게 잡아 줄 자기 지식을 갖게 된다. 자기 인식(self-awareness)은 당신이 그 힘에 얼마만큼 책임감을 느끼는지 보여주는 척도다. 자기 지식은 자신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고, 자기 인식은 '왜' 그런 모습인지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모를 수 있다는 가능성과 당신이 늘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와서, 마현이는 새로이가 요리를 잘한다고 주방장으로 임명했지만 요리를 뛰어나게 잘하진 않았다. 자신에 대해 혹평을 하는 이서의 조언을 듣고, 스스로 요리에 전념한다. 그래서 한계를 뛰어넘는다.


혼자서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군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자신감은 진공상태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랑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p.40)."


새로이는 그 말을 하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마현이에게 일관되게 말해왔다. "넌 요리를 잘해, 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야". 이런 좋은 친구가 있어서인지 마현이는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고 인정해주는 단밤 식구들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Understanding과 Confidence를 쌓아갔다. 그리고 마현이는 원치 않게 자신이 트렌스젠더임이 커밍아웃된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경연에 참여한다. 그리고 마침내 최강 포차 경연에서 우승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쁜 조언>>에서 저자가 말한 FUCK을 날린거다. 마현이는. (자신에게)


<<나쁜 조언>>에서 말하는 나쁜 조언인 "그냥 당신 자신을 보여라"는 훨씬 더 직관적이고 매력적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돼서 편하다. 작가가 말하는 좋은 조언은 너무 단계가 많다. 게다가 나 자신을 직면하는 일은 어렵다. 그럼에도 사회생활을 할 때는 필요한 조언이다. 특히 취준생의 면접 자리에선 더더욱 그렇다. 아니 썸 타는 애인 앞에서도 그렇고. 직장 상사 앞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지지해주고 인정해주는 가족, 친구들이 더 소중하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게 하고 더 나은 나 자신이 되게 하는 버팀목이 되니까.


고로 새로이의 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서 "그냥 나를 보여주라"고 이해하지 말자. 일단 자신에게 FUCK을 날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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