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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Mar 21. 2020

기억이란 이렇게 지독한 거구나

 이태원 클라쓰와 하이에나 feat. 미움받을 용기

넷플릭스 유료 결제 이후 매주 드라마를 챙겨보고 있다. 본전 핑계를 대지만 사실 재미있어서다. <동백꽃 필 무렵>은 범인이 누구인지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몇 번이나 반복 시청했다. <사랑의 불시착>은 주인공들이 좋아서 보았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울면 따라 울었다. 지금은 <이태원 클라쓰>와 함께 <하이에나>를 시청 중이다.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 알람을 기다린다.


<이태원 클라쓰>는 지난번 글(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에서도 언급했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사는, 그래서 전과자가 된 박새로이가 자신을 굴복시키려는 재벌 장가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자신의 소신대로 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그 선함을 돌려받으면서 성장한다.


<하이에나>는 조직폭력배나 뒷골목 양아치들의 소송을 대신해주며 돈을 벌던 뒷골목 변호사인 정금자가 송앤김이라는 일류 변호사 사무소에 파트너가 되어 사건을 해결해가는 이야기이다. 처음 에피소드에서 정금자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금수저 변호사인 윤희재를 꼬셔 애인으로 삼아 정보를 빼내고, 그 정보로 승소한다. 정금자의 능력을 알아본 송앤김 대표가 정금자를 송앤김으로 스카우트한다. 속은 것에 치를 떨면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윤희재와 개인사는 비밀 속에 있는 정금자가 티격태격하는 것이 주요 스토리다.


지난주 두 드라마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동시에 보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비슷한 주제가 동시에 나왔기 때문이다.


에피소드의 내용은 이렇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18872

<이태원 클라쓰>에서 박새로이 친구인 이호진은 고등학교 내내 장가의 첫째 아들인 장근원의 괴롭힘에 시달린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외면하는 상황에서 박새로이는 괴롭히는 장근원을 막아서며 싸워 퇴학당한다. 전교 1등이던 이호진은 유능한 펀드 매니저가 되어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준 박새로이의 자산을 늘려준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호진은 우연히 감옥에서 나온 장근원을 길에서 만나게 된다. 이호진은 그냥 지나려다 용기를 내 아는 척을 한다. 하지만 장근원은 이호진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그 상황에 대해 이호진은 박새로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https://tenasia.hankyung.com/drama/article/2020031516634
웃긴 게 뭔지 알아?
나는 그때와 다르고
장근원은 모든 걸 다 잃었어.
근데 순간 무섭더라


<하이에나>에서 정금자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가정 폭력범이다. 술 취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때린다. 결국 정금자의 엄마는 남편의 폭력으로 죽게 된다. 하지만 주취에 의한 사고로 판결이 나고 정금자의 아버지는 쉽게 풀려난다. 정금자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지속되는 폭력에 참지 못해 아버지를 감옥에 가둘 계획을 세운다. 고의 살인이 되도록 상황을 설정한 후 아버지가 자신을 칼로 찌르게 만든다. 이 일로 아버지는 30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후 정금자는 변호사가 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법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어느 날 아버지가 모범수로 일찍 출소해서 정금자의 사무실로 찾아온다. 정금자는 나가라고 소리친다. 아버지가 목사가 되었다며 명함을 주기 위해 다가오자 정금자는 뒷걸음질 친다. 이 상황에 대해 정금자는 윤희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아버지라는 사람은 없다.
그 인간한테 23년간 맞았다.
양아치들 깡패들 뒤치다꺼리하며
무서울 것 없었는데,
그 인간이 다 늙은 노인이 되어 왔는데,
내가 뒤로 물러나더라.
기억이라는 게 이렇게 지독한 거구나 싶다


두 드라마가 동시에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를 언급하다니... 우연일까 필연일까?


트라우마. 정의를 찾아보았다.


"트라우마는 외상을 가리키는 말로, 그리스어 어원은 상처라는 뜻이다.


프로이트가 이 단어를 정신분석에 차용하기 전까지 의학에서는 신체조직에 생긴 상처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원래 외상은 외부적 충격으로 피부조직에 일어난 손상과 그 손상이 유기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이다.


정신분석학적 트라우마 개념 또한 이런 원래의 의미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데, 프로이트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물리적 사건의 끔찍함으로 인해 주체의 심리적 보호막이 파열되는 순간을 가리키며 심리에 난 ‘상처’이자 심리적 보호막에 구멍이 뚫린 상태를 말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쾌락 원칙을 넘어서, 실린 곳: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윤희기, 박찬부 옮김, 열린 책들 1997, 299쪽 참조.) https://bit.ly/2QyRh9g


트라우마를 검색하다 보니 아들러의 이름이 눈에 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살았던 유명한 심리학자다. 한참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저,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는 아들러의 이론을 설명한 책이다. 제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안 읽었는데, 이번 참에 궁금해져서 구매했다. 목차 중 한 꼭지에 눈이 간다.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움받을 용기>>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 - 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가령 엄청난 재해를 당했다거나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았다면, 그런 일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네. 분명히 영향이 남을 테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무언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 “


이 글을 접하고 보니 위 드라마에 나온 두 사람은 모두 그 일을, 경험을 이겨냈다. 아니 이겨내는 것을 선택했다.



반면 <이태원 클라쓰>의 장근원은 원인론에 입각한 트라우마가 존재하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아버지 때문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약육강식을 가르치며 정의보다는 힘을 강조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장근원. 아버지에게 자신이 돈을 주는 사람들은 노예, 가축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닭의 목을 비틀며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배운다.


장근원은 마음은 여리지만 강인함을 강조하는 아버지 앞에서 늘 주눅 들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인정받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장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침을 당해 교도소에 다녀오게 된 장근원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와 박새로이를 탓하며 박새로이를 죽이려는 자신을 막아달라고 아버지에게 요청한다.


<<미움받을 용기>>의 철학자가 장근원을 만난다면 이렇게 조언할 것이다.


"과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과거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유효한 수단도 써보지 못한 채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네. 가능성을 생각하게. 인간이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자연히 목적론에 입각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일세. 우리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인간을 기계처럼 바라보는 것은 프로이트의 원인론임을 이해하기 바라네. 


인간은 과거의 원인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자네가 지금 불행을 선택한 거야. 다시 선택해보게. 생활양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장근원처럼 현재의 나의 모습에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준 사람을 탓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무엇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고 아들러는 말한다. 아들러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지 말라고, 결과를 선택하는 용기 있는 삶의 태도를 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아들러의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구나 싶다.


코로나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공포로 가득한 현실을 돌아본다. 막연하던 두려움이 점점 가까워지고 그럴수록 더 두렵다. 이 현실은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아들러가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궁금해서 구매한 아들러 심리학 입문들을 틈틈이 읽어봐야겠다. 육아에도 큰 도움이 될듯하다. 두 드라마를 동시에 보다 우연히 아들러를 만났다. 고마운 드라마들. 역시 챙겨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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