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원고 - 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 과정에 대하여
"저는 30대 때까지 시력이 있었어도, 등산을 좋아했죠. 어느 날 절벽에서 떨어져서 그 충격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어요. "
"정말 힘드셨겠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다른 곳은 안 다치셨네요."
"네, 그렇죠. 시력만 잃었어요. 처음엔 좌절하고 힘들었어요. 그랬다가 한 6개월 만에 털고 일어났죠."
"정말 대단하세요."
어깨와 목이 너무 아파 간 지압원에서 지압사 선생님과 나눈 대화다. 내가 하는 일이 힘들다, 목도 아프다 짜증만 가득했는데, 이 분과의 대화를 통해 날뛰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일을 하신지 오래되셨어요?"
"그럼요 한 20년 됐죠. 한 3만 명 정도 지압한 것 같아요."
"어휴, 그럼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으니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손만 대도 몸이 어떤지 아시겠네요."
"그럼요, 여기 오는 사람들, 참 다양한 사연이 많아요. 오늘도 40대, 공무원분이 오셨는데, 아이도 어린데, 갑자기 쓰러졌는데 반신 마비가 왔대. 공무원도 이제 못하고... 마음이 안 좋아. 이런 이야기들이라 얘기하기도 뭐해요"
이야기를 할수록 이 분을 인터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의 삶도 극적이고, 이분이 만나는 사람들의 인생도 극적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이때 처음으로 논픽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논픽션은 "1912년 미국 잡지 『퍼블리셔즈 위클리』가 베스트셀러를 발표할 때 픽션과 논픽션으로 분류하여 발표한 것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논픽션(nonfiction)은 글자 그대로 픽션(fiction)이 아닌 모든 것을 지칭한다. 픽션은 허구 가운데 특히 소설을 이르는 말로, '창작해낸 허구의 이야기'를 가리킨다. 픽션을 제외한 모든 글이 논픽션에 해당되는데, 있는 사실을 그대로 서술하는 형식의 이야기 내용까지도 포함한다.(출처: 나무 위키)
사실을 신문기사처럼 딱딱하게 육하원칙에 따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논픽션 쓰기>>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유유)에는 "내러티브 논픽션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으로 저널리즘이긴 하지만 육하원칙에 근거해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과 스타일이 문학성을 띠기 때문에 문학적 저널리즘"이라고 정의한다.
존 맥피는 논픽션의 대가다. <<이전 세계의 연대기 annals of the former world>>(1998)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75년부터 프린스턴대에서 글쓰기 강의를 해오고 있다.
<<네 번째 원고>>, 존 맥피가 프린스턴에서 가르쳐온 글쓰기 강의록을 엮어 낸 책이다. 이 책은 매우 지루할 수도 있었다. 연세가 많으신 분의 아주 옛날 (내 부모님조차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쓴 글에 대한 내용이었다. 2020년 한국에 사는 나의 현실과 동떨어져있었다. 길에 죽은 동물을 먹는 사람들이던가, 지질학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처음엔 읽고 서평을 과정이 고통일지도 모르다는 편견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마감은 다가오고 읽기 시작했다.
책 목차는 작가가 글을 써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생각과 다르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었다. 책에 실린 유명한 사람들의 찬사들에 공감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에 대한 <<커커스 리뷰>>의 의견에는 공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에세이들을 한 권으로 이어서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작법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자가 프린스턴대에서 지난 수십 년간 그토록 성공적으로 강의해온 비결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중략) 거장이 자신의 작업을 말하는 최고의 책이다."
존 맥피는 글의 구조, 시작, 편집자와 문장과 논리에 대한 리뷰, 단어의 시대성, 팩트체크,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까지 모든 단계를 대충 하는 것이 없다. 책 서문에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전속 필자로 있는 샘 앤더슨이 쓴 "존 맥피의 정신: 은둔 작가가 밝히는 강박적 집필의 과정"이라는 글에서 "강박적"이라는 말이 처음엔 와 닿지 않았는데, 책 전체를 읽고 나니, 매우 적합한 단어다.
이 책의 제목인 <<네 번째 원고>>. 거장조차도 최소 네 번의 퇴고를 거친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루한 고통의 시간을 겪고, 걸릴 시간만큼 걸려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
"사랑하는 제니, 요즘 뭐에 대해 쓰냐고? 어떻게 돼가고 있냐고? (중략) 지금 쓰는 글에 영 자신이 없단다. 시도해선 안될 것 같은 일을 너무 많이 시도하고 있어. (중략) 게다가 아직 거의 시작도 못 했어. 4개월 하고도 9일 동안, 도합 대략 1000시간 가까이 모니터를 노려보았으면 이제 됐다. 나는 낚시나 하러 가련다.(p.284)"
"캘리포니아 지질학에 대한 책의 첫 번째 원고를 완성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암울한 2년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원고는 다 합쳐서 6개월 정도 걸렸다. (p.258)"
"글 쓰는 일이란 절대로 한 번에 되는 게 아니고 서너 번은 반복해야 한단다. 첫 번째 원고에는 뭐든 - 아무 말이든- 괜찮으니 그냥 내뱉고 토해내고 지껄이렴. 그렇게라도 일단 쓰면 너는 일종의 핵을 갖게 되는 거야. 이제 그걸 재검토하고 수정해나가면서 보기 좋고 듣기 좋은 문장으로 다듬어내기 시작하는 거야. 처음에 엉망진창 아무 말을 다 쏟아냈으면, 일단 그걸 밀쳐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하지만 오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단어들이 엮이고 있어. (중략) 머릿속에서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하루 24시간 집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야. (p. 259-260)"
"운이 좋아 비로소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 만들었다, 뭔가 쓸 만한 걸 안전하게 확보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두 번째 원고가 끝나갈 때쯤이다. (중략) 두 번째 원고를 소리 내어 낭독하고 (읽을 때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잡음을 쳐내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째 퇴고를 거친 다음에는 '네 번째 원고'를 위해 단어와 어구에 연필로 네모를 친다. 나는 네모 안의 단어들을 대체할 다른 말을 찾아 헤맨다. (p.263)"
존 맥피는 구조의 대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구조라고 했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도 강조하는 것이 구조다. 구조가 탄탄하면 그다음 개발은 쉽다. 설계대로 코딩만 하면 된다. 분야를 떠나 진리인 구조. 존 맥피도 구조에 집착한다.
"구조는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시각적이다. 정말 노련한 작가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 주는 시각적 지침서를 만든다. 건축가처럼 어떤 구조로 건물을 지을지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다. (중략) 해설 내러티브 논픽션의 대가 존 맥피가 구조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설계도를 그리면 이야기를 전개할 때 여기저기서 쑥쑥 올라와 어느새 덤불을 이루는 정보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논픽션 쓰기>>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유유)
책에는 존 맥피의 글의 구조 그림이 종종 등장한다. 이 구조를 보면서 글을 읽다 보니 정말 한 땀 한 땀 수공예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는 장인의 정신이 느껴진다.
저자가 언제부터 구조에 집착하게 되었나 궁금했다. 1940년대 말 고등학교 선생님에게서 배운 "글의 문장과 단락을 쓰기 전에 우선 어떤 청사진을 구축해야 한다"라는 원칙에 충실했다고 한다. 역시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강하고 견실하고 교묘한 구조, 독자가 계속 책장을 넘기고 싶게끔 만드는 구조를 세워라. 논픽션의 설득력 있는 구조는 픽션의 스토리라인과 유사하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p.62)"
논픽션은 픽션이 아니기 때문에 사건 발생 시점을 내가 원하는 극적인 시점으로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 모든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정확한 사실임을 팩트 체크까지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것이 논픽션의 특성이다. 이런 제약 상황 속에서 독자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하려면 정말 탄탄한 구조 밖에는 달리 답이 없어서 일 것이다.
"독자들이 구조를 눈치채게끔 해선 안된다. 구조에 글감을 억지로 끼워 맞추면 안 된다는 얘기다. 구조는 글감 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p.82)."
자료를 수집하고, 숙지한 후, 구조를 세우려다 보면 잘 안될 때가 있다. 그때 존 맥피는 "도입부부터 쓰라"라고 한다. 도입부를 썼다면 어떤 의미에서 이야기의 반을 쓴 것이라고들 한다. 도입부는 값싸거나 현란하거나 번지르르하거나 요란하지 않아야 하고 글이 이런 모습을 띌 것이라고 약속해야 한다고 한다. 갑자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이 떠오른다. 도입부는 이렇다.
"누가 날 죽였지?"
작가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이 바로 편집자들과 발행인일 것이다. 아마 출판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편집자들과 발행인"이란 장에서 가장 많이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장문의 논픽션 글을 놓고 논의하면서 미스터 숀은 "그걸 어떻게 알죠?" "그렇게 될 걸 어떻게 알죠?"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하는 질문을 숱하게 던지곤 했다. 모든 논픽션 필자가 이 질문을 항상 마음이 맨 앞자리에 품고 있어야 했다. (p.144)"
편집자님을 직접 만날 일이 없는 나로선 잘 이해가 안됐다. 하지만 내 마음을 읽은 듯 글항아리에서 책을 보내줄 때 책임 편집을 맡은 박은아 편집장님의 편집 노트도 함께 왔다. 편집 노트와 함께 이 책을 읽으니 이번 장의 내용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다 읽고 나니 상반된 감정이 교차한다. 좋은 작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니 두렵기도 하다. 존 맥피는 내 마음을 알아챈 것 같다.
"젊은 작가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작가인지를 깨닫는다. 일찍부터 모든 장르의 글을 써보면 된다. (중략) 예술은 당신이 찾는 그곳에 있다. 좋은 글도 당신이 찾는 그곳에 있다. (p.145,147)"
그렇다. 일단 써야 한다.
좋은 글은 나에게도 의미가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이 책의 내용을 첫 책을 쓰는 고통의 과정 중에 있던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는 첫 번째 원고를 작성한 후 묵혀두는 중이다. 어제 오랜만에 만난 그를 보고 두 번째 원고를 쓸 수 있도록 당장 무엇인가 하라고 등 떠밀긴 했지만,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를 주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눈송이나 지문처럼 작가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다르다는 걸 인정했다. 어느 누구도 나와, 아니 다른 누구와 똑같은 방식으로 쓰지 않는다. 이 사실 때문에 작가들 사이에는 진정한 의미의 경쟁이 있을 수 없다. 경쟁처럼 보이는 건 사실 질투와 뒷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집필은 오로지 스스로를 개발하는 일이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과 경쟁할 뿐이다. (p.149-150)"
친구, 담에 만날 땐 이 책을 선물해 줄게.
* 이 책은 글항아리 서포터즈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